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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처럼자유롭게/그리운충청도

원형 그대로 남아 보존되고 있는 서산 해미읍성..

 

원형 그대로 남아 보존되고 있는 서산 해미읍성.. (여행일자 2019년 4월28일)

 

개심사에 그리고 용유지와 신창저수지에도 물길따라 분홍색 왕벚꽃이 앞다퉈 필때 다녀왔던 서산..  그길에 벚꽃만 

보고 오기에는 아쉬움이 남아 예전에 한번 다녀왔던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읍성인 해미읍성을 또 찾았다..  해미읍성은

생각보다 많은 역사를 가지고 있는 곳으로 천주교의 탄압을 직접적으로 겪은 천주교와 깊은 연관이 있는 곳이다.. 

 

 

 

 

 

해미읍성을 또다른 명칭으로 탱자성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적군이 쉽게 접근할수 없도록 성주변으로 가시가 많은 탱자

나무를 심었다고 해서 그렇게 불렀고 지금도 해미읍성 주변으로 탱자나무를 볼수 있다고 한다..  서산에 해미읍성은 

순천 낙안읍성, 고창 고창읍성과 더불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읍성이다..  그중 해미읍성은 우리나라에서 보존이 가장

잘되어 있는 성곽이며 사적 116호로 지정되어 관리되고있으며 다른읍성과 비교할수 없는 격조와 많은 역사를 가졌다.. 

 

 

 

 

 

 

코로나도 없었던 2019년이였는데 방문당시에는 사람들도 없어서 느긋하게 성곽길을 걸어볼수가 있었다..  해미읍성은

성벽에 청주, 공주 등 각각 고을명이 새겨져 있다고 한다.. 그렇게 정해진 고을별로 구간을 맡아 성벽이 무너질 경우 

그 구간의 고을이 성벽을 맡아 수리하고 책임을 졌고 그래서 지금까지도 읍성중에서 보존상태가 가장 좋다고 한다.. 

 

 

 

 

 

 

조선시대 해안지방에 자주 출몰하는 왜구를 방어하기위해 덕산에 있던 병마절도사가 주둔하여 성을 쌓았다고 한다..

동, 남, 서의 세문루가 있으며 복원및 정화사업으로 옛 해미읍성의 모습을 되찾게 되었고 사적공원으로 조성되었다..

넓은 잔디밭과 소나무숲 그리고 곳곳에 피어있는 봄꽃들로 화려하지만 역사적으로는 결코 화려하지만은 않다..

 

 

 

 

 

 

 

해미읍성은 우니라의 천주교와 깊은 연관이 있는곳이다.. 1866년 박해때는 1천여명의 천주교인들이 처형당했다 한다..

김대건 신부의 증조부도 이곳에서 옥고를 치르고 순교했다고 전해지고 정조때부터 시작된 천주교 박해는 병인양요와 

1868년 오페르트 도굴사건이후 더욱더 극심해졌다고 한다..  군사권을 쥐고 있었던 해미진영의 겸영장은 13개 군현에

해당지역의 교도들이 모두 잡혀와 이곳 해미읍성에서 처형되었고 실학자인 다산 정약용도 당시 천주교의 교인이란 죄명

으로 해미읍성으로 열흘간 귀양을 왔다고 한다..  그곳이 지금은 우리나라의 최대의 순교성지이기도 하다.. 

 

 

 

 

 

 

사진으로는 담지 않았지만 감옥앞에는 300년이상 추정되는 회화나무가 있다..  읍성안 옥사에 수감된 천주교신자들을

끌어내서 나무에 매달아 고문했다고 전해지고 있으며 복원된 옥사에는 국사범으로 규정하여 그곳에 투옥했다한다.. 

 

 

 

 

 

 

1970년대부터 복원공사를 시작했으며 동헌과 객사 내아등을 복원했고 이곳에서 해미읍성 역사체험 축제가 개최되고

있다고 한다.. 2014년 8월17일에는 교황 프란치스코가 방문하여 제6회 아시아청년대회폐막 미사를 주례했다.. 지금이야

읍성을 걷고 보면서 좋구나.. 하겠지만 천주교의 아픈사건까지도 고스란히 끌어안고 있다.. 

 

 

 

 

 

 

우리나라 어딜가든 역사적으로 사연이 없는곳이 없다.. 그래서 여행을 통해서 몰랐던 아픈역사의 흔적이나 현장에서

느끼는 뿌듯함과 뭉클함을 배운다..  해미읍성을 찾을때는 골목식당에서 나왔던 호떡집이니 백반집이니 식당에 맛집도

중요하지만 역사적으로 어떤 내용이 있었는지 알고 배워갔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