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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처럼자유롭게/그리운충청도

수덕도령의 비극적사랑이 담긴 충남예산 수덕사

 

 

 

수덕도령과 덕숭낭자의 비극적인사랑 이야기가 전해져오는 수덕사..

 

그동안 조용하고 인적이 드물고 한적한 사찰만 다닌것도 아닌데  울려퍼지는 풍경소리만 들려올뿐

우리나라에서 꽤나 사람이 많다고해도 시끄럽게 떠들고 웃고하는 소리는 못들은거같았다

그래서 사찰을 다녀오면 기분이 좋고 마음에 편해지는 한뼘정도 넓어진 마음을 가지고 오곤했다

이곳 수덕사도 열손가락안에 꼽힐정도로 유명한 사찰중에 한곳이기에

평일이든 휴일이든 그만큼 많은사람들이 찾아오고 다녀가고 한다는걸 수덕사입구에

주차장까지 밀리는 자동차 줄만 봐도 알듯했고 주차장은 관광객들의 차로 벌써 빽빽했다

사람이 많겠구나.. 그래서 조금 정신없고 번잡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먼저든건

시끄러운걸 싫어하고 경내에 가끔 들려오는 경망스런 웃음소리가 듣기 싫은 이유중에 한가지일거다

에휴~~~~  귀를 막고 눈을 감고 입을 다물고 다니면 될걸...

 

먼저 수덕사의 역사를살펴보면 서해를 향한 차령산맥이 만들어 낸 덕숭산을 북으로는 가야산

서로는 오서산, 동남간에는 용봉산이 병풍처럼 둘러싸인 중심부에 서있으며

이곳을 예로부터 호서의 소금강리라고 일컬어왔으며 불조의 선맥이 면면히 계승되고 많은

고승 선덕을 배출한 선지종찰 수덕사가 자라하고있고 수덕사는 백제 위덕왕 재위시 창건되었으며

현존하는 유일한 백제사찰이다... 고려시대와 조선초기를 지나 16세기 전반에 편찬된 지리서인 (신증동국여지승람)

권19덕산현 불우조에 덕숭산 내에는 취적루와 불운루 2개의 누각이 있다... 라는 기록으로 보아

수덕사는 대웅전 이외에 2개의 눅가이 있을 만큼 대가람의 면모를 지니고있음을 알수있다

1962년 3월에 공포된 종헌에 의하여 수덕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7교구 본사로 승격하였으며

현재 충남일대 60여개 말사를 관장하고 있으며 1984년 11월 근대 선풍을 진작한 선지종찰임이 인정되어

총림으로 승격되었으며 이름을 덕숭총림이라고 하고 초대 방장에 혜암스님을 추대하였다

수덕사가 덕숭총림으로 승격한것은 기존 교구본사로서의 위상에 종합 수도도량으로서의

역할까지 겸비하게 되었음을 의미하기도하며 수덕사는 매주 주말에 진행되는 수덕사 템플스테이까지 경험할수있다

 

 

 

일주문안으로 들어오면 대웅전과 함께 신라시대 문무왕5년에 건립된 3층 석탑이 있다

원효대사가 중수하였다고 전해지나 통일신라시대 양식을 지닌 고려 초기의 석탑으로 추정된다.
지금은 3층 몸돌 일부가 떨어져 나간 상태지만 균형감은 그대로 남아있다

 

 

국보 49호로 지정된 수덕사의 대웅전은 고려 충렬왕 34년에 세워졌으며

연대가 확실하고 조형미가 뛰어나다는 점에서 한국목조건출사에서 매우 중요한 건물이다

대웅전은 현존하는 건물중 백제적 곡선을 보여주는 유일한 목조 건축물이라 한다

사찰어디에서나 볼수있는 흔하지만 화려한 단청무늬는 없었지만 대웅전 자체만으로도 아름다움이 느껴졌다

나무기둥과 창살문의 갈라짐과 대웅전현판속에서 그의 역사를 이야기해준다

 

 

화려한 조각과 함께 화려함이 느껴졌던 금강보탑..

 

 

 

코끼리석등과 3층석탑 그리고 화려함이 느껴졌던 7층보탑까지 어울리듯 경내에 있다

오래된 손때묻은 탑속에서는 소박한 역사를 느낄수있었고 새로 건립된 탑과 석등에서는

현대의 화려함과 함께 불교의 본 의미는 그대로 내포되어있는 느낌이랄까...

 

수덕사에는 5개의 보물이 있다고하는데 수덕사 대웅전 내에는 보물 1381호지정된 1938년 만공스님이

남원 귀정사에서 이운해 온 삼존불(석가, 아미타, 약사)이 봉안되어있고..1263호로 지정된 괘불,

만공스님이 세운 높이가 25척이되는 자연암벽을 깍아 조성한 거대석불 관음보살입상과

만공스님의 업정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만공탑, 1978년 만들어진 것으로 당시 경내에서 직접 주조공장을 만들어

전통 범종 구조기법에따라 스님들이 참관하에 제작된 청동제대종인 수덕사 범종이 있다

다섯가지 보물을 찾아보는것도 솔솔한 재미가 될듯싶다..

대웅전 삼세불을 비롯하여 모두 찾아봤지만 카메라에는 담지않았다..

 

 

대웅전 서쪽 백련당 뒤편에 있는 관음바위... 이 바위는 관세음보살이 현신하신 성역으로

이곳에서 기도를 하고 동전을 붙이면 떨어지지않고 모든 소원이 성취된다고한다

그래서 그런지 이곳에는 유독 사람들이 많았다.. 서로가 각자 하나씩의 소원과함께 동전 붙이기에

정신들이 없었고 그래서 그런지 더 정신이 없을정도였다...ㅡㅡ

 

 

 

비구니들이 기거하며 수도하는 암자로서 김일엽 스님이 주석하다가 열반고스로 1926년에 창건된 환희대

이곳의 첫느낌은 조용하고 깔끔했었고 풀한포기 나무 한그루조차도 그 깨끗함이 느껴졌던 곳이였다

우리나라 최초의 비구니 선방으로 1930년 만공스님의 뜻에따라 도흡스님이 창건한 견성암은

현재 비구니 제일선원으로 백여명의 비구니들이 수행을 하고있는데 그곳은 찾지 못했다

 

참 오랜만에 본 지금은 잊혀진 공중전화..

잠시 핸드폰을 꺼주셔도 좋습니다.. 라는 cf속 말과 함께 핸드폰을 잠시 꺼두기도 했었다...^^

 

이렇게 반가울수가..^^ 팰콘님이 수덕사의 발우공양체험글이 수덕사에 올라왔다고 했었다

박물관을 통해서 대웅전으로 향하는 입구에 걸려있었다..^^

 

삼일동안 닦은 마음은 천년이 보배요 백년의 탐물은 하루아침 이슬과 같다네....

 

수덕사에 내려오는 창건설화는 두가지가 있는데 덕산향토지에 실려있는 내용을 빌려오자면..

홍주마을에 사는 수덕이란 도령이 있었다. 수덕도령은 훌륭한 가문의 도령이었는데,

 어느 날 사냥을 나갔다가 사냥터의 먼 발치에서 낭자를 보고 사랑에 빠지게 된다.

집에 돌아와 곧 상사병에 걸린 도령은 수소문한 결과 그 낭자가 건너마을에 혼자 사는

덕숭낭자라는 것을 알게 되어 청혼을 했으나 여러 번 거절당한다..

수덕도령의 끈질긴 청혼으로 마침내 덕숭낭자는 자기 집 근처에 절을 하나 지어 줄 것을

조건으로 청혼을 허락하였고 수덕도령은 기쁜 마음으로 절을 짓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탐욕스런 마음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에 절을 완성하는 순간 불이 나서 소실되었다.

다시 목욕재개하고 예배 후 절을 지었으나 이따금 떠오르는 낭자의 생각 때문에 다시 불이 일어 완성하지 못했다.

세 번째는 오로지 부처님만을 생각하고 절을 다 지었다.
그 후 낭자는 어쩔 수 없이 결혼을 했으나 수덕도령이 손을 대지 못하게 했다.

하지만 이를 참지 못한 수덕도령이 덕숭낭자를 강제로 끌어안는 순간 뇌성벽력이

일면서 낭자는 어디론가 가 버리고 낭자의 한 쪽 버선만이 쥐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 자리는 바위로 변하고 옆에는 버선모양의 하얀 꽃이 피어 있었고 그꽃을 버선꽃이라한다

 낭자는 관음보살의 화신이었으며 이후 수덕사는 수덕도령의 이름을 따고

산은 덕숭낭자의 이름을 따서 덕숭산이라 하여 덕숭산 수덕사 라 하였다는 전설이 전해지고있다..

 

어느곳을 여행을 하던지 첫 여행지의 느낌이 중요했었다....

내가 처음간 이곳 수덕사에서  내느낌은 어땠는지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