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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처럼자유롭게/그리운경상도

잘 몰랐던 명소 한곳 무흘구곡 가기전 만난 성주 회연서원..

 

 

 

 

 

잘 몰랐던 명소 한곳 무흘구곡 가기전 만난 성주 회연서원.. (여행일자 2015년 9월20일)

 

성주는 첫방문이다 보니 가보지 못한곳이 많았다.. 어디를 갈까 고민하다가 새벽이 다 되어

잠이들었고 열어놓은 창문틈으로 들어온 시골냄새로 잠이 깨서는 뜬눈으로 아침을맞이했다..

더이상 잠을 잘수가 없어서 무흘구곡을 따라 김천으로 넘어가기위해 아침일찍 서둘렀다..

시골의 아침풍경은 도시의 풍경과 별다를건 없었다.. 학교를 가기위해 바삐 움직이는

학생들과 새벽 밭에 나가 일을 하고 집으로 들어오는  어깨 너머로 힘겨운 삶이 느껴진다..

성주는 처음방문이다보니 모든게 새롭게 보인다.. 특히나 논과 밭에 이글루 처럼 세워져있는

비닐하우스도 여행자에게는 또다른 풍경이다.. 무흘구곡으로 가기전에 비닐하우스에서는 참외를

고르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차를 잠깐 세워두고 엄마가 좋아하는 참외를 한봉다리를 샀는데

대강 갯수를 따져보면 70개도 넘을거같은데 7천원만 달란다..   싼듯해서 만원을 주고 한봉지를

샀다.. 엄마가 맛있게 먹을거 생각하니 기분이 저절로 좋아진다..

 

 

 

 

 

 

 

 

 

 

 

아침일찍 움직였지만 회연서원에 도착했을때는 9시가 훌쩍 넘은 시간이였다.. 작은문을 통해서

서원안으로 들어서니 아침햇살이 낮게 깔려있는게 공기마저 신선하게 느껴진다..

나중에 나이먹으면 시골에서 살거라고 입버릇처럼 말하곤하는데 그 생각을 더 확고하게 한다

400년을 훌쩍 넘긴 느티나무가 서원을 지키는듯 서있었고 때늦은 빨간색 배롱꽃이 피어있다

매화나무에는 어느새 매실이 열려 쳐다보기만해도 새콤함이 느껴진다.. 봄이면 매화꽃으로

유명하다고 하던데 시기를 놓쳐버린 아쉬움을 뒤로한채 서원뜰을 걸어본다

 

 

 

 

 

 

 

 

 

 

 

 

 

 

 

 

 

조선 선조때의 대유학자이며 문신인 한강 정구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고 지방민의 유학교육을

위하여 그의 사후인 인조5년 1627년에 제자들이 뜻을 모아 세운 서원이라고 했다..

1690년대 숙종 16년에는 현판, 서적, 토지, 노비 등을 하사받아 국가로 부터 사원으로 권위를

인정받은 사액서원이 되었다.. 서원의 주향인 한강 정구는 퇴계학과 남명학을 통합하여 새로운

학통을 세워 실학의 연원을 확립하였으며 우주공간의 모든것을 연구대상으로 삼았으며 천문,

풍수지리등 모든 학문에 관심을 가졌으며 특히 예학에 많은 관심을 기울인 대학자였다고 기록했다.

 

 

 

 

 

 

 

 

 

 

 

 

 

 

서원은 사당, 강당, 동재서재, 신사당 전사청과 견도루가 있으며 정구가 직접 조성한

서원 앞뜰에는 봄이면 매화가 가득 핀다는 백매원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봄이면 매화가 지천으로

피어 또다른 분위기를 만들어준다고 한다.. 서원내 전각들은 흐트러짐없이 옛모습 그래도 남아

운치를 더해준다.. 이른아침이라 아무도 없는 서원을 걷다가 땅바닥이 갈라짐에 놀라 뒤로 물렀더니

두더지 한마리가 땅을파고 잽싸게 도망간다.. 난생 처음 두더지를 접한 셈이다..

 

 

 

 

 

 

 

 

 

 

 

 

 

 

 

 

 

벽으로 창문을 낸 모양도 예사롭지 않으며 기왓장위에 피어있는 와송은 오랜세월을 이야기한다..

무흘구곡을 가기위해 잠깐 머물렀던 회연서원에서의 아침은 행복하다..  밤새 내린 이슬로

신발이 젖었지만 따뜻한 햇빛은 신발을 금새 마르게 한다..  봄에 매화가 필때 다시한번 와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