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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처럼자유롭게/그리운경상도

봄이면 노란꽃을 피운다는 부석사 조사당에 있는 신비로운 선비화..

 

 

의상대사가 꽂아논 지팡이에 봄이면 노란꽃을 피운다는 부석사 조사당에 있는 신비로운 선비화...

 

여행일자 2013년 10월 21~22일 가을을 찾아 떠났던 강원도 경상도 여행 1박2일..

유독 노란색을 좋아하는 여행자는 전국이 단풍으로 물들고 있는 본격적인 가을로 접어들때면 은행나무길로

유명한 부석사를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부석사 조사당 처마밑에 심어져있는 선비화는 봄이면 노란꽃을

 피운다고 하는데 여행사 상품중에 협곡열차와  연결코스에 항상 들어가는 부석사는 올해만해도 셀수없이

다녀온곳이지만 그곳에 의상대사가 꽂아놓은 지팡이에 잎이돋고 봄이면 노란꽃을 피운다는 이야기도 함께 여행온

다른 여행자의 입을 통해서 들었으니 나름 여행지에 대해선 풍부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자부했던 나의

자만심도 얇게 깔려져있는 얕은 무식한 지식이라고 스스로를 질책해 본다... 이런 무식한 바라미..

 

 

 

의상대사가 인도로 가기전에 항상 가지고 다녔던 지팡이를 이곳 부석사 조사당 처마밑에 꽂아 놓으며

지팡이에서 가지가 돋고 잎이 나오고 꽃이 피면 무사히 살아계시는구나.. 생각하라며 먼길을 떠났다고한다...

그후 그 지팡이에서는 의상대사가 말한것처럼 잎이 나고 봄이면 노란꽃이 피웠다고하는데

특별히 물을 주거나 거름을 주지않았는데도 스스로 커서는 1,300여년동안을 죽지않고 지금에까지

살고 있다고하니 신비로운 나무가 아닐수가 없다... 그리고 더 신비로운건 매년 봄이면 꽃을 피우다가도

나라에 큰일을 닥치는 날이면 꽃이 피지 않았다고 하는데 올해는 피었는지 궁금해진다..

선비화를 골담초라고도 불렸는데 잎이나 꽃을 삶아 달여 그물을 마시면 아들을 낳고 신경통과 관절염에

좋다는 속설이 퍼지면서 잎을 따가고 뿌리채 뽑아갈러는 사람들 때문에 지금은 보기 힘들정도로 촘촘하게

짜여져있는 철창속에 갇혀있는 신세가 되어버렸으니 햇빛인들 바람인들 제대로 들어가지 않을거 같다..

저렇게 갇혀있다고 말라 죽어버리는건 아닌가 하고 생각이 들정도였는데

조그맣게 뚫어져있는 틈사이로 실눈을 뜨고 들여다보니 잎이며 줄기며 튼튼하게 자라고

있는듯해서 조금은 안심을 해본다....   선비화 사진은 찍지 않았으니 나중에 찾아가서 직접 보시길..^^

 

 

 

 

 

 

무량수전 뒷편으로 삼층석탑길을 따라 계단길을 따라 올라가면 조사당 처마밑 선비화를 볼수가 있는데

찾아가는 길은 그렇게 어렵지가 않다...  10여분 올라가면 정면3칸 측면1칸 규모의 작은 전각을 볼수가있는데

그곳이 조사당이다.. 조사당의 건립연대는 확실치는 않지만 1916년 조사당 수리중 발견된 묵서명에는

고려 우왕 3년에 건립되었다고 한다....  조사당 건물에는 세석천과 범천 그리고 사천왕상의 벽화가

그려져 있었는데 수리당시 떼어내어 지금은 보장각에서 보관하고 있다 한다..

조사당까지 올라가는 동안에는 양옆으로 몇백년을 살아있는지 헤아릴수는 없지만 아름드리 나무들이

아직까지도 푸른 잎들이 무성한채로 자라고 있었고 보는 이의 마음까지도 풍성하게 만들어준다..

 

 

 

 

 

 

 

 

 

 

 

 

그리고 유홍준이 극찬했던 부석사 무량수전의 배흘림기둥과 햇빛을 통해서 앉아있는 부처님을 볼수있는 안양루는

부석사의 또다른 볼거리중에 하나이다... 그리고 문무왕때 의상스님이 화엄학을 공부하기위해 당나라에 갔을때

의상스님을 연모한 선묘라는 낭자가 있었다고 한다... 의상스님이10년간의 수학을 마치고 귀국뱃길에 오를때 

선묘가 선창으로 달려갔으나 의상이 탄 배는 벌써 사라지고 없자 바다에 몸을 던져 용으로 변신하여 의상스님이 탄 배를

호위하여 무사히 귀국하게 하였다 한다... 그후 의상스님이 화엄학을 펴기위해 왕명으로 이곳 봉황산 기슭에

절을 지으려 할때 살고있던 많은 이교도들이 방해하자 선묘신룡이 나타나 조화를 부려 부석사에 있는 바위를

공중으로 들어올려 물리쳤다하여 떠있는 바위라는 이름을 따서 부석이라 불렀다고한다..

그후 선묘신룡이 부석사를 지키기 위해 석룡으로 변신하여 무량수전 뜰 아래 묻혔다는 이야기도

전해져 오고 있다한다....

 

조선 숙종때 이중환의 택리지 기록에 의하면 아랫바위 사이에 약간의 틈이 있어 실을 넣어 당기면

걸림없이 드나들어 뜬돌임을 알수가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관광객들이 돌위에서 뛰어대는 바람에

떨어져있는 바위가 지금은 붙어버렸다고하는데 그건 직접확인을 해봐야 알거같다...

 

 

 

 

월요일부터 오늘까지 따져보면 딱 3일동안의 휴식인데도 몸이 근질근질한게 오늘은 카메라를

메고 인천 송월동에 있는 벽화라도 찍고 와야할러나 좀이 쑤셔서 가만 있지를 못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