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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처럼자유롭게/그리운강원도

단종의 뒤안길 따뜻한 봄날 장릉을 걷다..

 

단종의 뒤안길 따뜻한 봄날 장릉을 걷다..


여행일자 2012년 5월 1일 화창한날 갑자기 떠난 영월여행..

축축하고 습기가 가득한 게으른 긴 터널을 빠져나온듯한 기분이다..

너무 오랫동안 쉬었나... 남의집에 들어온듯 어색함 마저 느껴지기도 한다..

잠시 휴식을 취하고 싶었을뿐 내 생활중에 한부분을 칼로 도로내듯 떼어내

버리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었고 내 생활마저도 손을 놓아버리진 않았다..

주말내내 하루에 두시간정도 자고 새벽기차를 타고 고창으로 여행행사를

다녀왔으니 어쩌면 더 바쁘게 생활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다니다보면 몸 축난다고 엄마의 잔소리를 가끔 듣긴하지만

리듬을 깨기싫고 게으른 터널에서 벗어나기 위한 나만의 발버둥을 치면서

생활리듬을 찾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조금은 지쳐있는듯 나른한 오후.. 그리고 바람과 햇살..

이 모든것은 나를 행복하게 한다.. 살아 있다는거 느낌이 좋아..

 

모처럼 얻은 휴일.. 갑자기 영월이 가고 싶어졌고 어느새 차는 영월로 향하고 있었다..

겨울에 갔던 청령포와 미처 시간이 없어서 돌아보지 못했던 장릉을 따뜻한 봄날에 걷고 싶어졌다


원통한 새 한마리가 궁중을 나오니 

외로운 몸 그림자마저 짝 잃고 푸른산을 헤매누나

밤은 오는데 잠들수가 없고 해가 바뀌어도 한은 끝없어라 

새벽 산에 울음소리 끊어지고 달이 흰 빛을 잃어가면

피 흐르는 봄 골짜기에 떨어진 꽃만 붉겠구나

하늘은 귀먹어 하소연을 듣지 못하는데 

서러운 이 몸의 귀만 어찌 이리 밝아지는가...


아직은 어린나이17살의 나이로 비운의 생을 살다가 단종이 쓴 자규시이다..

비통한 마음 시속에 절실히 남겨져있으니 2년전이나 지금이나 단종을 향한

마음은 이곳을 찾아 올때마다 먹먹해지는게 잠시동안 500년의 역사속 한 인물이 되어

한많고 외롭고 쓸쓸하게 짧은 삶을 살다간 그의 모습이 아련하게 떠오른다..

그리고 그의아내 정순왕후의 모습까지도... 


우리나라 왕릉은 인류의 문화유산으로 인정받아 2009년 6월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어

42기 능 어느 하나도 훼손되거나 인멸되지 않고 모두 제자리에 완전하게 보존되고 있다고한다..

한가지의 주제를 두고 여행을 다닌다면 우리나라 능을 찾아 다니는 여행도 좋을듯 싶다

단종이 묻혀있는 능침으로 올라가는길은 양옆으로 오래된 노송들이 자라고 있었으며

휘돌아 감기듯 휘어져있는 가지들은 외로운 단종을 가지로 감싸는듯  따뜻한 느낌을 준다..

 

참 따뜻한 곳에 묻히셨네요... 올라가는 동안 내가 그에게 건넨 한마디이다..



조선왕릉이라고 하기에는 초라하기 짝이없다... 그 흔한 무인석과 문인석 그리고 병풍처럼

둘러쳐 있어야할 병풍석 마저 없으니 돈많은 부자집 묘라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석마 두마리에 오랜세월동안 닿을만큼 닿아버린 분간이 가지않은 두 석상이 외롭게 살다간

단종의 이야기를 대신해주는듯 초라하다못해 외롭기 까지 했다..

단종이 노산군으로 강봉되어 영월 청령포로 유배되었고 여름 홍수로 강물이 범람하여 물에 

잠기자 영월 읍내에 있는 광풍헌으로 거처를 옮겼는데 그해 10월 24일에 세조가 내린

사약을 받고 승하하였으니 후한이 두려운 사람들은 시신을 거두지 못했다고 한다..

엄흥도라는 충신이 아들과 함께 시신을 거두어 이곳에 묻게 했으니 사육신과 더불어 

단종을 지켜주었던 유일한 사람이였으며 청령포에 몰래 찾아와 주었던 사람도 엄흥도였다한다..






영월 장릉은 처음부터 왕릉으로 택지한곳이 아니라고 했다.. 그래서 조선의 왕릉의 구조와 

조금 다르다고 하는데 홍살문에서 정자각으로 이어지는 참도는 일반적인 일자형으로 조성되어 있는데

이곳 영월의 장릉은 ㄱ 자형으로 꺾여있다고 한다...  그리고 장릉에서 볼수 있는 망주석은 조선왕릉 중

유일하게 세호가 없다고 하는데 뒤늦게 암장지를 찾아 봉분을 세우고 상석과 표석 그리고 망주석을 

세워 능역을 조성했으며 노산군에서 단종으로 복위하고 노산묘를 장릉으로 추봉되기까지는 59년..

1516년 중종 11년에 장릉은 비로소 왕릉의 모습을 갖추었다고 한다..

 





매년 4월 마지막주 금토일에는 단종문화제를 하고 있으며 장릉내에는 단종의 탄생에서부터

유배 그리고 죽음과 복권에 이르는 단종의 관련자료가 전시되어있는 단종역사관과

두그루의 커다란 향나무가 자라고 있는 재실은 재관들이 제사를 준비하는 곳으로
평상시에는 능참봉과 수호군이 사용하는 시설이라고 한다... 두그루의 향나무는 장릉에 얽힌

역사를 증언이라고 하듯 푸른향으로 다가오는듯 했다..

 


 

그리고 햇살 좋은 봄날 단종의 유배지인 청령포에 다시 오고 싶었다.. 그래서 영월로

바삐 움직였는지도 모르겠다... 겨울 꽁꽁 얼어버린 강물이 싫었고 소나무사이로 내리는

하얀눈이 싫어서 만물이 소생하는 봄에 다시 찾아오고 싶었던 청령포...

겨울에 찾았던 청령포는  단종의 비통한 마음을 가득 담았던 하얀눈이 이쁘게 내렸던 날이였고

유배지였지만 한폭의 그림같았던 청령포를 기대했을까..

4대강 사업으로 파헤쳐 버린 청령포는 녹녹했던 예전의 모습은 사라져버렸다 불과 1년사이에..

카메라를 가지고 다녔지만 사진조차 찍지 않았다.. 아니 찍고 싶지 않았다..

사라져가는 소중한것들 끝까지 지켜주지 못했기에 미안한 마음뿐이였다.

예전의 모습만 생각할걸 괸히 왔나 싶기도 하고 갑자기 청령포에  오고싶었던

대책없는 내 방량기를 탓해보며 소나무숲길을 걷고 관음송을 올려다 보았던거같다..


여전히 아름다운 소나무숲과 분홍색 철쭉만이 변함없는듯.. 그냥 좋은것만 기억해야겠다..

 

 

비운의 왕 단종은...

1441년 7월23년 (세종23년) 문종과 현덕왕후 권씨사이에서 원자로 태어났으며 이름은 홍위이다

8세가 되던 1448년에 왕세손에 책봉되었고 예문관제학 윤상으로 부터 학문을 배웠다

1450년 2월 세종이 승하하고 문종이 즉위하게되자 그해 7월20일 왕세순이였던

홍위는 10세의 나이로 왕세자로 책봉되었으며 1452년 5월18일 문종이 승하후

단종은 경복궁 근정전에서 12세의 어린나이로 제 6대 왕에 즉위하였다

계유정난이후 1455년 6월11일 단종은 세조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15세에 상왕이 되었으며

박팽년, 성상문 등이 단종의 복위를 꾀하다가 발각되어 모두 죽임을 당하는 사육신사건이 일어나

1457년 노산군으로 강봉된 뒤 1457년 윤6월22일 창덕궁을 출발하여 7일 후인 윤 6월28일

유배지인 영월 청령포로 유배되었고 그해 9월 금성대군 유가 다시 그의 복위를 꾀하다가

사사되지 단종은 노산군에서 서인으로 내려지고 결국 죽음을 강요당해 1457년 10월24일 유시에

17세의 어린나이로 관풍헌에서 승하하셨다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