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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처럼자유롭게/그리운경상도

청록파시인 조지훈고향 주실마을에서 시를 배우다..

 

 

청록파 시인 조지훈의 고향 주시마을에서 선비의 지조를 배우다..

 

여행일자 2012년 11월25일 빡빡했지만 즐거웠던 당일 영양여행..

어제는 햇빛이 좋더니 오늘 잔뜩 찌뿌린 하늘은 눈이라도 내릴듯하다

어제부터 오늘 아침까지 뉴스에서는 전국에 폭설이 내릴거라고 하는데

이런날씨가 계속된다면 눈이 내릴거같다.. 한때는 구라청이라고 했는데

요즘들어서는 98% 딱딱 맞아 떨어진다... 눈이오면 좋았던때가 언제였더라

지금은 미끄러져 팔이 부러질까바 걱정스럽고 길이 미끄러워 차를 가지고

가야하나 그것부터 생각이 드니 나이를 먹을수록 순수한 감정들은 점점

 퇴색되어 가고 있는듯하다....  그리고 눈이오면 공사현장은 공치는날

약속한 개통일이 늦어지니 현장소장 얼굴빛이 오늘은 그다지 좋지않다..

오늘은 흐린 날씨만큼이나 현장분위기도 굳어 있을꺼같다..

 

당일로 다녀온 경북영양 여행길에 청록파 시인 조지훈의 고향 주실마을을 다녀왔다..

얼마전에 읽었던 이규원이 쓴 명당이라는 책이 있다.. 사람의 흥망성쇠는 터에 따라서

좌우한다고해도 과언이 아닐정도로 터가 중요한데 그책에서는 선비의 고장은 따로 있다고 했다..

문필봉에 연적봉.... 청록파시인 조지훈이 태어난곳이 선비의 기가 느껴지는 그런 명당이라했다

해설자의 말에 의하면 신혼부부들이 조지훈이 태어난 태실과 공부했던 방을 일부러라도

들여다보고 간다고하는데 이렇듯 영양 주실마을은 조지훈뿐만 아니라 한국인문학의 대가인

조동일과 조동걸.. 조동원 교수등 역사에 남는 많은 학자들을 배출했다고 한다..

또한 주실마을은 실학자들과의 교류를 일찍 개화한 마을이였고 일제 강점기때에도

압박에 굴하지않고 끝까지 창씨개명을 하지않았던 지조있는 마을이였다 한다..

 

 

 

 

굴뚝에는 연기가 피어올라오고 따뜻한 느낌마저 들었던 조용하고 따뜻한 마을이였다..

북쪽으로는 일월산이 있고 서쪽에는 청기면 동쪽에는 예전에 여름에 캠핑을 했던 수비면

남쪽에는 영양읍과 맞닿아 있는 주실마을은 조선중기 환란을 피해 한양조씨들이 이곳에서

정착한 한양 조씨들의 집성촌이며 하늘에서 내려다본 전경이 배 모양을 닮았다 해서 주실이라

부르며 산골등짝이가 서로 맞닿아 이루어진 마을이라 해서 주곡이라고도 부르고 있다 한다..

 

 

 

 

호리병을 가지고 숨었다... 라는 뜻을 가진 주실마을의 가장 중심에 있는 호은종택을 시작으로

조지훈이 어려서 한문을 배웠다는 월록서당과 조선 숙종17년에 문과에 급제한후 외교 문서를 담당하는

관청과 왕세자 교육 그리고 국왕이 비서기관등에서 벼슬을 했다는 옥천조덕린의 고택인 옥천종택을

직접 볼수 있다.... 한국근대 문학에 큰 발자취를 남긴 조지훈과 그형 조세림이 태어난  호은종택은

아까도 말했듯이 많은 사람들이 조지훈의 태실과 공부방을 꼭 보고간다고 했다..

 

 

 

 

고택을 뒷편으로 언덕으로 조금만 올라가면 시인의 숲이 나온다.. 이곳에는 조지훈이 남겼던

시와 함께 산책로로 꾸며져있으며 보호숲이고 주실쑤라고 불리우고 있다한다..

밖에서 보면 숲에 가려 마을이 보이지 않는데 마을로 들어오는 나쁜기운을 막는다고한다..

낙화와 승무를 비롯하여 스물한살에 요절한 그의 형이였던 조동진의 시비가 있었다.

당제를 지내는 당나무와 수령이 500년이 된 소나무 그리고 산딸기가 많이 열린다고했다..

 

 

 

학교다닐때 말고는 그동안 잊고 지냈던 시를 주실마을에 다녀오고나서 다시 읽어보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