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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처럼자유롭게/그리운경상도

고려말 충신 포은 정몽주를 추모하기위해 세워진 영천 임고서원..

 

 

 

 

 

고려말 충신 포은 정몽주를 추모하기 위해 세워진 영천 임고서원.. (여행일자 2016년 5월22일)

 

영천의 5월의 날씨는 유난히 더웠다...  9시가 조금 넘은 아침인데도 머리위에 쏟아지는 햇빛은

한낮 더위를 느끼게 하고 한발자욱만 걸음을 떼도 땀을 쏟게한다.. 강렬한 햇빛만큼이나 영천은 그렇게

 강렬하고 열정적으로 기억하라는듯 혹독하게 신고식을 치루게한다..   또하나 생소하게 생각했던 영천에는

국사책에서나 이름을 들었을 고려말기 절의를 지킨 목은 이색.. 야은 길재와 함께 고려삼은으로 일컫는

고려 충신인 포은 정몽주가 태어난곳이 이곳 영천이라고 한다..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칡이 얽어진들 어떠리 우리도 이같이 얽어져 백년까지 누리리라

이몸이 죽고 죽어 일 백번 고쳐죽어 백골이 진토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임 향한 일편단심 가실줄이 있으랴..

지금도 외우라고 하면  머리속에서 술술 나오는 이방원의 하여가와 정몽주의 단심가다..

정몽주의 단심가나 이방원의 하여가는 역사를 길게 늘어놓지 않아도  어떤내용인지 다들알테고

정몽주의 마음을 오랜친구였던 정도전도 돌릴수가 없어서 이방원은 그를 선죽교에서 제거를 했고 선죽교에

흘렸던 피는 오랜세월동안 지워지지 않고 남아있었다고 한다.. 선죽교라는 다리는 원래 선지교였으나

정몽주의 피가 돌틈속으로 스며들고 그 틈사이로 대나무가 솟아 그의 충절을 나타냈다는 전설과 함께 선죽교로

이름이 바뀌었다고 한다..  정몽주는 자신의 죽음 예건하고 충효를 숭상하는 가문이니 조금도 낙심말라 는 말과

새조정에서 주는 벼슬을 거절하지 말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전해진다..  임고서원은 정몽주를 추모하기위해

조선 명종 8년 부래산에 창건하여 사액하였으나 임진왜란때 소실되어 선조 36년 지금의 위치에 재사액되었고

서원철폐령으로 훼손되었다가 1965년에 다시 복원 하였다고한다..

 

 

 

 

 

 

 

 

 

 

 

 

 

 

 

 

 

공민왕 9년에 문과에 장원, 예문검열등을 거쳐 성균대사성과 문하시중등을 역임하였으며 성리학에 능통했으며

시문과 서화에서도 뛰어났다고 전해진다.. 어머니가 꾼꿈과 아버지가 꿈꾼걸로 인해 몽주라 불렀으며

어렷을때부터 기억력이 좋고 암기력이 좋아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다고하니 어머니가 정몽주에게

직접 들려준 백로가도 단심가 몹지 않게 유명하다고 전해진다..

 

 

 

 

 

 

 

 

 

 

 

 

 

 

 

 

 

 

 

 

 

 

 

임고서원에 들어가기전 그 끝을 알수 없는 커다란 은행나무가 있다.. 500년이나 지났다고하는데

높이만해도 20미터가 넘는다고했다.. 이 은행나무는 원래 임고서원이 부래산에 있었을때 그곳에 심겨져

있었는데 임진왜란으로 소실된 임고서원을 이곳에 다시 지은뒤 은행나무도 옮겨 심은거라 한다..

가을이면 노랗게 물들 은행나무를 상상하며 그냥 지나쳤을지도 모를 이름도 생소한 임고서원을 통해

역사를 다시 배워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