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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처럼자유롭게/그리운경상도

우리나라 명당중에서도 가장 좋은곳에 위치한 성주 세종대왕자태실..

 

 

 

 

 

우리나라 명당중에서도 가장 좋은곳에 위치한 성주 세종대왕자태실.. (여행일자 2015년 9월14일)

 

주말에 한바탕 비가 쏟아지더니 날씨가 추워졌다..  설악산에는 벌써 살얼음이 얼었다고 하던데

가을을 채 느끼기도 전에 눈이 내리는 겨울을 접하는거 아닌가 하는 생각에 가을이 저멀리

도망갈까바 발만 동동 구르게 한다..  올해 가을은 쉽게 왔다가 쉽게 가버릴꺼같아 허리춤에라도

붙잡고 메고 싶을정도로 간절하게 느껴진다.. 하찮게 보냈던 계절마저도 지금은 아쉽고 소중하다

늦여름 성주를 찾았다.. 비닐하우스마다 끝물인 참외를 손질하는 모습에 한봉지를 싸서

혼자서 점심먹기 힘드니 그걸로 끼니를 떼웠다.. 달콤함이 입안으로 가득한게 한번 맛보면

벗어날수가 없을 맛이다... 이래서 성주에 가면 참외를 꼭 먹어봐야 한다고 하는구나..

 

 

 

 

 

 

 

 

 

 

 

우리나라 명당중에서도 가장 좋은곳에 위치해 있다는 세종대왕자태실은 오래된 소나무숲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보기만해도 좋은곳이란게 느껴진다...  태실이라고 하면 다소 생소하겠지만 아이와 엄마를 이어주는 탯줄을

보관해놓은 곳이라고 간단하게 이야기를 해야겠다.. 땅에 묻는사람도 있지만 요즘에는 탯줄로 도장을 만들거나

다른곳에 보관을 하게 되는데 유일하게 선석사는 태실법당이 따로 있어서 항아리안에 보관되고 있다..

그밖에 지도에 표기된 태실은 각 도별로  20여곳이 넘는다고 하던데 그동안 알지 못한 무지함을 탓해본다..

 

 

 

 

 

 

 

 

 

 

 

 

 

 

 

 

 

왕실에서 전국 명당자리에 태실을 쓰는 이유가 있단다.. 태실을 좋은곳에 묻어 좋을기를 받아 무병장수하고

왕위를 계승받고 왕실이 아닌 기존 사대부나 일반 사람이 명당자리에 태실을 쓰게되면 좋은 기를 받아

왕조에 위협적인 인물이 배출될수도 있기에 그 요인을 없애지는 의미가 있다고 한다... 풍수에 능했던

지관은 명당자리를 알려주곤 바로 죽임을 당해야 했던 일들이 세종대왕자태실을 보고나니 실감났다..

국가사적 제444호로 지정된 세종대왕자태실은 세종 20~24년사이에 조성된 전국 최대규모의 태실지로

세종대왕의 7대군 10군의 태실과 단종의태실등 19기가 봉안되어 있다

 

 

 

 

 

 

 

 

 

 

 

태실은 평균높이 140cm의 화강암으로 되어있으며 땅속에 석실을 따로 만들어 그 속에 태항아리와

태 주인공의 이름과 생년월일을 음각한 지석을 넣고 지상에는 어느왕자의 태실인지 표식을 세워두었다

수양대군이 왕위를 빼앗은 뒤 이를 반대한 그의 동생인 금성대군, 한남군, 영풍군, 화의군과  계유정난에

죽은 안평대군의 태실과 태실비는 세조 3년 산 아래로 던져졌으나 1977년 흩어진 석물을 찾아 복원해 놓았다

민담으로 전해져오는 이야기로는 세조가 왕위에 오른뒤 예조판서인 홍윤성이 찬한 가봉비를 세조의

태실앞에 세웠는데 지금은 비문이 지워져 알아볼수 없다.. 그이유가 세조의잘못을 미워한 백성들이 비석에

오물을 붓고 돌로 갈아서 거의 글자를 알아볼수없게 만들었다고 한다..

 

 

 

 

 

 

 

 

 

 

 

 

 

 

단종임금을 비롯하여 왕자의 태실이 있는 세종대왕태실은 생명의 탄생을 의미하고 전통마을인 한개마을은

생활의 공간인 그리고 성산고분군은 죽음을 의미한다고 한다.. 이 세가지를 연결해주면 생활사로 표현되는데

그래서 성주를 생활사 고장 그리고 태실의 고장이라고 부르고 있다.. 이번 성주 여행을 통해서 또 한가지를 배웠고

앞으로 나의 여행은 심장이 뛸때까지 계속 이어질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