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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처럼자유롭게/그리운경상도

바닷가 언덕위 작은마을 흰여울 문화마을..

 

 

 

 

 

바닷가 언덕위 작은마을 흰여울 문화마을.. (여행일자 2017년 9월22일)

 

겨울은 춥다고 하지만 올 겨울은 유난히 춥다... 가뜩이나 작은 어깨가 찬바람에 더 움츠러진다..

하지만 봄은 찾아올테고 겨울이 아쉽다고 붙잡고 싶은 마음도 없기에 빨리 보내고싶다

올겨울은 추워서 힘들었지만 작년 여름은 10월까지 더워서 가을을 채 느끼기전에 겨울이

온듯 사람은 사람대로 가을은 계절을 잃은채  9월을 맞이 했던거 같다.. 그리고 9월의 늦더위가

최고의 절정기를 이룰때 부산 흰여울 문화마을을 다녀왔다..   가을바람이 부는듯 했지만

더위는 여전히 기승을 부렀고 영화 변호사의 촬영지인 흰여울 문화마을과 바닷가를

더위를 잊은채 다녔던 지난 여름의 추억이 또럿하게 생각난다..

 

 

 

 

 

 

 

 

 

 

 

변호인과 범죄와의 전쟁 그리고 영도다리를 건너다 등등 수많은 영화가 이곳에서 촬영되었고

그중 영화 변호사로 인해 흰여울 문화마을을 알게되었고 주말에도 많은 사람들이 찾고있다...

한국전쟁 이후 피난민의 역사와 아픔이 고스란이 남아있는 흰여울 문화마을은 골목마다 그때의

흔적들이 묻어있다... 푸른바다가 보이는 바닷가 절벽위에 다닥붙어있는 집들마다 형형색색

고운색을 칠해 옷을 입히고 벽화도 그려 멀리서 보면 그리스의 산토리니를 닮은 아름다운

마을로 각광받고 있으며 몇채 안대는 집을 창작공간으로 만들어 지역 예술가들이 창작활동을

하는데 도움을 주고 영도구민에게는 생활속에서 문화예술을 느낄수 있게하고 있다..

 

 

 

 

 

 

 

 

 

 

 

 

 

 

봉래산 기슭에서 여러 갈래의 물줄기가 바다로 굽이쳐 내림으로써 마치 흰눈이 내리는듯

빠른 물살의 모습과 같다 하여 흰여울길이라 불렀다는 이곳을 제2의송도라고 한다..

골목마다 작은 집들이 문과 문사이를 두고 붙어있는 모습을 보고 꼬막집이라고 불렀고

이곳에서 6.25 한국전쟁이후 피난민들이 하나 둘씩 모여 집을 짓고 마을을 이루고

살게되었다고 한다..  한사람 겨우 드나들정도로 좁은 골목길은 예전 버스가 다니는

절영로가 생기기전까지 영도다리쪽에서 태종대로 가는 유일한 길이였고

미로처럼 얽혀있는 골목은 어디를 가도 빠져나갈수 있는 샛길로 되어있어 어릴적

숨어있는 나를 찾을까바 심장을 쫄깃하게 했던 숨바꼭질 놀이가 생각이 난다..

작은 골목에 아기자기 벽화가 그려져있어 동심을 자극했고 쉴수있도록 마련되어있는

의자에 앉아있으면 바다가 한눈에 들어오니 이곳보다 더 좋은곳은 찾지 못하겠다..

 

 

 

 

 

 

 

 

 

 

 

 

 

 

땀을 쏘옥 빼게 했던 맏머리 계단은 200미터 높이로 흰여울마을에서 절영해안산책로로

내려갈수있다.. 계단 중간쯤에 주민들이 이용했다는 맏머리샘이 있었다고 한다..

폭이좁은계단을 올라가면 금술이 좋았던 키작은 부부가 살았던 꼬막집을 볼수있는

꼬막집 계단과 무지개가 피어나기를 소망하는 염원이 담겨있는 무지개 계단..

1990년 절영해안산책로가 개설되면서 만들어진 피아노계단은 이송도 계단과 연결된다..

모양도 이름도 다양한 계단들은 절영해안산책로 연결되어있어서  가까이서 바다를

걸을수 있으며 군사보호 지역으로 묶여있었던 곳이라 청정의 모습을 지니고 있다..

영도팔경의 하나로 불리우며 이곳에서도 영화나 드라마가 많이 촬영 되었다..

 

 

 

 

 

 

 

 

 

 

 

그늘이 없다.. 그렇다고 나무가 심어져 있는것도 아니기에 여름에는 내리쬐는 햇빛을

감수하면서 걸어야 한다.. 왕복 2시간을 족히 걸어야 하니 바닷바람이 시원하다고 해도 더운건

어쩔수 없다.. 하지만 푸른바다와 벗삼아 걸으니 그런것쯤은 감수해야한다..  

영도의 원래 이름은 절영도였다고 한다.. 하루에 천리를 달린다는 천리마가 빨리 달리면

그림자가 못따라 올정도라 하여 끊을절 그림자영을 붙여 절영도라 불리웠고 삼국사기에는

신라 성덕왕의 김유신이 공을 기려 그의 순자인 윤중에게 절영도의 명마를 하사하였다는 기록과

견훤이 태조 왕건에게 절영도의 명마를 선물로 주었다가 절영명마가 고려에 이르면 백제가

망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돌려 받았다는 이야기가 절영도에 전해져 오고 있다..

1867년 개항이후 일제는 절영도를 목도라 부르며 군마를 길렀고 해방후에는 행정구역을

정비하면서 옛이름 절영도를 줄여 현재의 영도로 부르게 되었다 한다.. 

절영도해안길을 걸으면 조형물과 바다 속 풍경들 볼거리가 다양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