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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처럼자유롭게/그리운전라도

달마산을 병풍삼아 땅끝마을 아름다운 절 미황사..

 

달마산을 병풍삼아 땅끝마을 아름다운 절 미황사..

 

여행일자 2012년 2월11일~12일 여자셋 떠났던 1박2일 남도여행..

3월로 접어드니 몇일동안 바람불고 비오고 그리고 흐린날씨를 계속 보여준다

아침에 일어나서 창문부터 열어보는데 멀리서 붉게 해가 떠올라오는게

보인다... 오늘날씨는 바람도 없고 춥지도않고 딱 좋을듯 싶다...

언제부터인지.. 생각이 많아지는걸 느끼겠다... 그래서인지 몇일동안

내 머리는 무거운 돌덩어리를 올려놓고 있는듯 묵직하게 느껴지고

그 무게때문인지 좀처럼 고개를 들수가 없을정도로 모든것이 개운치가 않다..

이 모든게 날씨탓이야.. 하고 애궃은 날씨를 탓해보지만 머리속에 엉켜있는

뒤죽박죽 생각들을 풀지 않으면 앞으로도 더 꼬일거같은데.. 차라리 잘라내버릴까..

요즘들어 새벽에 일어나는 일이 더 많아졌는데 다시 잠을 잘수가 없으니
생각이 많아 졌다고 내 머리가 스스로 편한걸 거부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해남을 왔으니 달마산을 병풍삼아 고즈넉하게 자리잡고 있는 미황사를 가지않으면 안될거같았다

달마로를 따라 해원저수지에서는 세월을 낚는 강태공처럼 여유도 맘껏 즐겨보고 봄이 오는걸 느낄수있었다

그리고  미황사로 오면서 바위산들이 그림속 병풍처럼 드리워져있는 달마산에 놀랬다..

1박2일동안 땅끝마을과 전라도를 여행하면서 경상도하곤 또다른 느낌을 받고했는데 전라도는

산이 아름다운곳이 많다는걸 이곳 미황사 뒤로 보이는 달마산을 보고 새삼 또 느껴본다...

말로만 듣고 땅끝마을 아름다운 절 미황사...  난 그곳에 서있다는것만으로도 설레였던거같다

 




미황사 뒷편으로 병풍처럼 드리워져있는 달마산은 남도의 금강산이라고 할정도로 경관이 빼어난곳이라 했다

달마대사가 중국에 선을 전하고 해동의 달마산에 항상 머물러 있다고해서 달마산이라고 이름을 지었다는데

고려시대의 기록에 따르면 송나라의 높은 관리들이 이곳을 찾아와 달마산을 찬탄하고 예경했다고 한다..

미황사는 신라경덕왕 8년에 창건되었는데 서역 우전국왕의 인도로 경전과 불상이 가득한 배가

땅끝에 도착하였는데 의조화상과 향도 100여명이 그배를 맞이하고 지금 이곳에 절을 세웠다고한다..

미황사는 조선중기까지 12개의 암자를 거느린 대찰이였는데 정유재란을 겪으면서 대부분

전각이 소실되어 1601년에 중창하고 2008년에 삼창하였다고한다...

잦은 전쟁으로 인해 소실되고 잃어버린 문화재가 왜그리도 많은지 안타까울때가 많다

 




미황사의 중심전각인 대웅보전 한가운데에는 석가모니불... 좌우에는 아미타불과 약사여래불이

모셔져있는데 법당안에는 들어가지 않았다... 난 사찰을 가게되면 법당안에는 안들어가는데 그이유는

나중에 ..^^  대웅보전 내부의 대들보와 천장은 산스크리트어 문자와 천불도로 장엄한 모습이라고하는데

그 아름다움이 인도의 아잔타 석굴벽화.. 중국 둔황막고굴의 천불벽화에 비견되고 있다고한다..

미황사에 가게되면 대웅보전안에 있는 대들보와 천장을 유심히 살펴보시길...

 


달마산에 달마대사를 닮은 눈사람.. 누가 만들어 놓고 갔는지 그럴싸하게 만들어놓았다..

 

달마대사를 닮은 눈사람 그리고  미황사 달마산에 얽힌 달마대사의 이야기가 전해져오는데..

미황사의 빼어남은 중국에서도 소문이 났다고하는데 그때가 고려후기라고 전해지고있다

달마대사는 남인도향지국의 셋째 왕자로 태어나서 석가모니부처님으로 부터 27대의 법을 이은

반야다라존자의 제자가 되었다고한다... 스승의 부탁으로 중국으로 건너가 양나라 무제를 만나고

양나라 무제와의 문답을 통해 아직은 법을 펼때가 아니라고 깨달은바 숭산의 소림굴에서 9년간이나

사람을 만나지 않았다고한다...선종의 2대조사인 해가대사를 만나 선법을 전해주고는 중국역사속에서

자취를 감추고 말았는데 그 어디에서도 달마대사의 행적이나 지명을 가지고 있는곳은 없었다고한다

그때 중국인들은 달마대사가 해동으로 건너가 머문곳이 이곳 달마산이라며 찾아왔으며

미황사의 옛기록을 보면 모두가 달마대사의 범신이 이곳 달마산 미황사에 계신곳이라 기록하고있다한다

 

그리고 미황사의 응진당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제자 가운데 신통력이 뛰어난 16분의 아라한을 모신전각으로

응진은 참다운 존재의 실상을 환히 깨닫고 해탈에 이른 이들을 의미하는 아라한의 한자어라 한다

정유재란때 소실되었다가 대웅전과 함께 중수되었고 내부벽면에는 수묵으로 그려진 나한 벽화가 있는데

선의 경지를 보여주는 유려한 선맛으로 이름이 높다고 하던데 문이 닫혀져 있어서 아쉽게도 못봤다..

그리고 이곳 미황사는 사찰 어느곳을 가도 흔하게 볼수있는 석탑을 볼수가 없었다...

 


 



이제는 사찰에 가면 꼭 마셔야될거같은 전통차 한잔... 이것도 습관이 되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