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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처럼자유롭게/그리운경상도

분홍 백일홍이 반겨주던곳 안동 병산서원..

 

 

 

 

 

분홍 백일홍이 반겨주던곳 안동 병산서원.. (여행일자 2015년 8월29일)

 

안동은 의와 예를 중요시하며 대쪽같은 절개를 지닌 옛선비들의 생활과 정신이 배어있으며..

한국정신사의 중요한 역할을 했던 불교문화의 중심지 이기도 하다.. 그리고 세계에서도 인정했던

전통민속문화가 지금까지도 계승되어 오고 있어서 놀이문화의 전통의 맥을 잇는 고장이기도 하다..

유교문화의 본향이다 보니 향교와 서원이 많이 생겼고 많은 학자들을 배출했는데 그중 유명한 학자로는  

퇴계 이황과 서애 류성룡등  이름만 들어서 알만한 명현이 많이 배출 되었다.. 퇴계 이황하면 도산서원을

서애 류성룡하면  병산서원을 이야기를 하듯 각 서원마다 특색을 달리하고 있으니

안동에서 서원만 찾아 다녀도 만만치  않은 여행이 될거같다.. 여러 서원은 다 재껴두고

여름에 찾아가면  반하고 만다는 병산서원을 방문했다.

 

 

 

 

 

 

 

 

 

 

 

 

병산서원 입구에서 부터 빨갛고 분홍색으로 피어 있는 백일홍은 새색시의 볼처럼 발그레 한게 곱기도 곱다.. 

생각해보면 안동은 초행길이 아니다.. 3년전이였던가.. 꽃도 피지 않았던 2월말경에 다른지역 여행을

다녀오면서 시간이 남아 도산서원과 하회마을 그리고 병산서원을 보기로 하고  잠깐 머물러 있었는데

하회마을에서 많은 시간을 지체하다보니 늦은 시간에 병산서원을 오게 되었고 문이 닫혀있었던

병산서원을 밖에서만  구경하고 되돌아 온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빨리 어둠이 내릴줄 몰랐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도 도로포장도 되지 않았고 가로등이 없어서 앞이 보이지 않은

칠흑처럼 어두운 길을 밝지도 않은 자동차 불빛에 의존하면서 빠져나오느라 얼마나

애들 먹었는지 병산서원에는 좋지않은 기억들이 있었기에 병산서원을 오면서도 조금

망설였던건 사실이였다.... 하지만 안왔으면 후회할뻔 했다.. 지천에 백일홍이 저렇게

아름답게 피어 있을줄이야  상상도 못했던 모습이였다..

 

 

 

 

 

 

 

 

 

 

 

 

만대루는 휴식과 강학의 복합공간인 만대루는 200여명을 수용하고도 남을정도로 넓고 커다란 누각으로

다른 서원에서는 찾아볼수 없는 독특하고 아름다운 면이 있다고 한다..  휘어진 나무를 그대로 서있는

아래층의 나무 기둥들과 다듬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주춧돌 그리고 커다른 통나무로 깎아 만든 계단까지..

자연의 아름다움이 그대로 묻어나 있다.. 두보의 시 백제성루..중에서 푸른절벽은 저녁무렵 마주하기좋으니

라는 구절에서 따와서 이름했다는 만대루에서 바라보는 해질무렵 낙동강과 병산의 풍경은 그 어느것과도

비교를 할수 없다고 하는데 그걸 보지 못해 아쉽다..

 

 

 

 

 

 

 

 

 

 

 

 

 

 

 

 

 

 

 

 

 

 

 

 

 

 

 

 

학문을 연구했던곳으로 가르침을 바로 세운다는 뜻을 가진 입교당 마루에는 많은 사람들이 한자리씩

차지하고 앉아 막힘이 없이 시원하게 뚫려있는 앞모습 병산을 바라보고 있다.. 강과 산으로 어우려진 모습

한폭의 산수화를 보는듯 아름답다.. 그리고 곳곳에 피어있는 백일홍꽃은 그 아름다움을 보탠다..

100일동안 피고 진다고해서 백일홍이라고 불리우고 있지만 백일홍에 얽힌 전설을 듣는다면 과히

이쁘다만 할수 없는 꽃이 백일홍이다..  처녀와 장수의 이룰수 없는 사랑이야기가 백일홍 꽃에

담겨져 있으니 전설을 알고부터 꽃색은 붉은 피처럼 느껴지고 두사람의 사랑이 안타깝기만 하다..

 

 

 

 

 

 

 

 

 

 

 

 

 

 

 

 

사적 260호로 지정된 병산서원은 서애 류성룡이 선조 8년에 지금의 풍산읍에 있던 풍산 서당을 이곳으로

옮겨온것이 병산서원의 처음이라고 한다.. 선조때 도체찰사와 영의정을 지냈던 정치가이며 유학자로

류성룡이 타계한 뒤 그를 따르던 제자와 유생들이 이곳에 위판을 모시고 사당을 세웠고 학문을 연구하는

강학공간과 제사를 지내는 제향공간을 갖춘 정식 서원이 되었다고 한다..  철종 14년에 병산이라는 사액을

받았고 서원철폐령이 내렸을때도 헐리지 않고 그대로 남아있어서 더 고맙게 느껴진다...

앞마당이 트여져 있어서 답답하지 않고 오히러 숨통이 트이는듯 하다.. 병산서원은 자연과 

공존하는 한국서원의 백미라고 다들 그렇게 이야기를 할 정도로 뛰어나다고 한다.. 

이렇게 좋은곳 우리가 잘 보존하고 가꿔가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 두고두고 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