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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처럼자유롭게/그리운경상도

자연경관 진남교반이 보이는 문경 고모산성..

 

진남교반이 보이는 문경 고모산성.. (여행일자 2021년 11월12일)

 

바람이 많이 불었던 그래서 하늘이 유난이 맑았던 날이였다.. 문경

일대를 돌아보고 마지막 고모산성에 올랐다..  경북팔경중 제1경에

속해있는 진남교반을 위에서 바라보기 위해서다.. 

 

 

 

 

 

 

고모산성으로 오르는 길은 그렇게 험하지는 않았다.. 그저 산길을

사부작 사부작 걷는 기분이랄까..  늦가을의 정취가 가득 풍겼던

그길위에 낙엽이 떨어지고 가을이 고즈넉하게 내려앉아있었다.. 

 

 

 

 

 

고모산성 가는 길목에는 토끼비리길이 있다.. 절벽에 바위를 깎고

나무로 이어 길을 만든 길을 잔도라고 하는데 고려를 건국한 태조

왕건이 남쪽으로 진군하다가 이곳에서 길이 막혔을때 토끼가 절벽을

타고 지나가며 길을 안내해 주어 길을 만들고 토천이라 불렀다한다..

나중에 토끼비리라 불렀고 그길은 토끼 한마리가 겨우 지나갈

정도로 좁은길이라고 한다.. 

 

 

 

 

 

 

고모산성은 10여분 올라오면 보이는곳에 위치해 있다..  오정산이

영강과 만나는 끝부분 깎아지듯 절벽위에 세워진 고모산성은 군사

방어용으로 지어졌다..  삼국시대였던 신라, 백제, 고구려의 접경이

가까워 전투가 종종 벌어지기도 했었다고 한다.. 

 

 

 

 

 

고려시대 이후 큰 전쟁이 없다가 조선말기 의병 전쟁을 시작으로 

한국전쟁으로 거치면서 고모산성이 기록에 의해 나타났으며 

운강 이강년의 한말 의병항쟁때 고모산성 안팎의 마을들이 모두

불에 탔고 지금도 그때의 흔적이 느티나무에 남아 있다고 한다..

 

 

 

 

 

 

재를 넘던 길손들의 휴식처로 식당 여관을 겸했던 돌고개 주막은

문경시에서 2003년에 발굴해서 현재의 모습으로 조성했다고 한다..

오고 가며 소원을 빌며 쌓았던 수많은 돌탑과 성황당이 보인다..

 옛날 과거시험을 보기 위해 돌고개를 넘었던 선비들에게 꿀떡을

팔았다고 꿀떡고개를 호랑이가 나타나 꿀떡하나 주면 안잡아먹지.. 

했던 햇님달님의 전설을 생각했으니 생각과 관점의 차이다.. 

 

 

 

 

 

 

 

바람에 휘청거렸지만 성곽을 따라 걸어봤다.. 돌맹이의 단단함이 

느껴지고 무너지지 않게 쌓았을 기술에 감탄해본다.. 무엇을 하던

우리민족의 손재주는 그 어떤 나라도 따라갈수가 없다.. 

 

 

 

 

 

 

고모산성은 삼국시대 5세기경 신라에서 계립령로인 문경과 충북 

미륵사지를 개설할때 북으로부터 침입을 막기 위해 축조 된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북쪽으로 주흘산이 보이고 남쪽으로는 다른곳으로

길을 만들수없어 반드시 고모산성을 통과해야 했기에 임진왜란과

동학농민운동등 전략적 요충지였다 한다.. 

 

 

 

 

 

고모산성을 할미산성이라고 불리며 둘레는 1,270m로서 장방형을

이루고 있고 성의 높이가 낮은곳은 1m 높은곳은 11m 폭은 2~3m

동쪽에는 암문1개가 있고 남쪽 1km 위치에는 토끼비리가 있다..

 

 

 

 

 

고모산성 남문으로 삼국시대 산성 전투때 던졌던 투석용 몽돌

무지가 왼쪽구석에 남아있다..  산성 바깥에서 성문을 바라볼때 

입면 凹자 모양을 하고 있으며 성문에는 문루가 있다는데 고모

산성은 문루가 없었던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성곽을 따라 탁 트린 풍경이 옆으로 바다였다면 제주도 우도라고

우겨도 될 정도로 우도를 닮았다.. 세찬 바람에 억새는 흔들리고

미세먼지까지 몰고가니 하늘도 맑았고 구름도 유난히 하얗다.. 

 

 

 

 

 

 

1933년 대구일보사가 주최한 경북8경 선정에서 제1경으로 선정된

진남교반의 모습이다.. 깎아 내린듯한 절벽밑으로는 낙동강 지류인

가은천과 조령천이 영강과 합류하여 돌아나가는 지점으로 때묻지

않은 수려한 자연경관이 고스란히 펼쳐진다.. 강위로 철길, 구교

그리고 신교인 3개의 교량이 나란히 놓여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