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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처럼자유롭게/그리운곳서울

흰눈 소복이 내렸던날 창덕궁 비원을 걷다..

 

 

 

흰눈이 소복이 내렸던날 창덕궁 비원을 걷다..

 

여행일자 2012년 12월8일 매섭게 강추위가 몰아치던날 서울여행..

오늘 오후부터는 추위가 조금 풀린다고하니 다행스럽다..

어제 출근길에는 하얗게 피어있는 상고대를 발견하고 카메라를

가져오지 않은걸 후회 했었는데 오늘도 상고대를 봤으면 좋겠다

겨울에는 춥긴하지만 온통 하얗게 변해버리는 눈도 내리고 새벽이면

상고대꽃도 피어서 눈이라도 즐겁게 해주는걸로 위안을 삼아본다

아침이면 따뜻한 이불속에서 벗어나기 힘들어 매번 지각을

하곤 하는데 오늘은 10분 먼저 움직이면서 좀더 빨리 하루를

시작해볼러하는데 이불속에서 쉽게 벗어나긴 어려울듯 하다..

 

삼한사온이라는 우리나라의 겨울기후조건은 이제 무시되어 버린듯 몇일동안 한파가 몰아친다

지금은 내렸던 눈이 많이 녹았지만 골목마다 눈이 얼어붙어 거북이 걸음으로 걸어다녀야했었다..

그러나 아무리 추워도 눈이 내리면 꼭 가보고 싶었던 곳이 있었는데 그곳이 바로 창덕궁 비원이다

눈이 내렸던 날 창덕궁 비원을 인터넷으로 예약을 하고 토요일 (12월8일)에 방문했는데 그날은

겨울 기상온도중 가장 춥다는 날이였다.. 불어대는 칼바람은 목을 스치고 귀와 볼을 따갑게 한다

장갑을 꼈지만 손끝은 마비가 오고 셔터를 누르기조차 힘들 정도였다..

그날의 온도는 영하 9도.. 바람이 불었기에 체감온도는 더 낮았던 맵고 따가운 날씨였다.

 

자연과 조화를 이룬 가장 한국적인 궁궐인 창덕궁 그리고 자연을 토대로 꾸며놓은 비원..

인위적이였던 경복궁의 경회루와 향원정에 비하면 창덕궁 비원은 자연미가 물씬 풍긴다..

자연 지형을 살려 만든 왕실의 휴식처 창덕궁 비원을 눈이 내렸던날 걸어본다..

창덕궁은 비원은 그 경치만큼이나 많은 이름을 가졌는데 비원.. 후원.. 그리고

금원으로 불리우고있다..

 

 

 

 

파란색으로 쳐놓은 곳이 비원으로 들어가는 입구다.. 강추위속에서도 꽤나 많은 사람들이

후원을 관람하기 위해 옹기종기 모여 있는게 눈에 들어온다.. 50명은 족히 되어 보이는데

다들 삼삼오오 짝을 이루고 있었고 나만 혼자 덩그러니 서 있었다... 취미가 맞는 사람이 그립다..^^

우리나라 궁궐중에서 창덕궁이 가장 사랑을 받는다고 하는데 그 이유가 아마도 넓고

아름다운 후원이 있기 때문일거라 생각해본다.. 이곳 후원도 임진왜란때 불타 버렸는데

광해군이 창덕궁과 함께 1610년 광해2년때 재건하였다고 한다..

후원을 걷다보면 곳곳에 정자를 세워 인위적으로 꾸민곳도 있지만 골짜기마다

후원의 아름다운 지형을 그대로 살렸다고하니 더 멋드러진 모습을 볼수있었다..

후원의 골짜기는 4개가 있는데 부용지와 애련지.. 관람지 그리고 옥류천으로 꾸며져

있었고 각각의 골짜기마다 다양한 이야기거리가 가득 했었다...

90분동안 해설자와 함께 동행해야하며 해설자가 들려주는 조선시대의 이야기는

꽁꽁 얼어붙은 추위따윈 핑계가 전혀 되지 않았다..

 

 

 

후원은 왕가의 산책과 휴식을 위해 만들어 졌다고 하지만 여러가지 다른용도로 쓰였다고한다

그중 부용지와 주합루는 휴식과 더불어 학문적 용도로 쓰였다고하는데 후원의 4번째 골짜기중

첫번째 골짜기에 속한다... 사각형의 모습을 가진 연못 부용지와 활짝핀 연꽃을 닮았다는

부용정을 중심으로 행사가 치러졌던 영화당과 학문을 연마했던 주합루는 높은곳에서

연못을 내려다 볼수 있어서 그 모습 또한 아름답기가 말할수 없을정도라고 했다..

주합루는 정조가 즉위한 1776년 창건한 이층누각이며 아래층에는 왕실 직속 도서관인

규강각을... 위층에는 열람실을 겸했던 누마루를 만들어놓았다.. 물고기가 물을 떠나 살수없다..

는 격언과 같이 통치자는 항상 백성을 생각해야한다는 교훈이 담긴 어수문은 정조의

민본정치 철학을 엿볼수 있었다...

 

 

 

 

군자의 성품을 닮은 경치라고 이야기를 하는 애련지와 의두합은 숙종18년에 연못가운데

섬을 쌓고 정자를 지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섬은 없어지고 정자만 남아 있었다..

연꽃을 좋아했던 숙종이 이곳 정자를 애련이라는 이름을 붙였는데 그 이름에 따라 연못이름도

애련지가 되었다 한다.. 그리고 지금은 없어진 이곳에 어수당 이라는 건물이 하나 있었는데

인조반정당시 광해군의 비 유씨는 반정의 낌새를 알아차리고 궁녀들과 함께 몰래 어수당에

들어가 숨어있었다고 한다.. 이틀이 지나도록 밖에서 아무런 소식이 없길래 돌이킬수 없는 일이라

판단한 유씨는 보향이라는 궁녀를 시켜 자신이 여기 있음을 알렸다고 한다...

보향이 반군 대장에게 어찌 전왕의 비를 굶겨 죽이려 하느냐 이야기를 하자 반군대장이

이를 인조에게 보고하여 유씨에게 음식을 후하게 차려줬다고하는데 조선왕실의 이야기는

무궁무진... 몰랐던 내용까지도 이곳에서 전해 들어 있어서 더 뜻깊다..

 

 

 

사대부의 살림집을 본뜬 조선후기 집견실인 연경당은 왕을위해서 특별히 제작한 건물이였다 한다

평소에 궁궐에서만 생활하던 왕에게 사대부집을 제작하여 그곳에서 잠시 생활할수 있도록 했다한다.

민가가 99칸의 방으로 이루어져 있다면 연경당은 120여칸 으로 다소 차이가 나지만

민가의 집처럼 꾸며놓았다고 해도 왕의 신분을 조금 존중해 준것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한반도 지형을 조금 닮은듯 존덕정이다... 이곳은 다양한 형태의 정자가 있었고 네모나거나

둥근형의 연못이 3개나 되었다고 하는데 그곳엔 여지없이 정자가 세워져 있었다..

흰눈으로 덮힌 존덕정은 처음에는 육면정으로 부르다가 존덕정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인공적으로 다듬어놓은 연못이나 정자라고 할지라도 자연을 최대한 살린 흔적을 엿보겠다

 

 

 

 

 

다양한 각동에서 경치를 감상할수 있도록 꾸며놓은 옥류천일원에는 겨울에도 물이 얼지않은

아주 작은 폭포가 있었는데 지하수 라고 했다... 후원의 골짜기중에서 가장 깊은골짜기에 위치한

옥류천은 인조 14년에 거대한 바위인 소요암을 깎아내고 그위에 홈을 파서 물길은 끌어들여

작은 폭포를 만들고 곡선형의 수로를 따라 흐르는 물위에 술잔을 띄우고 시를 짓는

유상곡수연을 벌이기도 했다는데 시를 못짓는 사람은 벌주로 왕이 따라주는 술을 마셨다고한다

풍류를 즐기고 문학을 즐기는 우리선조들 이곳 옥류천에서 더 확실하게 느낄수가 있었다..

바위에 새겨진 옥류천이라는 한문은 인조가 직접 쓴 친필이고 오언절구 시는

이 일대의 경치를 읊은 숙종의 작품이라고 한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옥류천에서 찾아보시길..

옥류천에는 다른 골짜기에 비해 정자로 꽤나 많았는데 소요정과 태극정.. 볏짚으로 지붕을

만들어놓은 청의정과 농산정.. 취한정... 크고 작은 정자들이 한곳에 집중되어 있지 않아

정원을 이루고 있었다... 일년에 두번씩 봄가을로 이곳에서 잔치가 열린다고하는데 날짜를

잘 맞춰서 오면 떡과 술을 한상 가득 대접 받는다고한다..

 

한파속에 카메라 밧데리는 30분도 안되서 방전이 되어 버렸고 핸드폰은 작동이 되지 않았다

장갑을 끼고 있는데도 손끝이 꽁꽁 얼어버려 셔터를 누르는 손가락은 감각이 무뎌졌지만

역사를 배우고 역사를 알아간다는 이유만으로 행복한 하루였었다..

그리고 흰눈으로 덮혀있었던 비원은 어떤 계절의 비원보다 더 아름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