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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처럼자유롭게/그리운경상도

원효에 의해 창건된 천룡 전설이 있는 양산 홍룡사 홍룡폭포..

 

 

 

 

 

원효에 의해 창건되었고 천룡 전설이 있는 양산 홍룡사 홍룡폭포.. (여행일자 2016년 6월16일)

 

폭포를 보니 낯설지가 않았다.. 언제 왔던거 같은데 기억을 더듬어보니 8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벌써 그렇게나 오랜시간이 지났었나..  변한듯 하지만 폭포는 여전했고 추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친다..

가는곳 마다 추억거리 하나씩은 남겨놨던 여행지.. 그래서 눈에 익숙한 곳을 찾을때면 반갑고 그립다

양산... 그러고보니 양산은 작년부터 지금까지 서너번은 다녀온거 같다.. 통도사에 홍매화 필때

원동매화마을에 매화꽃 가득필때.. 그리고 지금 녹음이 짙은 여름날 우연찮게...

그냥 지나쳐도 될걸 낯설지 않은 홍룡이라는 이름이 결국엔 나를 이곳으로 이끌었는지 모르겠다..

추억이 있으니 그냥 지나쳐 가지말라고..

 

 

 

 

 

 

 

 

 

 

 

 

가만 서있기만해도 땀이 물흐르듯 흘렀던 6월중순 더위와 푸르름이 절정을 이루고 숲을 이룬 나무들은

 깨알같은 그늘을 선물로 준다..  햇빛은 뜨겁지만 홍룡사 경내에 불어오는 바람은 시원해서 땀을 씻겨준다..

처마끝에 메달려있는 풍경은 이곳이 사찰이라는것도 잊은채 바람이 부는대로 몸을 맡긴채

청아한 소리를 내면서 경망스럽게 움직인다.. 그렇다고 나무랄 사람도 없으니 신나보인다..

 

 

 

 

 

 

 

 

 

 

 

 

 

 

 

 

 

 

 

 

산신각을 지나 좁은 계단길을 따라 몇발자욱만 움직이면 홍룡폭포를 만나게 된다..

가물어서 물줄기가 예전같지 않지만 변함없으니 반가움에 울컥거리는 감동이 느껴진다..

비가 온후에 찾아가면 기암절벽을 타거 세차게 떨어지는 근엄한 그 모습에 반하고 말겠지만 지금도

충분히 멋진 자태를 뽐낸다.. 탐하고 싶을정도로... 예전 폭포아래에 살았던 천룡이 무지개를 타고

하늘로 올라갔다는 전설이 전해져 오고 있으며 폭포를 맞으며 몸을 씻고 원효의 설법을 들었다한다..

그래서 창건당시에는 홍룡사를 낙수사라고 이름하였다 한다..  자연이 만들어놓은 우아한 자태..

기암 괴석위로 떨어지는 물방울은 오색 무지개를 만들어준다..

 

 

 

 

 

 

 

 

 

 

 

 

 

 

 

 

원효대사와 의상대사의 관음보살 친견설화가 전해져오고 있는 홍룡사는 원효대사에 의해

낙수사라는 이름으로 창건되었고 이곳에서 화엄경을 전파했다고 한다..   송고승전에는 원효 스님이

중국 당나라 태화사 승려들이 장마로 인해 산사태가 일어나 매몰될것을 예견하고 해동원효 척판구중이라고

쓴 현판을  날려보내 그들을 구해준 인연으로 천명의 중국 승려들이 신라로 건너와 원효의 제자가 되었다고 한다..

그후 지금의 홍룡사가 있는 천성산에 89암자를 지어 승려들을 수용했고 천성산 상봉인 화엄벌에서 원효스님의

화엄경 강설을 듣고 모두 득도하였다는 이야기와 함께 홍룡사에는 관음보살이 상주하는 관음성지로 알려져있다

무설전에는 천수천안관세음보살님이 봉안되어있고 홍룡폭포에는 33관음보살님중 폭포에서 현현하는

낭견관음보살이 있는데 낭견관음을 염하면 불도가니가 변하여 연못이 된다는 말과 벼랑에 앉아 용을

바라보고 있는 형상을 하고 있다고 한다..






 

 

 

 

 

 

 

 

 

 

 

 

 

 

 

 

 

 

 

 




양산 대석에 살던 가선대부 석은 이재영이 노병이 치유되고 난 66세에 소유지였던 홍룡폭포 아래에

죽우 권순도와 함께 가호정이라는 정자를 지었는데 홍룡폭포를 마주볼수있는 위치에 있다..

지금의 홍룡사도 임진왜란으로 모두 불타 다시 중창되었고 홍룡사 입구에 가홍정도 다시 지어졌다고

전해지는데 철거되기전 모습을 최대한 살려서 다시 복원했다고 한다..  병고를 견디다가 늙어갈수록

무료하여 맑고 한가한 곳을 찾던중 이곳을 정해서 정자를 지었다고 한다..  가뭄이 들면 기우제를 올렸고

숲으로 둘러쌓인 모습이 영험이 있었다고 전해져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