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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처럼자유롭게/그리운경상도

산 전체가 박물관이였던 경주 남산 금오산을 오르다..

 

산 전체가 박물관이였던 경주 금오산을 오르다..

 

여행일자 2012년 5월26일~27일 역사를 찾아 떠났던 경주여행..
아침부터 무더위가 기승이지만 7월을 활기차게 시작해 보기로 한다..

경주를 여행행사로 다녀온지 벌써 한달이 넘었는데 지금에서야 마지막 남은

남산 금오산에 대해 글을 쓸러고 하는 게으른병이 참 오래가는 바라미..^^

하루에 한개씩 지난 여행기를 빨리 마무리하고 새로운 여행을 또 떠나기위해

바쁘게 움직여도 시간이 아까울텐데 그동안 너무 게으름을 피우고 있었나보다

한달이 넘었지만 기억을 더듬으면서 경주 남산에 대해 여행기를 쓸러고하는데

잘 되겠지..^^  경주 여행기를 쓰다보면 항상 하는 말이 있는데

경주는 길거리 돌맹이도 함부로 걷어차면 안될정도로 길가에 돌맹이도

문화재 한쪽 귀퉁이에서 떨어져 나온 잔재 라는 소리를 하게 된다..

그런 유서깊은 곳을 10번도 넘게 다녀왔지만 가면 갈수록 새로운걸 많이

보고 배우고 오는 경주... 신비로운 고장임에 틀림없다..

 

992년간 신라의 서울이였던 천년수도 경주는 예로부터 서라벌이라고 불려왔으며

지금의 경주의 역사는 천년 신라의 역사를 간직한채 도시 전체가 문화재로 둘러싸여있으며

지붕없는 박물관이라도 해도 과언이 아닐정도로 역사와 문화의 고장으로 널리 알려져있다..

유독 불교와 과학적인 예술성을 바탕으로 크게 번창해온 곳이라 유네스코에서 세계문화유산의

도시로 지정했으며 불국사와 석굴암 그리고 남산지구와 월성지구 등... 경주 세계문화유산으로 남아있다

그중 한곳인 신라 천년의 역사를 함께한 산 남산 오르며 지붕없는 박물관이라는걸

실감케 했는데 남산을 오르지 않고서는 경주를 보았다고 말하지 말아라.. 할정도로 남산은 신라천년의

역사와 문화를 잘 보여주고 있는 노천 박물관이라는 또다른 명칭을 가지고 있는곳이기도 하다..

 

신라 역사의 시작과끝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으며 150여곳의 절터와 120여의 석불 그리고

96여 기의 석탑이 있는 남산은 경주를 방문하면 한번정도는 꼭 올라가봐야할 산이기도하다

재작년 여름에 삼릉 소나무숲 새벽안개를 찍기위해 택시를 타고 방문했던 적이 있었는데

그때 봤던 안개는 강한 느낌으로 아직도 소나무숲에만가면 새벽안개가 생각나곤한다

 

 

 

 

삼릉계 석조여래좌상은 목과 손이 잘린채로 동국대 학생들에 의해 발견되었다한다

분명 일본인들에 의해 잘려나갔을거야.. 하고 생각을 했었는데 조선시대에 우리나라

사람에 의해 목과 손이 훼손되었을지도 모른다고 한다..

어깨에 흘러내린 매듭과 옷의 주름이 섬세하고 화려했으며 비록 목과 손이 훼손되었지만

통일신라시대의 우수한 조각품으로 평가받고있다고한다..

 

석조여래좌상 왼쪽으로 가파른 계단을 올라가다보면 만날수있는 삼릉계곡마애관음보살상

마애관음보살상은 경상북고 유형문화재 제 19호로 지정되어있으며 조금 통통한 얼굴에

미소를 가득 머금고있으며 왼쪽손에는 정병을 들고있으며 머리에는 보관을 쓰고있었으며

목걸이와 팔찌 등 여러 장신구들로 화려하게 몸을 꾸미고 있었다..

이 불상은 아래에서 올려다 보면 더 밝게 미소를 띠고 있으며 단풍이 드는

가을철 석양빛때 보면 가장 아름답다고한다..

 

 

경상북고 유형문화재 제 21호로 지정된 삼릉계곡선각육존불..

널찍한 자연적으로 생겨난 암벽에위해 붓으로 그림을 그리듯 새겨놓은 불상이다

남산에는 드물게 두개의 바위위에 여섯분이 새겨져있는데 석사삼존과

아미타삼존으로 불리우며 오른쪽 암벽위에는 새겨진 불상을 보호하기위해

 법상을 세웠던 흔적이 남아있다고한다...

 

작년 겨울에는 내린눈으로 인해 조금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어 여기까지만 올라가고

아쉬움을 뒤로한채 남산을 내려와야 했지만 이번에는 남산 전체는 가지 않아도 금오산까지는

올라가야겠다는 생각으로 다시 등산화끈을 단단히 동여메고 카메라를 옆으로 메고 오른다..

 

 

사시사철 시원한 계곡물때문에 냉골이라고 불리우고 있다는 삼릉골은 몇달동안 비가

내리지 않아 계곡에 물은 말라 있어서 조금 아쉬움이 남아 있었지만 곳곳에 숨겨진 비경과

불상조각을 만날수 있어서 그걸로 크게 위안을 삼을수 있었다...

 

남산의 삼릉계곡을 오르다보면 중부능선쯤에 삼릉계석불좌상이라는 불상을 만날수가있다..

이 불상은 불두와 불신을 따로 제작하여 결합했는데 상호는 파손이 너무 심해

뺨과 코 그리고 입 대부분 복원했다고한다... 이 불상은 풍만하면서도 당당하고 안정감있는

신체표현이 상징적이며 간결한 대좌와 광배 그리고 섬세한 조각이 특징이라한다

8세기 후반에서 9세기 전반에 조성된것으로 석굴암에 있는 본존불상하고 미소가 닮아있었다

 

 

금오산에 오르기전 만날수있는 상사바위는 그 크기가 백여 발이나 되며 생김새가 가파르게

솟아 있어서 아무나 오르기 힘들다고 하는데 상사병에 걸린 사람들이 이 바위를 위하고 빌면

병이 낫는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한다.... 높이가 13미터이며 길이가 25미터 가량 되는 큰 바위로

이 바위를 서편에서 보면 냉골 여울이 뿌리 내리고 수십미터 높이로 솟아오른 첨탑처럼 보인다고 한다

동쪽에서 보면 또다른 모습인데 육중하게 솟아있는 모습이 염라대왕이 궁전을 연상케하는

험상궃은 상이라고 한다.. 바위 중간쯤에는 가로파인 틈에 돌을 던져 그곳에 얹히면

소원이 이루어지고 던진 돌이 떨어지면 바위신이 뜻을 받아주지 않았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상사바위의 남쪽편에 아기를 낳는듯 갈라진 바위인 산아당의 모습도 볼수있다고 한다..

 

 

배리삼릉을 시작으로 금오산 정상까지 오르는데 걸리는 시간을 알수가 없었다..

중간에서 몇번을 쉬고 문화재를 만날때마다 설명을 듣고 천천히 살피느라 많은 시간을 허비했다

남산 전체를 둘러보는 시간은 안댔지만 나중에 또 한번 전체지구를 돌아볼수있다는

여운을 남기는것도 괸찮을듯 싶다... 하루 날잡아서 남산전체를 돌아보는 날이 있을거라 생각해본다

 

 

 

남산에서 바라본 경주시내... 남산과 망산에는 한가지 유래가 전해져 온다고하는데..

4계절 언제나 복된 땅이며 동이터서 솟아오른 햇님이 가장 먼저 비춰주는 광명에 찬 땅이라고도

불리우는 서라벌 이곳에 어느날 두신이 찾아 왔다고한다... 한 신은 검붉은 얼굴에 강한 근육이

울퉁불퉁 한 남신이였고 또 한 신은 갸름한 얼굴에 반짝 빛나는 눈동자와 예쁜 웃음이

아름다운 여신이였다고한다... 두 신은 서라벌을 돌아보면서 우리가 살땅은 이곳이구나.. 하고

외쳤고 이소리는 새벌의 들판에 진동을 했다고 하는데 이때 개울가에서 빨래하던 처녀가 놀라

소리나는 곳을 보고는 산 같이 큰 두 남녀가 자기쪽으로 걸어오는걸 보고 처녀는 겁에 질려

산봐라.. 하는 소리를 지르고는 정신을 잃었다고한다...  산 같이 큰 사람봐라.. 라고 해야할 말을

급한 나머지 산 봐라 하고 외쳤던것이다... 갑자기 발아래 들려오는 소리에 두신은 깜짝놀라

그자리에서 발을 멈췄는데 그만 왠일인지 다시는 발을 옮길수가 없었다고한다...

두 신은 그자리에서 굳어 움직일수 없는 산이 되었다고하는데 그들의 소원대로 아름답고

기름진 새벌에서 영원히 살게되었다고 한다....  남신은 울퉁불퉁 강하게 생긴 남산이 되었고

여신은 남산 서쪽에 솟아있는 부드럽고 포근한 망산이 되었다하는데 나중에 시간이 되면

망산도 한번 올라가보고 싶은 마음이 전설을 읽고나니 생겨버렸다..

 

 

바위속에 숨어 계신 부처님을 찾아내다... 삼릉계곡마애석가여래좌상을 두고 한말이다..

남산에서 가장 높은 암자인 상선암에서 남산 불상 중 좌불로는 가장 큰 마애불상을

만날수있는데 이곳까지는 미쳐 올라가지 못했기에 멀리서나마 보는걸로 만족했다..

해설사님의 이야기를 들으니 이 불상의 머리부분은 돋을새김을 하였으며 몸 아래쪽으로 갈수록

선각에 가까운 조각으로 단순화시켜 바위산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하는데

전체적인 양식이 통일신라 후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고한다..

 

 

삼릉계곡과 금오산을 내려오면 아주 작은 암자 삼불사에가면 볼수있는 배리석불입상의 모습이다..

삼존석불은 기울기에 따라 다른 분위기를  미소를 볼수있으며 중앙이 아미타여래상은 조각솜씨가 뛰어나며

단정하고 단아한 모습이 함부로 범접할수없는 종교적인 신비감을 준다고 한다..

 

이렇듯 남산전체를 돌아보지 못해 많은 아쉬움이 남아있지만 다시 남산을 오르고 싶을정도로

접하지 못한 문화재가 아직도 많이 남아있는곳 이기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