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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처럼자유롭게/그리운강원도

단종의 슬픔과 비통함을 눈으로 덮은곳 영월 청령포..


단종의 슬픔과 비통함을 눈으로 덮은곳 영월 청령포..

 

동생들하고 친구하고 영월로 여행을 한적이 있었다..

선암마을에서 지체하다보니 좀 늦은시간에 청령포 도착... 배시간을 놓쳐

가까이 있는 단종의 유배지인 청령포를 들어가지 못한채 먼 발치서 발만 동동 구르며

바라보다 아쉬운맘 뒤로한채 돌아와야만 했던때가 작년 늦여름이였던것으로 기억한다

그눔의 막걸리 한 주전자만 더 마시지말고 청령포로 왔어야했는데 한잔 더하고 가자던 

여행에 함께 했던 사람들도 잠시 잠깐 원망도 해봤던 잊지못할 아쉬움이 있는곳이다

그때의 서운함을 뒤로한채 한번쯤 꼭 다시 다녀오리라 마음먹었던 청령포를

소담스레 흰눈이 내리던날에 일부러 시간을 내서 영월 청령포를 다녀왔다..

이곳 청령포로 유배되었던 단종의 비통함과 슬픔을 보여주기 싫었을까...

앞이 보이지 않을정도로 함박눈이 내려 여행자를 힘들게 한다..

 눈쌓인 도로를 몇번을 미끄려져서 도착한 영월 청령포 마음이 두근거린다


국가 지정 명승 제 50호로 지정된 영월군 남면 광천리 남한강 상류에 위치한 단종의 유배지 청령포..

비운의 왕 조선 6대왕인 단종이 숙부인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찬탈당하고 상왕으로 있다가

그 다음해인 4156년 성상문 등 사육신들의 상왕복위의 움직임이 사전에 누설됨으로써

상왕은 노산군으로 강봉되어 첨지중추원사 어득해가 거느리는 군졸 50인의 호위를 받으며

원주, 주천을 거쳐 이곳 청령포에 유배되었고 하는데 고불고불 산새는 수려하지만 길은 험난하다

청령포는 동, 서 , 북 삼면이 물로 둘러쌓이고 서쪽으로는 육육봉이라 불리는 험준한 암벽이

솟아 있어 나룻배를 이용하지 않고는 밖으로 출입할수 없는 마치 섬과도 같은 곳이였고

단종은 이 적막한 곳에서 외부와 단절된 유배생활을 했다고 하는데  당시에는 이곳에 거처할수

있는 집이 있어 호장 엄흥도는 남몰래 밤이면 이곳을 찾아 문안을 드렸다고 한다..

 

 

늦여름 청령포에 왔을때는 배를 타야만 들어갈수있었는데 겨울에는 그냥도 걸어갈수있었다..

꽁꽁 얼어버린 강위로 눈이 제법 쌓이고 조심스럽게 걸어가면 가까이 있는듯 까마득하게 느껴진다

청령포는 수백년의 역사만큼이나 수백년생의 거송들이 들어찬 수림지로 단종어소를 중심으로

주위에 울창한 송림을 이루고있으며 이날 마치 눈이 내려 그 모습은 더 수려해보였다.

 단종이 유배지라고 하기에는 너무 멋지게 우거진 송림들이 마치 휴양림을 걷고 있는 기분이였지만

잠시 잠깐 단종이 되어 거닐때는 외롭게 혼자서 지내야했던 단종의 비통한 마음을 느낄수가 있었다..
왜 이곳은 주책없이 아름다운거얏...ㅡㅡ

 

 

 

단종어소는 승정원 일지의 기록에 따라 기와집으로 그 당시의 모습을 재현하였다

어소에는 당시 단종이 머물던 본채와 궁녀 및 관노들이 기거하던 행랑이 있으며

밀랍인형으로 당시의 모습들을 보여주고있다

 

저 안에는 1763년 세워졌으며 총높이 162센티미터크기의 오석으로 제작된 단묘재본부시유지가 있다

앞면에는 '단종이 이곳에 계실 때의 옛터이다' 라는 글이 영조대왕의 친필로 음각이 되어있고

그 뒷면에는 영조 39년 계미년 가을 울면서 쓰고

어명에 의하여 원주감영에서 세웠다 지명은 청평포이다' 라고 기록이 되어있다

 

 

이 소나무 참 신기했다.. 단종어소를 향해 고개를 숙이고있었는데 영월 장릉인가.. 그곳에 가면

이처럼 단종을 향해 고개를 숙이고있는 소나무를 볼수있다고한다... 미물들도 단종의 마음을 아는듯

그저 묵묵하게 가까운곳에서 그를 지켜봤을거란 생각을 해본다..

 

청령포 수림지에 위치하고 있는 소나무1988년 천연기념물 제 349로 지정된 단종 유배시의 설화를 간직하고 있는 관음송..

단종이 유배생활을 할때 두 갈래로 갈라진 이 소나무에 걸터앉아 쉬었다는 전설이 있다

또한 단종의 유배 당시 모습을 보았으며(관) 때로는 오열하는 소리를 들었다 (음) 는 뜻에서

관음송이라 불리어왔으며 소나무 크기는 높이 30센티미터 둘레 5미터로 지상에서

두갈래로 갈라져 동, 서로 비스듬이 자랐다. 수령은 600년으로 보고있는데

이는 단종 유배시의 수령을 60년으로 하여 계산된것이다

가까이서 관음송을 보면서 갈라진 소나무사이에 단종이 걸터앉아 있는 모습이 보이는듯했다

 

 

단종이 청령포로 유배된후 한양을 향하여 시름에 잠겼다고 해서 불리우던 노산대..

 

 

 금표비를 비롯하여 왕방연시조비가 있는데 

왕방연의 시조비는 금부도사 왕방연이 단종께 사약을 진어하고 한양으로 돌아가는길에

비통한 심정으로 청령포를 바라보며 읋은시조인데 그내용은


천만리 머나먼길에 고운님 여의옵고 

내 마음 둘 데없이 냇가에 앉았으니

저 물도 내 안 같아서 울어 밤길 예 놋다...

 

사실 단종은 사약으로 목숨을 잃은게 아니고 활시위에 자결을 했다고 전해진다..

한편으로는 타살이라고 생각해서 아직까지도 연구를 하고 있다고하는데 자살이든 타살이든

17살의 젊은 나이로 그렇게 힘없이 죽어야만했던 단종의 비통함을 요즘사람들은 몇명이나 알까..

그리고 훗날 이곳 청령포가 역사적으로 아픔이 있는곳이란걸 기억이나 할런지...

 

 

 

단종의 비통함과 슬픔을 눈으로 잠시 덮고 싶었던 것일까...

눈으로 덮힌 청령포는 푸른날에 와서도 느꼈던 서글픔과 외로움을 더욱더 생생하게 해주었다

수려한 절경과 500년이 넘도록 푸르름을 간직한 거송들 속에서 우리나라의 슬픈역사와

단종의 슬픔을 간직한채로 청령포는 나의 추억속에 깊이 자리 잡는다

 

 비운의 왕 단종은...

1441년 7월23년 (세종23년) 문종과 현덕왕후 권씨사이에서 원자로 태어났으며 이름은 홍위이다

8세가 되던 1448년에 왕세손에 책봉되었고 예문관제학 윤상으로 부터 학문을 배웠다

1450년 2월 세종이 승하하고 문종이 즉위하게되자 그해 7월20일 왕세순이였던

홍위는 10세의 나이로 왕세자로 책봉되었으며 1452년 5월18일 문종이 승하후

단종은 경복궁 근정전에서 12세의 어린나이로 제 6대 왕에 즉위하였다

계유정난이후 1455년 6월11일 단종은 세조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15세에 상왕이 되었으며

박팽년, 성상문 등이 단종의 복위를 꾀하다가 발각되어 모두 죽임을 당하는 사육신사건이 일어나

1457년 노산군으로 강봉된 뒤 1457년 윤6월22일 창덕궁을 출발하여 7일 후인 윤 6월28일

유배지인 영월 청령포로 유배되었고 그해 9월 금성대군 유가 다시 그의 복위를 꾀하다가

사사되지 단종은 노산군에서 서인으로 내려지고 결국 죽음을 강요당해 1457년 10월24일 유시에

17세의 어린나이로 관풍헌에서 승하하셨다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