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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처럼자유롭게/그리운경상도

중국 주왕이 피신해 머물렀다는 주왕산의 또다른 명소 주왕굴..

 

 중국 주왕이 피신해 머물렀다는 주왕산의 또다른 명소 주왕굴..

 

여행일자 2012년 10월 27일 단풍으로 절정인 주왕산 두번째방문..

딸랑 두장남은 달력을 보다니 입동이 지났다는걸 오늘에서야 알았다..

가을이라고 말하기에는 겨울이 서운해 할꺼같은 겨울로 들어선다는 입동이다

일요일부터 내린비는 삼일후인 어제서야 그치고 따뜻하게 비춰주는 햇빛의

고마움을 현장사무실 벽에 기대채 마음껏 느껴보는 하루를 보낸거같다..

삼일동안 계속해서 내린비로 우울해지고 신경이 예민해져 있었나보다..

모가 불만인지도 모른채 볼맨소리만 가득 내쏟고는 후회를 또 해버렸다

그리고 난 지난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승질머리를 칼로 도려내

다시는 튀어나오지 못하게 땅속 깊숙이 파 묻어버렸다... 그래서인지

종일 허전함에 시달려야 했지만 비로소 사람이 되었다고 다들 축하한단다..

 

지금은 또 추억이 되어버렸지만 가을이 한창 무르익을때 주왕산을 주말마다 찾을때가 있었다..

밤기차를 타고 새벽에 도착했는데도 피곤함을 모른채 그렇게 두번을 주왕산을 찾아왔었다

첫날은 산행을 하느라 힘들어서 놓쳤던 부분들을 두번째 찾아왔을때는 한걸음씩 차곡차곡 내딛으며

주왕산에 얽힌 전설을 조심스럽게 알아가는 조금은 여유있는 여행을 해보았다..

 

 

 

 주왕굴로 올라가는 길은 단풍숲을 지나야 하는데 그길이 어찌나 아름다운지

20분이면 족히 올라가는 길은 40분이나 걸린거같다.. 하나하나 놓칠수없는 풍경에

감탄해서 연신 셔터를 눌러댔지만 잠시 카메라를 넣고 눈으로 감상하게 더 좋았던곳이다..

주왕산은 첨부터 주왕산이라고 하지 않았다고한다... 원래의 이름은 석병산이였는데

신라시대때 중국의 주왕이 이곳 석병산으로 피신해 머물러 있었다가

마장군이 이끄는 군사가 쏜 화살에 맞아 죽은후 그의 넋을 위로하기위해

나옹화상이 석병산을 주왕산이라고 고쳐 부르게 되었다고한다..

 

 

 

 

 

조그맣게 만들어져있는 단풍으로 뒤덮혀있는 오솔길을 천천히 오르니 주왕암과

주왕굴에 이루는 입구가 나무잎사이로 언뜻 보이기 시작했다... 단풍숲을 지나오니

내몸이 단풍이 든듯 울긋불긋 화려한 옷을 갈아입은듯 화사하게만 느껴진다...

주왕암이라는 암자는 대전사와 함께 창건되었는데 주왕굴에서 죽은 주왕의 혼을 위안하기

위해 지은것이라고 한다... 일주문에 들어서면 중층 누각으로 되어있는 문간채인

가학루가 제일먼저 맞이해준다... 사람의 흔적이 오랫동안 머물러 있지 않은듯

기와나 담장에는 초록빛 이끼들이 아직도 촉촉한 이슬을 머금고 있었으며 커피한잔

뽑아와 마시면서 앉아 있으니 마음이 참 편안해지는 그런 절집이였다..

 

 

 

 

 주왕암을 끼고 오른쪽으로 돌아가면 주왕이 최후를 맞이했다는 주왕굴로 통하는 길이 나온다..

주왕굴은 사방으로 둘러싸인 암벽과 암벽사이에 한명정도로 지날수있을정도로 비좁았는데

자연적으로 생긴 동굴안에 중국의 주왕이 마장군의 공격을 피해 피신해 머물렀다고한다...

그러던 어느날 굴입구에 떨어지는 물로 세수를 하다가 마장군 군사가 쏜 화살에 맞아

애절하게 죽었다고 하는데 그때 흘렀던 피들이 냇물에 섞여 붉게 흘렀다고한다...

그해 이듬에 주왕산에는 이름모를 붉은 꽃이 피기 시작했는데 사람들은 그 꽃을 주왕의

피가 꽃이 되어 피었다고해서 수단화라고 부르게 되었다고한다... 매년 수단화가 피는

봄에는 주왕산에는 주왕의 넋을 위로하는 수단화 축제를 한다고 한다...

 

 

 

 

 

 

 50여미터의 절벽 하단에 세로 5미터 가로 2미터 정도의 자연동굴이라고 한다..

굴앞에 떨어지는 물줄기가 겨울이면 빙폭포가 되어 주왕산 9경중 하나인 주왕산빙하로

장관을 이룬다고 한다...  굴앞에서 사면을 바라보니 둘러져있는 암벽들이 병풍처럼 느껴진다

 

 

이제 이곳 주왕산도 바람이 불면 바스락 거리며 단풍잎이 날리겠고 겨울이 곧 찾아오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