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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처럼자유롭게/그리운강원도

아들과 강원도 여행중 찾아간 오죽헌..

아들과 돌아본 오죽헌 겨레의 어머니 겨레의 스승를 만났다..

 

 실수를 해서 외장하드에 옮겨놓은 사진들이 몽땅 날아가버리고

부랴부랴 하드에 있는 사진들을 모두 복구했지만 가장 중요한 양양사진만

복구를 할수가없다는 말과 함께 양양을 한번 더 다녀와야 했었다

나를 보면 꼼꼼하다고들 이야기를 하지만 가끔 덤벙대는 성격이

꿈틀대고 나타날때는 무언가 한가지 큰일이 생겨버린다..ㅡㅡ

그래서 다시 찾아간곳 강원도 양양... 그리고 다시 그곳을 여행했었고

양양만 다녀오기에는 어렵게 찾아간 강원도 여행이 좀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고속도를 타기위해선 강릉쪽으로 좀 내려와야했기에 여행에 동행이되어준

아들에게 무언가 교육적인곳이 어디가 있을까.. 생각하던중 오죽헌이 떠올랐다

그동안에 얼만큼 변했는지 궁금하기도 했었고 한참 커가는 아이들에게

어떻게 이야기를 해주는게 현명한것인지 그곳에 가면 알수있을거 같았다

그렇게 늦은 시간도 아니였는데 오죽헌에 도착했을때는 어둑해져있었고

잔뜩 흐린날씨도 한몫 단단히 하러는듯 스산한 기운만 감돌게 했다

 

 오죽헌은 보물 제165호로 신사임당과 율곡이이가 태어난 집으로 조선초기의 별당과

사랑채 건축물을 알수있는 중요한 자료로 쓰여지고 있다고한다..

1504년에 태어나 1551년까지 사신 신사임당은 그렇게 오랫동안 살지는 못한듯하다

울곡의 어머니 이시며 글씨와 시 그리고 자수와 그림에 능했으며 효성또한 지극했다한다

우리나라의 어머니상을 대표하는 인물로 지금 우리나라 지폐 오만원에 새겨져있다

율곡이이는 1536에 태어나 1584년까지 사신 우리나라 유교인 조선성리학을 완성하였으며

사상가 철학자이며 정치가였으며 병조판서때는 일본과 중국의 침략에 대비해서

십만양병론을 주창하였으며 격몽요걸을 비롯한 수많은 저서를 남겼다고한다

여기서 격몽요걸의 내용을 살짝 소개하자면 어린이에게 뜻을 세워 부모를 봉양하며

남을 대접할줄 알며 몸을 닦고 독서의 방향을 알리기위해 1577년에 저술했다한다

서점에 갈일이 있으면 이책을 하나 아들한테 선물하고 싶어졌다..^^

책자에 실린글을 살짝 인용을 하자면 겨레의 어머니 겨레의 스승이라고 했다

그만큼 두사람은 우리나라에 있어서 모든 사람들의 귀감이 되는 인물이다

 

 

 

 

 

 율곡선생의 영정을 모셔놓은 사당 문성사는 원래 어제각이 있었다고한다

1975년 오죽헌 정화 사업때 어제각을 서쪽으로 옮기고 문성사를 지었다고하는데

문성사에 문성이라는 말은 1624년 인조임금이 율곡에게 내린 시호이며 도덕과 학문을

널리 들어 막힘이 없이 통했으며 백성의 안정된 삶을 위하여 정사의 근본을 세웠다..

라는 의미를 담고있었고 문성사에 안에 모셔놓은 율곡이이의 초상화는

눈으로만 고이 담아왔는데 사진에 담지 않은 이유는 말하지 않아도 다들 아시기에..^^

 

 

 

 오죽헌과 문성사 옆으로는 율곡송 율곡배롱나무 그리고 율곡매가 심어져있다

모두들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있으며 특히 율곡매는 600년 된 매화나무로 오죽헌 몽룡실

옆에 심어져있고 오죽헌이 지어질 당시부터 심어진것으로 알려지고있다고한다

신사임당이 유독 매화를 좋아했으며 첫째딸 이름도 매창이라고 짓기도 했단다

고매도를 그렸으며 율곡선생이 어렸을때부터 쓰던 벼루에도 지금 심어진

매화가 새겨져 있다고한다.. 매화가 그려진 벼루는 어제각에 전시되어있다

신사임당이 좋아하는 매화.. 그리고 바람이가 좋아하는 매화..^^

오죽헌을 돌아보고 있는동안 신사임당과 나만의 공통점을 찾기에 바빴다..

격으로 따지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내 자신이지만 예전에는 그림도 곧잘 그렸고

교내 백일장에 나가면 상도 받았던 기억이... ^^ 심성으로 따지자면 비교할수없을정도다

 

 신사임당과 율곡이이가 태어난 오죽헌의 모습을 담아봤다..

오른쪽에 보이는 몽룡실은 신사임당이 태몽을 꾸고 이곳에서 율곡이이를 낳았던곳이다

조선초기에 지어진 별당건물로 원형이 잘 보존되어있어서 건축로 쓰이는 중요한 자료라한다

건물의 양식은 어려워서 알아보는건 전문가에게 맡기고..^^ 이곳에서 율곡선생이

태어났다는것만으로도 오죽헌을 알기에는 충분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오죽헌 주변으로 까마귀처럼 까만 대나무가 많아 권처균이 자신의 호를 오죽헌이라

지은데서 비롯되었다고하는데 이곳에선 초록색 대나무보다 까만 대나무가 더 많았다..

 

 

 

 바깥채로 통하는 이건축물은 남자들이 주로 기거하였던 곳이라고한다..

신사임당의 외할아버지 이사온과 율곡 선생의 외할아버지 신명화, 아버지 이원수

율곡선생의 이종사촌 권처균이 거처했던 곳이라 하는데 이곳도 오죽헌 처럼

잘 보존되어있었으며 곳곳에 세워져있었던 굴뚝이 인상깊었다..

 

 지금 현재 문성사가 있었던 자리에 있었던 어제각은 정조임금이 1788년 율곡선생의

친필 격몽요결과 어린시절에 사용했던 벼루를 보고 책에는 머릿글을 벼루 뒷면에는

율곡선생의 학문을 찬양하는 글을 새겨 소중히 보관하라는 분부를 내리고 그걸 보관하기위해

지은것이라고한다.... 어제각안에는 벼루와 함께 격몽요걸이 보관되어있었는데

이렇게 쓰던 물품을 보관까지는 안하더라도 살아있는 동안만큼은 좋은일로

한대통이라는 이름을 알렸으면 좋겠다고 유심히 쳐다보는 아들한테 이야기를해본다..^^

 

 

 

 

 오죽헌 바로 옆에는 율곡기념관과 강릉시립 박물관이 있는데 율곡기념관에는

율곡선생 글씨와 신사임당의 초충도병풍, 누임창의 매화도, 아우 옥산의 초서병풍등

율곡선생 일가의 예술작품이전시되어있다고한다..

다들 엄마를 닮아 시에 능하고 그림이 능했는지도 모르겠다..

강릉시립박물관에는 일상생활용구를 비롯하여 유네스코세계문형유산인 강릉단오제와

강릉농약이 재미있는 디오라마로 전시되어있는 향토민속관과 강릉지역에서 출토된

선사유물과 옛책 그림 도자기 등이 있는 역사문화관과 야외전시장으로 꾸며져있다

 

비록 짧은 시간이지만 아들과 함께 돌아본 오죽헌에서는 어떻게 해야만 현명한 사람이 될거란

확실한 답은 찾지 못했고 그저 말없이 돌아본 아들에게도  돌아본 소감을 물어보지 않았다..

물어보지 않아도 아들도 이번여행에서 많은걸 얻었을거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