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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처럼자유롭게/그리운강원도

단풍으로 곱게 물든 춘천 청평사 가는길..

 

오색단풍으로 곱게 물든 춘천 청평사 가는길..

 

까칠하고 투박하고 가끔 차가운 내심장을 녹여줄정도로 따뜻한곳..

춘천 소양강에서 배를 타고 들어갔던 청평사의 첫느낌은 그랬다

그리고 그후 시간이 날때마다 청평사를 찾곤했는데 한동안 뜸했던 탓도

있겠지만 첫방문때 따뜻한 느낌을 받았던 청평사의 가을빛이 그리웠다

그렇게 그리워만 했던 청평사.. 난 어느새 춘천으로 열심히 달리고 있는

춘천행 전철안에서 그 옛날 화구통을 메고 통일호 기차에 몸을 실었던

지금은 그때의 추억마저도 까마득한 몇십년전의 일을 회상해본다..

조금은 머리속이 복잡하거나 속상한일이 있으면 붓과 파렛트 그리고 물감을

점검하곤 바로 출발했던 스케치여행... 그때는 어렴풋이 말로만 들었던

춘천 청평사의 가을빛을 화폭에 담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지만 지금생각해보면

오랜 방황속에서 내 길을 찾고 싶었을때 였을거라 생각이 든다..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변함이 없는 이 죽일눔의 역마살... ^^

 

 

그렇게 훌쩍 떠나온 스케치여행을 인연으로 수시로 찾아왔었던 청평사를...

 5년전 가을에 한번오고 그리고 참으로 오랜만에 청평사를 찾은거같다..

그때는 모락모락 물안개가 피어올라오는 소양호 물줄기를 따라 10여분동안 배를 타고 왔지만

이번에는 꼬불꼬불 자칫 잘못하면 모냥빠지게 멀미를 심하게 할거같은 꼬불한 오봉산 산자락을

단풍들을 헤치고 청평사를 차로 도착한지라 오랜만에 찾아와 낯선곳을 더 낯설게 한다..

매번 내 생일이 얼마지나지않은 이때쯤이면 청평사의 단풍이 가장 아름다운 시기라는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던터라 때맞쳐 오랜만에 찾아온 나를 변함없이 단풍이 반겨준다.

찬바람이 자꾸 몸을 움츠려 들게하지만 씩씩하게 청평사까지 이어져있는 단풍길을 걷는다

 

 

 

 예전에는 없었던 공주와 상사뱀에 얽힌 전설을 이야기해주는 조각상이 보인다

이 전설은 전하는 이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다고하지만 기본 줄거리는 사랑과 불교정신을

바탕으로 하고있다고 하는데 옛날 중국에서 광주와 사랑을 나누던 평민총각이 있었다고한다

하지만 왕에게 발각되어 청년은 처형을 당했고 공주를 잊지 못하는 총각은 상사뱀으로 환생하여

공주의 몸에 딱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았다고 하는데....

어떤 수단을 썼는데도 공주의 몸에서 뱀은 떨어지지 않고 공주는 점점 야위어 갔으며

공주는 여러 사찰을 찾아다니다가 이곳 청평사까지 오게 되었다고한다..

공주는 구송폭포 아래 작은 동굴에서 하룻밤을 보낸뒤 아침에 범종소리가 들리자 상사뱀에게

절에 다녀오겠다고 말한뒤 계곡웅덩이에서 목욕재계를 하고 청평사를 찾아 기도를 올렸으며

공주가 늦어지자 불안해진 상사뱀은 공주를 찾아 청평사 회전문을 들어서는 순간

맑은 하늘에서 소나기와 벼락이 상사뱀위로 내리쳐 그자리에서 죽어버리고 빗물에 떠나려갔다고한다

기도를 마친 공주가 나와보니 뱀이 죽어 폭포에서 둥둥 떠있었는데 공주는 시원한 마음과

애처러운 마음과 함께 상사뱀을 정성껏 묻어주었다고 한다..

오랫동안 청평사에 머물며 부처님 은공에 감사드리는 마음을 담아 삼층석답을 세웠다고한다..

 

 

 비가 덜내린탓인지 시원했던 물줄기는 조금 약한듯 하지만 그 모습은 변함없는 구송폭포..

아래 폭포의 반석과 구송대 사이에 아홉그루 소나무가 자라고 있어서 구송이라고 했는데 현대에

와선 아홉가지 소리의 구성으로 와전되어 구성폭포라 잘못 불렀다고 한다..

구송폭포의 상폭은 갈수기에만 쌍폭으로 흐르지만 아래 폭포는 항상 두갈래로 흐르며

현재 위의 폭포를 구성폭포로... 아래 폭포를 쌍폭이라 부르고 있다고한다..

 

 이 못은 오봉산의 옛이름인 경운산이 물위에 그림자처럼 떠오른다고해서 영지라 불리운다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자연미를 살렸던 고려정원이라고 하는데 인공미만 강조했던

일본인들의 정원하곤 비교가 될정도로 주위의 경관이 자연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져있었다

청평사에 은거하면서 평생을 보낸 이자현이 만든 정원인데 사다리꼴 모양이 못안에 3개의

큰돌을 배치하여 단순하면서도 입체적인 변화를 더했다고하는데 나중에 이곳에 꽃이피면

놓여진 커다란 돌맹이 위에서 꽃사진도 몇장 담고싶다는 생각을 해본다..^^

 

 

 

 

 살아있을때 그림만 그리다가 죽은 실력좋은 화가가 하늘위에서 그림을 그리다가

실수로 물감을 떨어뜨렸는데 놓쳐버린 물감들이 청평사로 올라가는 길목에  떨어져

어떤 화가들도 담을수없는 색색들이 이쁜 물감을 칠해놓은거라 생각하고 싶었다..

곱게 물어가는 단풍속에 있으면 나도 똑같은 색으로 변해버릴듯한

아니 그대로 선채로 나무가 되어도 행복할거같았다...

5년전 가을.. 이맘때도 물들어있었던 단풍에 이야~~ 소리를 쳤던거같다..

청평사 가는길은 녹녹치 못한 내마음과 딱딱하게 굳어져있는 심장을 쓰다듬어준다..

 

 

 청평사 입구에 들어서면 수명을 알수없는 은행나무들이 어느새 노란색 옷을 갈아입고 있었다

떨어진 은행잎이 수북이 쌓이기도 전에 모두 쓸어버리기에 그냥 두세요.. 하고 이야기를 했더니

남이 밟았던거는 다 쓸어버리고 다시 떨어지는 깨끗한 은행잎을 밟아보라고한다...^^

마음이 따뜻해지는 청평사.. 첫방문때 받았던 첫느낌을 또 느껴본다....

 

청평사를 역사의 숨결이 살아숨쉬는 천년고찰이라고 했으며 윤회전생을 깨우치는

보물로 지정된 청평사의 상징인 회전문이 있는것으로 유명하기도하다..

보물 134호로 지정된 청평사 회전문은 조선 명종때 왕의 칙령에 의해 부임한

보우스님이 신축한것으로 일반사찰에 들어서면 일주문을 지나 두번째로 만나게 되는

사천왕문의 역할을 하고있으며 중생들에게 윤회전생의 의미를 깨우치게한다고했다..

얼마전에 다녀온 부석사도 회전문을 복원하는 공사를 하고있었던거 같았다..

 

 

 

 

 천년고찰 청평사는 고려광종 4년 영현스님이 창건하여 백암선원이라 하였고 문종 22년

춘주도 감창사 이의 가 중건하여 보현원이라 하였다고한다... 그후 이의의 아들 이자현이

이곳으로 내려와 은거하며 모든것이 맑게 평정된 산이라 하여 산이름을 청평산으로 바꾸고

사찰을 중창해 문수원이라 하여 인근에 여덟 암자를 신축했다고한다...

조선시대에 들어와 명종 10년 당시의 판선종사 보우 스님이 칙령에 의해 주지로 부임한뒤

중창을 하고 절이름을 청평선사로 바꾹 현재 보물로 지정된 회전문도 이때 신축되었다고한다..

 

 

5년이라는 세월이 훌쩍 지나서 찾아간 청평사는 따뜻하고 넓은 마음을 여전히 간직한채

두팔 크게 벌려 뛰어가는 나를 변함없이 포근하게 감싸주고 있었다..

그리고 왜 이제서야 찾아왔느냐고 투정섞인듯 이야기를 한다...

자주 찾지 못해 미안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