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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처럼자유롭게/그리운경상도

낙동강 1,300리 마지막으로 남은 주막 예천 삼강주막..

 

 

 

 

 

낙동강 1,300리 마지막으로 남은 유일한 주막 예천 삼강주막.. (여행일자 2015년 7월6일)

 

무척이나 더운날이였다.. 연일 계속되는 폭염에 비는 오지않아서 아스팔트에서 올라오는 열기로

숨쉬기도 힘들게 느껴졌었다..  집에 있어도 더워서 숨통이 막힐지경인데 굳이 예천을 다녀오겠다고

집을 나섰다.. 이런일이 어디 한두번 있는 일도 아니고 마음먹었을때 후딱 다녀와서 일하는게

편할꺼란 생각이 들어 1박2일 휴가를 내고 예천과 영주 그리고 시간되면 봉화까지 다녀오리라 마음먹었다

제일 먼저 들린곳은 충효의 고장 예천 예천중에서도 지난 2월에 가지못했던 삼강주막부터 들리기로했다

 

 

 

 

 

 

 

 

 

 

지금 생각하면 머리위로 내리쬐는 햇빛이 뜨거운줄도 모르고 다녔던거같다.. 조금만 걸어도 땀이 비오듯

 쏟아지는데 낙동강 700리를 잇는 삼강주막에 오니 딱 트인 경치가 시원하다.. 햇빛은 뜨거운데 나무 그늘에 있으면

바람도 시원한게 잠이 솔솔  눈꺼풀이 천근만근처럼 느껴진다.. 1900년에 지어진 삼강주막은 규모는 작지만

건축역사 자료로 요긴하게 쓰이고 있으며 부엌에 가면 예전 글을 모르는 주모 할머니가 막걸리 주전자의

숫자를 벽면에 금을 그어 표기한 외상장부도 있으니 눈여겨 보길 바란다.. 낙동강따라 유일하게  남아있다는

주막터 삼강주막은 오고싶어서 안달난 곳이기도 했다..  사진으로만 봐오고 이야기로만 들어왔던 곳이라

궁금해서 미칠지경이였다.. 하지만 막상 와보니 옛모습이랍시고 흔적은 찾아보기 힘들어서 다소 실망스럽긴했다

항간에 지인들이 말하길 삼강주막이 생각보다 토속적이지 못하고 앉아서 막걸리 한잔 마시는게 전부라고 하던데

삼강주막은 삼강나루의 나들이객에게 허기를 면하게 해주고 보부상들의 숙식처와

시인의 묵객들의 유상처로 이용되었다는게 중요하겠다..

 

 

 

 

 

 

 

 

 

 

 

 

 

 

 

 

 당시 삼강은 한양으로 통하는 길목으로 물류 이동이 활발했다고한다 그래서 보부상과 사공숙소가 따로 있었고

장날이면 나룻배가 30여차례나 오갈정도로 분주했으며 밤이되면  처음보는 사람과 호롱불에 둘러앉아

야담을 나누면서 잠을 청했다고 한다..  지금 삼강주막에 남아있는 건물은 마을 어른들의 증언과 고증으로

새로 복원했지만 실제 건물은 1934년 대 홍수로 인해 모두 떠내려가고 망가졌다고 한다..

날도 덥던데 유치원 아이들이 견학을 온 모양이다.. 재잘재잘 되는 소리와 선생님이 아이들을 부르는

소리 그리고 주막마다 앉아서 막걸리는 마시는 사람들로 평일인데도 북적이고 있었다

날도 덥고 해서 시원한곳에 앉아서 막걸리 마시면서 피로를  풀고도 싶었지만 혼자라 참아야했다

혼자 하는 여행은 어떤행동을 함에 있어 가끔은 망설이게 한다..

 

 

 

 

 

 

 

 

 

 

 

 

 

 

 

 

 

 

 

 

 

 

 

 

 

 

 

 

삼강나루터는 문경 주흘산맥과 안동 학가산맥 그리고 대구 팔공산맥의 끝자락이 만나서

내성천과 금천, 낙동강이 합류하는 곳에 위치하는 물과 육지의 요충지라고 했다...  예로부터

서울로 장사를 하러 가는 배들이 낙동강을 오르내릴때 선비나 장사꾼들이 문경새재를 넘어 서울로

갈때도 반드시 거쳐 가던 길목이였다고 한다..  그리고 나루터 주변은 낙동강을 오르내리는 소금배를

통한 농산물의 집산지였고 대구와 서울을 연결하는 군사도로 였다고도 한다..  배 두척으로는  소와

각종물류 그리고 산을 수송했다는데 인근 교량 설치로 인하여 1980년경 나룻배 운행이 중단되었고

지금 있는 나룻배는 2013년 청소년들의 체험학습장으로 이용할 목적으로 나룻배를 띄어놓고 있다고한다..

가물어서 강바닥이 훤히 드러나 보이지만 예전에는 이곳에서 배를 타고 건너야 했던걸 상상해 본다

그리고 막걸리 한잔 마시지 못하고 온게 못내 아쉬움으로 남는다.. 나중에는 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