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가야의 문화를 말해주는 대표적인 유적지 고령 대가야 고분군.. (여행일자 2015년 11월10일)
경상도를 다니면서 그동안 몰랐던 고장을 알수 있다는게 가장 큰 행복이고 보람이라 하겠다..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바쁜 시즌을 끝내고 야금야금 찾아갔던 경상도.. 이제는 몇군데 남지 않았다..
책을 낸다는 목적으로 다녔던 경상도지만 이제는 내 스스로에게 공부를 하고 지식을 쌓는다는 의미로
여행색도 변했고 안목도 넓어졌다... 여행지 상품으로 눈여겨 본곳도 있으니 일거양득인 셈이다..
잘 알지 못했던 대가야의 찬란했던 문화.. 사실 고령이라는 고장이 어디에 있는지도 몰랐다..
고령에 도착하고 나서 대가야의 도읍지이며 철기문화와 가야금을 만든 악성 우륵선생이
태어난곳이란걸 알게 되었다.. 낙동강이 흐르니 풍요로운 고장인건 두말할 나위 없을테고 ..
사람이 살기에 가장 좋은 암팡진 곳임에 틀림없었다..
지산동 고분군은 주산구릉 주변으로 700기가 넘는 고분이 있고 그 고분으로 인하여 대가야의 역사와 문화를
알게 되었다 한다.. 2018년 7월에 세계유산등재를 추진 보존 되고 있는 고분군을 올라가기전
왕릉전시관부터 둘러보기로했다.. 당시 출토된 고분안에는 대가야때부터 사용했던 유물들이 발굴되었고
국내에서 최초로 확인된 순장무덤인 44호 내부를 원래 모습 그래도 재현해 놓았기때문에 그당시의
무덤의 형태를 알수있는 계기가 되고 있다.. 주인이 죽으면 하인이나 그주변에 사람들을 같이 매장했던
장례풍습이 대가야때도 전해지고 있었던 모양이다..
고령읍에서 병풍처럼 감싸는 주산 위에는 대가야산성인 주산이 있고 그 산성에서 남쪽으로 뻗은
능선위로 서기 400년경부터 멸망하기까지 562년사이에 만들어진 대가야 왕들의 무덤이 있다..
멀리서보면 올록볼록 엠보싱을 닮아있다.. 높지 않은 산인데도 땅넓은줄 모르고 나날이 불어가는
몸뚱이로 올라갈러니 숨이 턱까지 올라와서 거친 숨소리를 내게 한다.. 그나마 주변에
아무도 없었으니 다행이다 .. 지산동 고분군을 왕과 왕족 그리고 귀족들의 무덤이라고
확신한다는데 주산 정상부에는 주산성이 동쪽 기슭에는 대가야 궁성지가 위치해 있기 때문이란다
그 이야기를 사실임을 입증할수있는 지산리44호분은 으뜸돌방을 중심으로 32개의 순장덧널이
배치되어 있어서 우리나라 최대의 규모의 순장무덤 이란게 밝혀졌고 순장무덤은 윗사람이 죽게되면
그 주변사람들을 함께 묻는 장례문화이다.. 대부분 자진해서 죽는경우도 있지만 강제로 묻히는 경우가
더 많았다고 하니 어찌 되었던 이런 장례문화가 없어진게 다행이다..
하늘은 푸르게 맑았지만 희뿌연 안개가 도시를 감싸고 있었다... 희미하게 고령군이 한눈에 다 보인다..
새로지은 고층아파트만 키다리처럼 올라와 있을뿐 전형적인 시골풍경이다.. 산능성이를 따라 걸으니
멀리 맞은편 산능성이에도 고분이 보인다.. 고분의 숫자는 익히 들어서 알고 있지만 헤아릴수 없을정도로
많아 보인다.. 삼국시대 가야지역에선 최대의 고분군인거같다.. 솔직히 이름은 다소 차이가 있지만
고분군이나 릉은 경주에만 있는줄 알았다.. 무식하게도 말이다.. 유독 고분군이 경상도쪽에
많이 분포되어 있는것도 이번 여행을 통해서 알게되었다..
고분군을 따라 내려오면 대가야박물관이 있고 이곳에선 고분에서 출토된 유물과 구석시시대부터
고령에서 발굴된 유물들이 전시되어있다.. 유난히 아름다웠던 그릇받침은 그형태도 다양했으며 음식이
빨리 식지 않고 뜨거운것도 쉽게들수있도록 만들어 놓은거같고 고령이라는 곳을 더 깊게 알수 있다..
1,600년전 대가야시대의 왕과 왕비의 수라상과 어떤옷을 입었는지 무엇을 먹고 그릇은 어떤용도로
사용되었는지 소소하게 재현해 놓은 대가야궁을 끝으로 대가야를 그리고 고령을 전부를 알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고령이 이런곳이고 어떠한 역사를 가지고 있었는지 알수 있어서 기분좋은 여행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