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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처럼자유롭게/그리운경상도

소원 한가지는 꼭 들어준다는 경산 팔공산 갓바위..

 

한가지 소원은 꼭 들어준다는 경산 팔공산 갓바위.. (여행일자 2016년 7월16일)

 

올해는 30도를 넘는 무더운날이 많을꺼라 하던데 긴 장마와 두번의 태풍이 지나고 나니 가을이 성큼 다가온 느낌이다..

아침저녁으로 불어오는 바람도 코끝을 찡하게 하고 은은하게 비추는 햇빛에서도 가을이 느껴진다..  이렇게 한계절이

지나고 하는일 없이 하루하루가 무료해질때쯤 강원도나 전라도나 아님 경상도 산속이나 도심속을 헤매고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지금은 사회적 거리두기에 실천을 하고 있으니 조금은 답답하더라도 예전 사진을 꺼내 추억 감성놀이도

나쁘지않다.. 대구와 경산에서도 오를수 있는 팔공산은 그 줄기가 칠곡, 군위, 영천까지 뻗어있다..  산세가 웅장하고

계곡이 깊고 맑으며 동화사, 파계사, 은해사 등 유서 깊은 사찰과 암자가 있는곳으로 유명한 도립공원이다.. 

 

 

 

 

 

 

팔공산 도립공원안에 수많은 사찰 가운데 관봉 석조약사여래좌상.. 다른말로는 갓바위가 유명하며 한가지 소원을

빌면 그 소원은 꼭 이룰수 있다고 해서 시험을 앞둔 수업생들이나 사업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들 찾고 있는곳이다.. 

갓바위는 대구에서 올라가는 길도 있지만 경산에서부터 시작해서 오르기로했다.. 다녀온 사람들은 대구에서 올라가면

더 쉽다고 하던데 대구던 경산이던 힘든건 다 마찬가지다.. 아침 사뿐히 이슬비가 내려 산행길에 안개를 선물로 준다

초록초록한 잎사귀 사이로 내려앉은 안개는 분위기를 한층 낸다..  비가 오는날이면 초록의 냄새도 더 진해진다..

 

 

 

 

 

 

계단을 힘들게 올라오면 갓바위로 올라가기전 팔공산 갓바위 부처님으로 알려진 사찰 선본사가 있다..  한가지 소원은

 꼭 들어주시는 선본사 갓바위로 인해 가파르고 계단도 많고 산세도 깊은곳이지만 참배객들이 많이 찾고 있는곳이다.. 

선본사는 한국불교 약사신앙의 대표적인 성지지만 창건이나 연혁에 관한 내용은 전해져 오지 않아 아쉽지만 신라시대

소지왕때 극달화상이 창건했다는 창건설은 전혀져 오고 있다..  이것 또한 정확한 문헌은 아니라고 한다.. 

 

 

 

 

 

 

 

 

선본사 대웅전과 삼층석탑에서 잠시 머물며 팔공산능성이와 산자락에 빠져 있었다.. 탁 트인 시야가 가뿐 호흡을

가다듬게 해준다.. 이래서 사람들이 산을 오르는 모양이다 시원하다..  유리광전과 갓바위를 갈려면 계단을 올라야한다

갓바위 가기전 유리광전은 약사여래 삼천원불을 모셔두고 있고 비가오거나 추울때는 법당안에서도 기도를 할수있고

법당안 유리로 갓바위를 볼수있다..  유리광전안에 커다른 바위가 인상적이였는데 예초부터 있었던지 궁금하다..

 

 

 

 

 

 

지성으로 기도를 드리면 누구나 한가지 소원을 이루게 해준다는 약사여래좌상 갓바위 부처는 신라시대때 만들어진

석불좌상으로 높이는 4m로 머리에 갓을 쓴거처럼 판석이 올려져 있는게 특징이다..  현재 약사여래로 알려져 있지만

일제시대때는 미륵으로 알려졌으며 경산이나 대구에 사는 어르신들은 미륵님 혹은 갓바위 미륵님이라고 불렀다 한다..

  팔공산의 대표적인 봉우리인 해발 580m의 관봉에 위치 해있으며 화강암으로 만들어졌고 몸뿐만 아니라 대좌도 돌로

되어 있으며 두 어깨는 반듯하다..  갓바위부처의 미소는 온화해 보여 보는 사람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미소짓게한다.. 

그덕에 갓바위 부처님을 찾으러 많이 오고있는데 특히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앞두고 많이들 찾고 있다고한다.. 간절히

바라면 이루게 해준다는 갓바위의 효험은 지극한 정성과 그 기도로 이루게 하지않았을까..  

 

 

 

 

 

 

 

올라왔던 길을 다시 내려갈때는 올라올때 보지못했던 팔공산의 풍경들과 경치가 들어온다.. 태백산맥 자락의 웅장함

산을 오르면서 호연지기를 배우게 한다..  견훤이 서라벌을 공략할때 고려 태조가 5천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후백제군을

정벌하러 나섰다가 공산동수에서 견훤을 만나 포위를 당했다고 한다.. 그때 신숭겸이 태조로 가장하여 수레를 타고 

적진에 뛰어들어 전사함으로써 태조가 겨우 목숨을 구하였다고 전해지면서 당시 신숭겸과 김락등 8명의 장수가 모두

전사하여 팔공산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