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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처럼자유롭게/그리운충청도

벚꽃이 피면 다시 가고픈 천년고찰 공주 마곡사..

 

벚꽃이 피면 다시 가고픈 천년고찰 공주 마곡사.. (여행일자 2018년 4월16일)

 

바람도 따뜻해서 봄인가 싶더니 아직 겨울이 끝나지 않았다고 눈이 한바탕 내린다.. 

봄이오니 꽃피는걸 시샘하는 꽃샘 추위였다고 생각하니 봄이 멀지않았음에 가슴이

또 뛴다...  남쪽에는 매화가 피었다던데 봄바람에 머리 흩날리며 꽃놀이 가고싶다..

 

 

 

 

 

충남공주에 위치한 마곡사는 태화산 동쪽 산허리에 위치해 있으며 2018년 6월에

산사 한국의 산지 승원이라는 명칭으로 유네스코에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한번쯤

다녀왔던 사람들은 마곡사가 아름답다고 했고 하필이면 벚꽃이 만발할때 다녀왔으니

벚꽃이 필때쯤이면 마곡사에 가고싶어 엉덩이가 들썩일듯 하다.. 

 

 

 

 

 

 

마곡사는 사찰도 아름답지만 들어가는 입구도 계곡과 산으로 아름다우니 마곡사를

다른말로 춘마곡이라고도 부른다.. 봄이면 어딘들 아름답지 않은곳이 없겠지만은 

마곡사의 봄은 나무와 봄꽃들로 태화산 전체가 절경을 이루니 붙혀진 애칭일거 같다.. 

 

 

 

 

 

 

주차장부터 핀 벚꽃이 해탈문과 천왕문 입구에도 어지럽게 피었다..  보통 사찰은

일주문부터 시작되지만 마곡사는 해탈문이 정문에 속한다..  속세를 벗어나 부처님의

세계인 법계로 들어감을 뜻하며 해탈하겠다는 원력을 갖게 된다고 한다..   해탈문을 

통해 걸으며 먼저 세상을 등진 친구를 마음속에서 영원히 떠나 보냈다.. 

 

 

 

 

 

해탈문을 지나면 바로 천왕문이 있다.. 마곡사의 두번째 문으로 동서남북의 불법을

수호하는 호법신장인 사천왕상을 조성해 안치해놓았다..  마곡사는 640년 무왕때

신라의 고승인 자장율사가 통도사와 월정사와 함께 창건한 천년사찰이다.. 

 

 

 

 

 

 

마곡사를 왜 춘곡사라고 했는지 사찰입구부터 느껴진다.. 봄이 시작되는 4월의

햇살은 오랫동안 사찰과 살아온 나무가지에 새손을 돋게 하고 봄바람은 계곡에서

시작되는지 파릇하게 풀들이 돋아나 있고 따뜻한 온기가 사찰 가득 풍긴다.. 

 

 

 

 

 

마곡사라는 절의 이름에 대해 2가지의 전설이 있는데 자장이 절을 완공한후 설법할때

사람들이 삼과같이 빽빽하게 모여들었다해서 마곡사라고 했고 신라 무선대사가 당나라

모곡보철선사에게 배웠기에 스승을 사모하는 마음에서 마곡이라고 했다고 전해지며 

절을 세우기전에 마씨성을 가진 사람들이 살았기 때문에 마곡사라고 했다는 말도있다.. 

 

 

 

 

 

사람이 죽어 저승의 염라대왕앞에 가면 마곡사 싸리나무 기둥을 안고 몇번이나 돌았냐고

묻는다고 한다..  많이 돌수록 극락길이 가깝고 돌지않다면 지옥에 떨어진다고 한다..

이생에서 아들이 없는 사람에게는 마곡사의 싸리나무 기둥을 안고 돌면 아들을 낳는다고

일렀고 대웅보전 전각내부에 싸리기둥은 사람들이 안고 돌아서 윤기가 나고 손때가 묻어

있다..  대웅보전의 현판은 김구선생이 쓴 글씨며 배흘림기둥에 팔작지붕으로 화려하다..

 

 

 

 

 

 

뒤에 대웅보전과 함께 마곡사의 중심 불전인 대광보전이다..  대화재로 불탔지만 복원

되었고 다포식 팔작지붕으로 전각내 천정의 무늬가 아름답다..  대광보전 마루는 갈대를

묶어 만든 삿자리가 깔려있는데 앉은뱅이가 다리를 고치기위해 백일기도를 하면서 틈틈이

삿자리를 짰다고 한다.. 자리를 짜면서 비로자나불에게 불구를 낫게 해줄걸 기도했고

백일뒤 기도를 끝내고 밖으로 나가는데 법당문을 걸어서 나갔다고 한다.. 

 

 

 

 

 

대광보전앞에 위치한 오층석탑은 보물 제799로 다보탑 또는 금탑이라고 부르며

나라의 식량이 모자라 굶주리는 기근을 3일간 막을수 있다는 전설도 전해져 온다..

임진왜란때 무너져 탑 안의 보물들이 도난당했고 1972년 수리할때는 탑안에서 동제

은입사향로와 문고리가 발견되었고 세계에서 3개밖에 없는 귀중한 탑이라고 한다.. 

 

 

 

 

 

 

마곡사는 오래된 전각이 많지만 백범김구선생의 인연으로 백범당이라는 전각도 있다..

시간이 촉박하여 보지못해 아쉽다.. 명성왕후 시해에 가담한 일본장교 스치다를 황해도에서

죽인 김구는 인천형무소에서 옥살이를 하다 탈옥하여 마곡사에 숨어서 승려를 가장하며

살았다고 한다..  지금도 대광명전앞에는 김구가 심은 향나무가 있다고 한다.. 

 

 

 

 

 

생각해보니 대웅보전 싸리기둥을 안고 돌지않았다..  극락은 가고싶으니 4월 벚꽃이

가득필때 춘곡사를 다시 가야겠다..  그때는 미쳐 보지 못했던 백련암에 올라 빼어난

전망도 놓치지 말아야겠고 마곡사 주변으로 둘레길도 걸으며 봄날을 느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