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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처럼자유롭게/그리운전라도

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곳 순천 낙안읍성..

 

현재와 미래가 만나는 곳 순천 낙안읍성.. (여행일자 2021년 5월7일)

 

미세먼지가 기승을 부렸고 고흥여행으로 조금은 피곤했지만 오랜만에 순천

낙안읍성을 찾았다.. 조선시대 전기부터 600년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으니

지난 세월속에 역사를 고스란히 느끼게 해준다.. 아침이라 사람들도 없었니

읍성 성곽은 오롯이 나를 위해 길을 내주었다.. 

 

 

 

 

 

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낙안읍성은 600년의 역사와 전통이 있는 민속마을로

낙안팔경이 조화를 이루며 넓은 평야와 풍요가 넘친다는 의미로 락토민안의

땅이며 2019년 관광의별과 CNN에서 선정한 대한민국 대표 관광지

16위로 선정되었다.. 

 

 

 

 

 

 

코로나가 있기전 순천을 왔었지만 낙안읍성은 거의 7년만에 방문이다..

풀한포기 길가에 돌맹이 그리고 읍성성곽에 박혀있는 돌맹이도 변함이

없다..  변한건 나 혼자뿐 나이만 먹었네.. 

 

 

 

 

 

읍성안보다는 성곽부터 먼저 걷고 싶었다..  성곽을 걸으며 읍성 안을 보니

감회가 새롭다..  초록 초록 이쁘다.. 미세먼지로 주변이 뿌옇게 보인다고

해도 푸르름은 이겨내지 못하는거같다.. 

 

 

 

 

 

 

성안에는 90여 가구의 민가가 있으며 거주를 하고 있다..  그러니 조심해서

걸어야한다..  민속 체험을 할수있고 숙박도 가능하니 초가집에서 하루밤

추억을 만들고 느껴볼수 있다..  

 

 

 

 

 

낙안읍성은 1983년 6월에 사적 302호로 지정되었고 2011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잠정목록에 등재되었다..  현재 읍성안에는 국가, 도지정의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다고 한다.. 

 

 

 

 

 

 

장독대와 물레방아 그리고 연못으로 놓여진 나무다리가 정겹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여유로운 여행이다..  쉼과 힐링이 따로 있는게 아니다 이런게 

쉼이 아닐까..  간간이 불어오는 바람도 또 왜이리 시원한지..  

 

 

 

 

 

 

조선 태조6년 낙안출신인 전라도 수군도절제사 양혜공과 김빈길 장군이

왜구의 침입에 맞서기우해 흙으로 쌓았고 세종 6년되던 해부터 돌로 쌓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리고 200년 후인 인조4년에 충민공 임경업 장군이

낙안군수로 부임후 석성으로 중수되어 낙안읍성으로 다져졌다고 한다.. 

 

 

 

 

 

전망이 좋다는 빈기등이라는곳에서 바라본 낙안읍성의 풍경..  마치

과거로 돌아간듯하다..  변함이 없는 그 모습 참 좋다.. 

 

 

 

 

 

 

지방 관아의 안채로 내동헌이라고 불리웠던 내아와 중앙행정업무를 처리

했던 동헌이다.. 중앙 마루에서는 송사를 다뤘으며 사무당이라도 부르기도

했다.. 사무의 뜻은 고을 수령이 권력을 남용하거나 백성을 함부러 대하지

않겠다는 뜻이 담겨져 있다고 한다.. 

 

 

 

 

 

 

코로나로 인해 세워진 조형물에도 마스크를 씌여놓은 진풍경들.. 백신맞고

코로나가 종식되고 마스크없이 자유롭게 여행 다닐때는 이또한 추억거리가

되지 않을까..  빨리 그때로 돌아가고 싶다.. 

 

 

 

 

 

 

여긴 재물을 불러오는 천하 명당터라고 한다..  동그라미 원안으로 들어가

금전산을 바라보고 복을 달라고 기원하면 부자가 된단다..

 

 

 

 

 

400년을 훌쩍 넘긴 느티나무 두그루가 자라고 있는 낙민루는 남원 광한루.. 

순천의 연자루와 더불어 조선시대 호남의 대표적인 누각이며 6.25한국전쟁때

소실된후 복원되었다 한다.. 날개를 펴고 날아갈듯 팔작지붕이 화려하다.. 

 

 

 

 

 

 

 

600년이나 된 낙안읍성에 있는 은행나무를 유주라고 부른다한다..  말그대로

젖기둥이라는 뜻으로 모양새가 마치 여인네의 젖가슴과 닮았다 하여 붙혀진

이름이지만 실제로는 남성을 닮았다는 이유로 예로부터 아들을 낳고자 하는

여인이 가지를 도려냈다고 한다.. 

 

 

 

 

 

실제로 득남 목적으로 나무에 상처를 내거나 돌맹이를 가져 가거나 한다..

읍성안 은행나무도 그렇게 베어지다보니 스스로 방어를 하기 하기위해

유주를 만들었다는 견해도 있다고 한다..  청도 적천사와 고창 선운산

서산향교에 은행나무도 유주의 모습이라고 한다.. 

 

 

 

 

 

벚꽃나무 였던 모양이다..  벚꽃이 떨어지고 버찌라는 열매가 빨갛게 익고

있었다..  버찌는 피로회복과 식욕회복에 그리고 불면등에도 좋다고 하던데

꽃의 화려함에 가려져 열매의 효능 잊고 있었다.. 새콤달콤할거란 생각에

지금도 입안에 침이 가득 고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