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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처럼자유롭게/그리운경상도

100년 역사가 있는 골목길 포항 구룡포 근대문화역사거리..

 

 

 

 

 

 

 

100년 역사가 있는 골목길 포항 구룡포 근대문화역사거리.. (여행일자 2015년 12월14일)

 

변화무상했던 포항의 날씨는 마음을 어느 한곳에 두지 못하게 갈팡질팡하게 만들었다.. 해가 나더니 눈이오고

눈이오더니 구름이 걷히고 다시 햇빛이 나기를 몇번 거듭하면서 기운을 빼놓는다.. 내가 반갑지 않는 모양이다..

호미곶에서 눈을 만났고 과메기로 유명한 구룡포로 오는 동안에도 비와 눈을 동반해선 시야를 흐리게 한다..

그런가하면 햇빛이 비추고 예전 어른들이 말하던 호랑이 장가가는날.. 이라는 우스광스런 날씨를 접했다..

구룡포 100년의 역사를 가진 근대문화 역사거리 맞은편 구룡포항에서는 때마침 과메기 축제가 한창 이였고

비는 소강상태였지만 지금까지 숱하게 접해온 변덕스러운 날씨가 어찌 변할지 몰라서 짐스러운 우산을

챙기고 도로를 건너 구룡포 근대문화 역사거리를 걸어보기로 했다..

 

 

 

 

 

 

 

 

 

 

 

 

 

 

 

 

 

내가 살고있는 인천 신포동에도 포항 처럼 일본식 가옥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그래서 였을까...

전혀 낯설지가 않는다.. 현존하는 건물들은 지금은 찻집으로 변해있고 음식점으로 변해 있지만 그 당시

이골목에서 살았던 일본인의 생활상을 엿볼수가 있었다.. 포항은 예전 동해 최대의 어업전진기지였고

그중 구룡포는 일제강점기인 1923년 일제가 구룡포항을 축항하고 동해권역의 어업을 관할하면서 일본인들이

이곳에 머물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때만해도 지역상권의 중심역할 했다고 하니 지금에 남아있는 가옥들이

그 역사를 대신한다고 볼수있겠다.. 한편으로는 일본에 의해 착취되었던 슬픈역사까지 담고 있었다..

 

 

 

 

 

 

 

 

 

 

 

 

 

 

 

 

 

구룡포 근대문화역사거리의 발자취를 재현하고자 1900년대 당시 형태로 제작한 모형우체통과 함께 

여명의 눈동자를 이곳에서 촬영했다고 한다.. 오래된 드라마와 오래된 건물들이 어울려 또다른 명소로

거듭나고 있다지만 걷는동안에 그다지 기분이 좋지만은 않았다.. 더군다나 기모노를 입고 역사골목을 걷는

체험도 있다고하는데 그런것도 별로 맘에 들지 않는다.. 일제당시 건물마다 쓰여졌던 용도를 자세히 

설명해 놓아서 과거로 돌아가는 기분이 들었고 낡은 창과 지붕과 담장들은 내리니 비와 어우러져

 오랜 사진을 꺼내보는 느낌이 들었다..

 

 

 

 

 

 

 

 

 

 

 

 

 

 

 

 

 

 

 

 

 

지금은 근대역사관으로 바뀐 이 건물은 1920년대 가가와현에서 온 하시모토 젠기치의 가옥이란다..

이 건물을 짓기위해 일본에서 직접 건축자재를 가져와 지었다고 하고 건물내에는 그 당시 호사를

누리고 살았던 생활모습과 집안의 새간살이를 그대로 재현놓았다.. 신발을 벗고 조심스럽게 집안으로

들어가 봤다.. 낡았지만 윤기가 도는 목조가옥은 삐그덕 거리는 소리가 더 요란스럽다..

창문을 통해서 보이는 바깥풍경은 멀리 구룡포항이 보이고 잘 가꿔놓은 정원이 한눈에 들어온다..

선어 운반업으로 시작해서 정어리 가공공장을 설립 학교조합의 곤리자까지 맡았다던 하시모토

젠기치의 가옥은 그 당시의 부와 명예가 어떤것이였는지 확연하게 느낄수 있도록 크고 화려했다

 

 

 

 

 

 

 

 

 

 

 

 

 

 

 

 

 

 

 

 

 

 

 

 

 

편치않은 마음으로 근대역사관을 관람하고 다시 골목길을 걷기 시작했다.. 어느새 비는 그치고 하늘이

맑아진다.. 일제강점기때 암흑과도 같았던 날이 지나고 해방을 맞는 느낌이랄까.. 그당시 살지는 않았지만

역사의 흐름을 고스란히 느낄수가 있겠다.. 골목길에는 구룡포 공원으로 올라가는 돌계단이 있다..

공원에서 내려다보는 항이 궁금해서 61개의 계단을 성큼 올라가본다.. 돌기둥에는 구룡포항을 조성하는데

기여한 구룡포로 이주했던 일본인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고 하는데 패전후 일본인들이 떠난후 돌기둥을

시멘트로 발라 기록을 없애버리고 돌기둥을 모두 거꾸로 돌려 다시 세웠다고 한다.. 

 

 

 

 

 

 

 

 

 

신라 진흥왕때 장기현감이 각 마을을 순찰하던 중 사라리를 지날때 별안간 천둥과 폭풍우가 휘몰아쳤다고

한다.. 그 비바람을 뚫고 용 열마리가 승천하다가 한마리 바다 속으로 떨어지고 말았다고 한다..

용이 아홉마리만 승천했다고 하여 그때부터 구룡포라고 불리었으며 구룡포 공원에는 용조각을 볼수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