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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처럼자유롭게/그리운경상도

신라 예술의 극치 불교미술의 백미라 할수있는 석굴암..

 

신라예술의 극치 불교미술의 백미라 할수있는 석굴암..

 

여행일자 2012년 5월26일~27일 역사를 찾아 떠났던 경주여행..
이상하다.. 잠은 충분히 자는거같은데 아침만 되면 눈안이 까칠한게

모래가 들어가있는듯 시큰거리고 눈동자 굴러가는게 부드럽지가 않다..

봄철 황사도 없이 그냥 지나가는거 같은데 안구건조증은 더 심해진거같다

뿌연 하늘만큼이나 눈앞이 뿌옇게 보이는게 아무래도 눈이 더 나빠진듯

눈이 나쁘고 난시가 있는데도 안경도 착용하지 않은채 그동안 책을 읽은게

아무래도 눈에 많은 자극을 주는건 아닌가 생각이 든다..

안경을 착용하는게 좀 귀찮을수도 있지만 무슨 깡으로 책을 읽는지

조만간 안과도가고 안경점에 가서 시력검사를 다시 해봐야겠다...

요즘들어 책읽는 재미에 빠져 하루종일 시간을 보내지만 가끔씩은

따뜻한 햇빛과 맑은 공기를 마시기위해 밖으로 나가는것도 잊지 않았다


경주는 네버엔딩스토리 도시임에 분명하다.. 이야기를 해도 끝이없는 신라 서라벌 그리고 경주

경주를 열번넘게 다녀왔지만 알수없는 이야기와 문화재로 갈때마다 새로운걸 배워오는 도시..

그래서 경주는 다시 천천히 돌아보고 싶은 도시중에 한곳이기도 하다..

길거리 돌맹이도 함부로 발로 차면 안된다는 경주는 굴러다니는 돌맹이도 문화재 귀퉁이에서

떨어져나온 돌맹이라고 생각이 들 정도로 모든게 소중하게 생각이 들 정도다..

그렇게 많은 문화재 중에서 신라예술의 극치.. 불교문화의 백미라고 감히 말할수있는

석굴암 석굴은 199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당당하게 등록이 될정도로 뛰어나다..

 

석굴암으로 갈때마다 느끼는 한가지 흠은 석굴암 석굴로 가는 길이 조금 위험 해보이는데

장난을 치거나 넘어져서 구르게된다면 자칫 잘못하다가는 낭떠러지도 떨어질정도로 허술하다
흔한 나무 안전바도 없거니와 위험을 알리는 금줄하나 없다는게 실망스럽다..

이번 여행때도 다소 위험할수있으니 조심해서 석굴암을 관람하시라고 이야기를 했지만

안심이 되지 않으니 나뿐만 아니라 이곳을 방문하는사람들은 다들 느꼈을꺼라 생각이 든다.

 



일제시대때 석굴암을 함부로 훼손해가면서 분해해놓고 끼어놓지 못한 석굴암의 석물들이

흉물스럽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지만 신라시대 신라인들의 손길이 묻어있는 귀중한 문화재이다..

석굴암의 내부는 촬영이 금지된곳이라 사진으로 찍지는 못했지만 석굴을 만든 건축양식이나

불상의 조각한 솜씨는 지금도 따라갈수없을정도로 정교하고 섬세했다고 한다...

 

국보 제24호로 지정된 석굴암은 신라 경덕왕때 김대성이 처음으로 건립하였는데 건립당시에는

석굴암이 아닌 석불사라고 불리웠다고한다...  전생이 부모를 위해 석굴암을 만들었다고 하는데

석굴암은 자연굴이 아니라 화강암을 쌓아 굴을 만들고 그위에 흙을 덮어 만든 인공굴이다..

사진촬영이 금지되어 석굴안에 석굴암 본존불은 담지 못했지만 신라인의 미소를 느낄수 있을정도로

부드럽고 온화한 표정을 간직한 모습에 나도모르게 미소가 지어진다..

마치 살아있는듯 가늘게 뜬눈과 온화한 눈썹 그리고 미간에 서려있는 슬기로움이

느껴진다고 했는데 세계에서도 이처럼 부드러운 미소는 찾아보기 힘들정도라고 한다..

 

석굴암이 있는 토함산은 동해의 바닷물을 들이마셔서 구름과 안개를 토해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인데 그래서 인지 동해로부터 품어내는 물기와 습기가 많은 지역이라고 한다..

습기와 안개속에서 어떻게 석굴암은 천년동안 원래의 모습대로 있을수 있을까.. 하고

아직도 연구를 하고 있다고 하는데 석굴암 주변을 살펴보면 땅위에 세워진것이 아니라

샘물위에 지은것으로 서늘한 샘물이 석굴암 밑으로 흘러 바닥에만 이슬이 맺히게 한것이라 한다

벽과 천장의 돌도 얇게 만들어 끼워 맞춤으로써 통풍이 잘되게 했는데 일제침략기 이후에

석굴암을 고치면서 물길을 석굴밖으로 빼내고 석굴함 둘레를 시멘트로 막어버렸다한다

그후로 바람도 잘 통하지 않고 빗물도 새어 굴안에 습기가 차고 이끼도 끼게 되었다고하는데

지금은 물길대신 유리벽과 온도조절기를 설치해서 온도와 습도를조절하고 있다고한다..

과학적이고 소중한 문화재가 일제시대에 훼손되었다는 말을 듣고 화가 나서 견딜수가 없었다..

 




유리를 통해서 본 석굴암 본존불이였지만 그 온화한 미소를 배우고 돌아온 발길은 가벼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