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선이 노닐던 무릉도원을 닮은 동해 무릉계곡.. (여행일자 2025년 5월17일)
일찍 찾아온 더위는 5월의 부드러운 햇살마저도 숨이 막히게 했다..
10전에 다녀간 무릉계곡이 이렇게 까지 좋았었나 하는 생각이 이번에
오니 느끼겠다.. 5월의 푸르름은 계곡 물소리마저도 상쾌하게 했다..

시간만 더 있었다면 무릉계곡을 모두 탐방하고 싶었다.. 패키지여행은
운전을 안해서 편한것도 있지만 시간이 없어서 가끔은 아쉽기도 하다..
동해에 위치한 무릉계곡은 국내 최초로 지정된 국민 관광지이며 용추
폭포를 비롯하여 쌍폭포, 관음폭포, 박달폭포까지 두루두루 볼수있다..


지금 걷는길이 베틀바위 산성길이라고 했다.. 베틀바위 산성길은 태교의
원시림 휴휴이승휴 사색의길, 베틀릿지 비경, 소원의 길.. 두타산성터와
박달령을 지나 용추와 쌍폭포로 이어지는 두타비경으로 이야기가 있는
공간 상서로운 기운이 행운을 부르는 길한 길 소원이 이루어지는
희망의 길이라고 한다..

무릉계곡 초입 무릉반석에 가로로 쓰여진 무릉선원 중대천석 두타동천...
이라는 암각서로 그 아래는 옥호거사서신미라는 각서가 있는데 신미년에
옥호거사가 썼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고 한다.. 봉래 양사언이 강릉부사
재직기간에 전입 정두형 부사의 부친상 관계로 신미년에 광천을 방문
했을때 무릉계곡을 방문하여 썼다는 이야기가 있고 또 하나는 옥호자
정하언이 삼척부사 재직기간중 신미년에 썼다는 설도 있다..


금란정이다.. 일제감정기를 거치면서 향교가 폐강되었고 이를 분개한
유생들이 울분을 달래기 위해 금란계라는 모임을 만들고 그 뜻을 기념
하기위해 정각을 건립하고자 하였으나 일본의 방해로 중단되었다..
그후 당시 계원들은 선배 계원들의 뜻을 받을어 다시 정자를 건립하기로
하고 1947년 북평동 단봉 석경 등에 금란정을 건립하였다고 한다..
무릉계곡에 있는 금란정은 1958년에 이전 지금 위치해 있다..



김홍도가 그렸던 무릉계도 무릉반석에서 풍류를 즐기는 선비와 소나무
한그루까지도 섬세하게 묘사했을정도로 아름다운 무릉반석은 석장 또는
석장암으로 넓은 반석이 펼쳐져 자연의 경이로움을 느끼게 하며 기암
괴석과 함께 이곳을 찾았던 많은 시인 묵객들의 기념각명이 새개져있다..

명승지 37호로 지정된 무릉계곡은 두타산과 청옥산 사이로 흐르며
4km 길이의 계곡이다.. 계곡은 화강암으로 형성된 못과 폭포와
아름다운 바위들이 이뤄진 빼어난 경관을 자랑하며 동해안 제일의
산수로 이름을 떨치며 자연적 역사적 명소로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고려시대 이승휴가 이곳에 살며 제왕운기를 저술하였고 조선시대에
김효원의 두타산일기 그리고 허목의 유산기 등에서 옛선비들이 무릉
계곡을 사랑한 흔적이 전해지고 있다..


맹호암, 명귄탄, 와룡추, 학소대, 운영교, 방화계, 수류천, 함월지 그리고
낙하담을 무릉구곡이라 하며 무릉계곡을 따라 펼쳐져 있으며 계곡을 따라
용해오름길도 볼수 있다.. 삼화사 창건당시 약사삼룰 백, 중, 계 삼형제가
처음 서역에서 동해로 용을 타고와서 생겼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이때 맏형은 흑련을 가지고 흑련대에 둘째는 청련을 가지고 청련대에
막내는 금련을 가지고 금련대 각 머물렀다고 하며 지금의 삼화사,
지상사, 영은사라고 전해지며 가뭄이 심할때는 용오름길에서 기우제
지내고 있다 한다..



불도를 닦는 수행을 뜻한다는 두타산 무릉계곡에는 천년고찰 삼화사가
있다.. 임진왜란과 한국전쟁으로 인해 화재로 전소되었고 근래에 들어
건물이 중창되었다고 한다. 신라 선덕여왕때 흑련대라는 이름이였고
태조왕건이 삼화사로 이름을 바꾸었다고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