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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처럼자유롭게/그리운전라도

백제의 천년고찰 원효의 마음이 서린 부안 개암사..

 

백제의 천년고찰 원효의 마음이 서린 부안 개암사..

 

전국 어떤곳을가든 마음에 들지않은곳은 한군데도없다

갈때마다 변해있는 모습을 보긴하지만 그래도

우리나라 아직까지도 간곳보다는 가야할곳이 더 많다..

우리나라처럼 4계절이 뚜렷하고 가는곳마다 산과바다와

그리고 강이 반겨주는곳도 없을거라 생각해본다..

올해는 전라도쪽으로 여행을 자주 하는거같다..^^

그중에서도 좋아하는 내소사가 있고 채석강과 격포가 있는

부안을 이번에 또 다녀왔는데 갈때마다 새롭게 느껴지는 부안과

아직까지도 옛스러움이 남아있는 전라도는 포근한 느낌이 든다

이번 부안여행을 통해서  구석구석 알지 못했던 부안에

대해서 더 많이 알수있어서 더 뜻깊은 여행이였던거같다

나에게 묻고싶다.. 우리나라 얼만큼 더 다녀야할까...^^

 

 부안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찰이 있다면 다들 내소사라고 이야기를 한다..

누군가가 나에게도 물어본다면 자신있게 내소사라고 이야기를 할지도 모겠지만..^^

백제 무왕 35년에 묘련왕사가 변한의 궁전을 절로 고쳐 개암사와 묘암사라 부른데서

비롯된 개암사는 임진왜란때 모두 불에 타버려 인조 17년 계효선사가 중창사업을

시작해서 효정9년 밀영선사와 혜징선사가 대법당을 지으면서 본격적으로 재견 되었다한다

절안에 들어서면 대웅전 뒷쪽으로 보이는 울금바위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개암사를 돌아보는 동안 그 역사와 전설에 비해서 북적거리거나 요란하지도 않은채

천년의 세월동안 그자리에서 지켜온 녹녹함을 엿볼수있으며 불어오는 바람에 지쳐있는

몸과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고즈넉하고 넉넉한 마음까지도 함께 느낄수가 있었다..

지쳐있고 피곤하고 마음아픈사람 모두 이곳에 와 편히 쉬어가란듯이..

 

 

 

 

 

 

사찰을 자주찾은 이유는 산길을 통해서 느낄수있는 편안함 이라고할까..

시끄럽고 요란한 도시를 벗어나 모처럼 접해보는 푸른색의 나무와 풀들

절실한 불교신자는 아니지만 푸른색이 좋아서 사찰을 자주찾게된다..

개암사 대웅전 뒤로 보이는 울금바위에는 동굴이 세게가 있다고 한다..

그 가운데 원효방이라는 굴 밑에는 작은웅덩이에 항상 물이 고여있다고하는데

전설에의하면 원래 물이없었는데 원효가 이곳에서 수도하면서부터 그곳에서 샘이

솟았다고 한다..시간이 없어서..^^  울금바위 동굴까지는 미쳐 올라가보지 못했지만

다시 부안에 개암사를 찾게된다면 그곳에 올라가 원효의 마음을 느껴봐야겠다..

 

 

보물 제292호로 지정된 개암사 대웅전은 석가모니를 주불로 하여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을

협시로 모신 개암사의 본전이며 문수보살은 지혜의 상징이며 보현보살은 중상을 제도하는

일을돕는 분이며 백제 무왕때 묘련스님에 의해 처음 지어졌으나 임진왜란때 불에 타버렸다한다

인조때 다시 재건하여 곳곳에 용의 머리와 봉황을 새겼으며 화려한 연꽃으로 조각을 했으며

여느 사찰의 대웅전에 비해서 현편이 유난히 작다고하는데 그 이유는 현판뒤에 2개의 도깨비모양

귀면상을 가리지 않게 위함이라고 했으며 대웅전 정면에 귀면상을 내건 사찰은 흔치않다고했다

대웅전안에는 14말의 용과 7마리의 봉황이 있다고하는데 난 그걸 찾기위해

옷매무새를 고치고 가지런하게 신발을 벗어놓고 합장을 하면서 들어가봤다..

천장을 올려다보면서 용12마리를 찾고 봉황의 머리까지 모두 찾았는데

불심이 부족한지 아니면 아직까지 욕심이 많아서 인지 2마리는 찾지 못했다..ㅡㅡ

 

 

 

요즘 사찰에 가게되면 자꾸 변해져있는 모습을 보곤하는데 갈라진 나무결과 빛바랜 나무색

그리고 오랜 세월동안 비와 바람에 퇴색해버린 쇠문고리 마저도 이곳에선 녹녹함이 묻어난다

난 이곳에서 그동안에 근심과 욕심을 모두 버리고 올수 있었다..

 

 

기왓장에 새겨놓은 소원을 모두 읽어보면서 모두 성취하기를 빌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