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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처럼자유롭게/그리운경상도

길재선생의 충절과 학덕을 배운다 구미 금오산 입구에 위치한 채미정..

 

 

 

 

 

길재선생의 충절과 학덕을 배운다 구미 금오산입구에 위치한 정자 채미정.. (여행일자 2016년 5월14일)

 

구미는 생각처럼 나를 반겨주지 않았다.  첫번째 방문때는 전날에 날씨가 좋더니 두번째 날에는 새벽부터

비가 쏟아져 앞길을 막더니 두번째 찾아간날에는 너무 늦게 방문해서 미쳐 돌아보지 못하고

서둘러 집으로 와야했다...  이래저래 구미는 또 한번의 방문을 남겨놓고 호기심만 더 자극하게 한다

구미가 어떤곳이냐고 묻는 나에게 산업의 도시라고 했다.. 여기저기 갈만한곳은 많지만 딱히 유명한곳은

없고 공단지역이고 회사가 많아서 다른지역보다 술집이며 식당이 많다고 했다...

그가 말해주는 구미라는 도시는 그게 전부였다..  왜 물어봤을까.. 그냥 내가 알아서 찾아가면 될걸..

 

 

 

 

 

 

 

 

 

 

 

 

 

 

 

 

무작정 지도에만 의존하며 구미를 알아가기에는 정보가 부족했지만 태양의 새 삼족오의 전설을 가진

금오산이 있고 경상도를 가로지르는 낙동강이 흐르고 선비문화가 서려있는 인재의 고장이란걸 알게되었다..

오죽했으면 이중환의 택리지에 조선 인재의 반은 영남이요 영남 인재의 반은 선산(지금의 구미) 이라고

말할정도로 구미는 훌륭한 인재가 많은곳이며 그중 고려 충신인 길재가 구미에서 태어났다는걸 알게되었다

길재는 목은 이색 포은 정몽주와 함께 고려삼은중 한명이며 금오산으로 오르는 입구에 정자를 세워 충절과

학문을 알게했는데 이 정자를 채미정이라고 했다.. 새벽부터 비가 촉촉히 내려 금오산에 오르기로 했던 일정을

아예 접고 채미정만 돌아보기로 했다.. 

 

 

 

 

 

 

 

 

 

 

 

 

 

 

 

 

채미정은 고려시대 학자인 야은 길재선생의 충절과 학문을 추모하기 위해 조선 영조 44년에 건립된 정자이며

흥기문을 지나 바로 우측에 있으며 정면 3칸과 측면 3칸으로 팔작 지붕과 벽없이 16개 기둥만으로 지어졌다..

채미라는 말은 고사리를 캔다는 뜻으로 중국 주나라의 백이와 숙제에 관한 고사에서 따온 이름이다..

채미정 뒤편으로는 길재의 충절을 기린 숙종의 어필오언구가 있는 경모각과 유허비각이 있으며 채미정앞에는

금오산에서 내려와 금오지로 흐르는 맑은 계류와 소나무숲이 우거져 있어서 그주변을 걷는 기분은 남달랐다..

 

 

 

 

 

 

 

 

 

 

 

 

때이른 무더위로 혹독한 태양과 싸울고 있을때는 시원하게 내려주는 빗줄기도 고마울때가 있다..

비가 와서 일정이 틀어져 아까운 하루를 버려야 하지만 가물었던 대지에 단비가 되어준다면 이것도 고맙지

난 바쁜일정을 쪼개서 구미를 찾아왔지만 한발자욱 뒤로 물러나 비를 즐기는걸로 만족해본다

고려시대인 1386년에 문과에 급제하고 성균관 박사를 거쳐 문하주서에 올랐던 길재 선생은

고려가 망하고 조선왕조가 들어서면서 두명의 왕을 섬길수 없기에 벼슬을 버리고 지금의 구미인

선산으로 내려와 절의를 지킬정도로 길재의 충절은 지금까지도 알려져있다.. 한번씩을 들어 봄직한

길재의 시조중에서 유명한 회고가 에서는 고려 왕조의 멸망에 대한 한을 글로 옮겨놓았다..

오백년 도읍지를 필마로 도라드니 / 산천은 의고한되 인걸은 간되 없다 / 어즈버 태평연월이 꿈이런가 하노라

 

 

 

 

 

 

 

 

 

 

 

 

 

 

 

 

 

 

 

 

 

 

 

 

 

 

 

 

겨울보다는 봄에 떠난 여행은 눈이 더 호강을 하는듯하다.. 채미정옆으로 흐르는 계류에 떨어진

빗줄기 마저도 늦봄 실록을 더 푸르게한다.. 비로인해서 하루 일정을 모조리 망쳤지만 그래도 만족스럽다

다음에 다시 오게되면 맑은날 채미정을 한번 더 둘러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