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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처럼자유롭게/그리운경상도

논개의 이야기가 담겨있는 진주 촉석루 의암..

 

 

 

 

 

논개의 이야기가 담겨있는 진주 촉석루 의암.. (여행일자 2015년 11월15일)

 

진주와 진주성하면 그래도 가장 먼저 생각나는건 임진왜란 3대첩중 진주대첩과 논개를 생각하게 된다..

왜군의 재침으로 성이 무너지자 촉석루 아래 의암으로 적장을 유인한뒤 적장을 껴안고 남강에 몸을 던진

논개를 기리는 사당과 함께 촉석루는 영남의 제일 누각임을 자랑하고 있다..  촉촉히 가을이 깊어가는 비가

하루종일 내렸고 논개의 흔적을 따라 진주성을 천천히 걸어 보았던 지난 가을날의 추억들이 떠오른다..

 

 

 

 

 

 

 

 

 

 

 

진주성의 남쪽 벼랑위에 세워진 촉석루는 영남 제일의 누각이라고 한다.. 고려 고종28년에 김지대가 창건한후

여러번 고쳐 지었고 강 가운데 우뚝솟은  까닭에 누각이름을 촉석루라고 했다고 하는데 남장대 또는 장원루라고도

불렀다고 한다.. 그당시 전쟁이 없었을때는 묵객이 그림을 그리거나 시를 쓰며 풍류를 즐겼고 과거를 치르는

고사장으로 쓰였던 곳이 임진왜란때는 진주성을 지키는 지휘본부로 쓰여졌다고하니 안타까운 역사를 떠올리게 한다..

 

 

 

 

 

 

 

 

 

 

 

논개의 넋을 기리기위해 영정과 위패를 모신사당인 의기사는 촉석루 바로 옆에 위치해 있다..

논개가 어떤 인물인지에 대한 논란은 참 많았다..  기생이였다는 말도 있었고 사대부집 마님이였다는 말도

있었지만 중요한건 하나 나라를 구하기위해 적장을 안고 남강으로 몸을 던져 적장과 함께 죽음을

선택했다는 그것만으로도 역사적으로 의미가 깊은 사건이라고 할수 있겠다.. 그때 그 당시에

나라가 위기에 처해있었을때 나도 그런 선택을 했을지 의기사 앞에서 생각하게 한다..

 

 

 

 

 

 

 

 

 

 

 

 

 

 

남강이 흐르는 곳에 바위한개가 떠있다.. 이 바위는 논개가 왜장을 안고 투신했던 의암이라는 바위다..

논개의 의열을 기리고자 진주의 선비와 백성들이 이 바위를 의로운 바위라고 해서 의암이라고 이름했으며

바위 옆을 보면 한문이 새겨져 있는걸 볼수 있는데 인조7년 정대륭이 의암이라는 글자를 새겨넣었다 한다..

 

 

 

 

 

 

 

 

 

 

 

촉석루에서 보이는 진주는 남강이 흐르고 가을이 깊어가는걸 느끼겠다.. 비가 내려 조금은

거추장 스럽게 느껴졌지만 이렇게 시간이 지나서 묵은 사진을 꺼내볼때면 또다른 느낌으로 마음에

와 닿는다.. 그리고 진주하면 생각나는 한사람.. 지금 잘살고 있는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