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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처럼자유롭게/살고있는인천

올해 첫눈이 내린 강화도 전등사..

 

올해 첫눈이 내려 설경으로 아름다운 강화도 전등사.. (여행일자 2020년 12월14일)

 

절실한 불교신자는 아니지만 가끔 사찰에 가면 마음이 편해지고 지친마음을 다독여준다.. 더군다나 시간에 구애받지않고

편안한 시간에 갈수 있으니 나처럼 얽매이는게 싫은 사람한테는 사찰만큼 편안한곳도 없을거같다..  전등사는 강화도에

위치해 있으며 단군신화를 연원으로 했을때 우리민족의 역사와 함께 해온 현존하는 사찰중에서 가장 오래된 사찰이다.. 

 

 

 

 

 

 

삶이 무료해질때는 자주 찾는곳 이번달만 해도 어찌하다보니 벌써 4번째 방문이다..  매번 동문쪽에 주차를 하고 왔지만

이번에는 남문쪽으로 올라와 봤다.. 동문보다는 오르는 길목이 좋고 고즈넉해서 남문으로 왔었는데 역시 걷기에 좋다..

전등사로 오르는길은 전날 내린눈으로 아름다운 설경을 보여주고 이제서야 겨울인걸 실감케 한다.. 

 

 

 

 

 

우리나라 현존하는 사찰중 가장 오래된 사찰로 불교가 전래된 시기 아도화상이 건립한 한국의 대표적인 천년고찰이다..

전등사 이전엔 진종사였다가 고려충렬왕의 왕비인 정화궁주가 진종사에 시주한것을 계기로 전등사로 이름이 바뀌었다.. 

전등사의 전등은 불법의 등불을 전한다.. 라는 뜻으로 법맥을 받아 잇는 것을 뜻하고 있다고 한다.. 

 

 

 

 

 

오래된 사찰안에는 사찰의 나이만큼이나 오래된 나무들이 많이 있다..  일제강점기때 송진을 받기위해 훼손된 소나무가

있고 단풍나무와 광해군때 화재로 소실되었던 전등사를 재건하면서 풍치목으로 심은 400년된 느티나무는 대웅전앞에

있어 여름철이면 시원한 그늘도 만들어 쉼터가 되어준다.. 그중 500년된 은행나무 두 그루에는 전설이 전해져 있는데 

 

 

 

 

 

두 은행나무는 암컷과 수컷이다..  두 은행나무는 마주보면서 꽃은 피우지만 열매를 맺지 않는다고 한다..  강화도령 철종

임금때 조정에서는 열가마밖에 나오지 않은 은행을 스무가마를 받치라고 했다고한다.. 이에 동승은 고스님에 이야기했고

그당시 불교탄압이 심했던때라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더욱 더 불교를 탄압할거같아 백련사 추송스님에게 도움을 청해

은행이 두배로 열리는 기도를 부탁했다고 한다..  기도는 3일동안 이어졌고 3일째 되는날 추송스님은 은행나무를 향해 

백년이 지나고 천년이 지나도 영원히 열매를 맺지 않기를 축원한다... 고 기도를 끝냈고 천둥소리와 함께 추송스님과

노승 그리고 동자승까지 모두 사라졌다한다.. 그후 은행나무는 더이상 열매를 맺지 않았다고 한다.. 

 

 

 

 

 

 

 

전각들마다 눈으로 덮혀 설경을 보여주고 유난히 파란하늘은 포근한 햇빛을 비추니 따뜻하다..  걷는길만 빼고는 눈을

치우지 않아 고맙다..  오래된 사찰답게 전등사에는 보물 제178호로 지정된 대웅전과 제179호 약사전을 비롯하여 명부전

과 삼성각, 향로각, 적묵당 범종각이 있고 중요문화재는 중국북송시대의 범종과 조선시대의 법화경관이 있다.. 

 

 

 

 

 

 

전등사의 대표적인 건물인 대웅보전은 조선중기의 건축양식을 보여주는 귀중한 문화유산이다.. 대웅보전 그 자체만으로

위대해 보이며 빛바랜 단청은 오랜세월을 이야기한다..  건축물에 대해선 잘 모르지만 건물 내부 불단위에 꾸며진 닫집의

화려함과 아름다움은 건축공예의 극치를 이룬다고 한다.. 보마다 용트임으로 장식되었고 용두가 네 귀퉁이에서 돌출해

나오며 천장주변으로는 연, 모란, 당초가 화려하게 양각되고 중앙 우물 반자안에는 보상화문이 가득하다고 극찬한다.. 

 

 

 

 

 

건축미 만으로도 으뜸이지만 대웅보전 처마를 들고 있는 나부상에 얽힌 전설도 유명하다.. 나라에서 손꼽히는 도편수가

대웅보전을 건축할때 고향에서 떠나온 그는 공사 도중 사하촌의 한 주막을 드나들며 주모와 눈이 맞아 돈이 생길때마다

주모에게 모조리 건네주었다한다.. 대웅보전을 다 짓고 함께 살아보자고 약속했는데 공사 막바지때 주모가 돈을 모두

가지고 도망을 가버렸고 화가 난 도편수가 여인에 대한 배신감과 분노가 났지만 대웅전 공사를 마무리했고 공사가 끝날

무렵 대웅전의 처마 네 군데에 벌거벗은 여인이 지붕을 떠받치는 조각을 만들어 넣었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단풍나무옆에 전등사 전망대가 있고 이곳을 좋아한다.. 바람이 보는날이면 더없이 좋은곳 날이 좋은날이면 멀리 바다가

보이고 단군의 세아들이 쌓았다는 삼랑성 성곽도 보인다..  단풍나무 옆 전등사와 어울리는 대조루가 있다.. 대조루는

강화해협이 보이고 1932년에 중건되었다고 하는데 만들어진 년도는 정확히 알수가 없다고 한다.. 

 

 

 

 

 

전등사 정족산사고는 조선왕조실록을 춘추관, 충주, 성주, 성주등 네곳에 보관했다가 임진왜란때 유일하게 남은 전주

사고본이 묘향산사고로 옮기게 되었고 다시 마니산사고로 옮겼으나 효종 4년 실록각의 실화사건으로 많은 사적을 불태

우게되자 새로 종족산성에 사고건물을 짓고 현종1년 12월에 남아있는 역대 실록과 서책을 옮긴곳이다.. 

 

 

 

 

 

 

 

아무때나 찾아가도 마음을 보듬어 주는 편안한 곳이다..  불교신자는 아니지만 이곳에서 안식을 찾고 마음의 평온함을 

찾게된다..  코로나로 인해 남들과 달라진 일상속에서 지친마음을 다독여 주는 곳이기에 종교를 떠나서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