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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처럼자유롭게/그리운충청도

악성 우륵선생이 가야금을 탄주했다던 충주8경중 2경 탄금대..

 

악성 우륵선생이 가야금을 탄주했다던 충주8경중 2경 탄금대..

 

여행일자 2011년 8월24일 또가고싶은 충주여행 1박2일..

이제 막 여행을 끝내고 돌아와 책상앞에 다시 앉은 행복한 여행자 바라미

여행의 끝자락에 메달려 오래도록 곁에 있어달라고 애원하지만 다음 여행을

위해서 끝을 정해주는 냉정함과 다시 함께 떠나고싶다는 여운을 남겨주기도한다

이렇게 돌아와선 몇날 몇일을 끙끙 앓다가 아무렇지도 않은듯 또 떠날 짐을

꾸리고 있는 내모습을 발견할지도 모를테니.. 여행은 항상 도도리표다..

이번 여행은 어땠냐고 내 스스로에게 물어보고 싶지는 않다..

물어보나마나 만족했지만 아쉬웠어.. 하고 말할게 뻔하니까...

다시 현실로 돌아와 여행자가 아닌 직장인으로 나에게 주어진일을

열심히 하면 되는데 자꾸 편두통으로 고생하는 나를 보면서 지인은 말한다

편두통이 심한건 자유로운 영혼이 사무실안에 갇혀있기때문이라고..

 

 또다른곳을 여행하기 위해선 묵은 여행기는 빨리빨리.. 오늘은 작년에 다녀온 충주에 속해있는

탄금대에 대해 이야기를 할러고한다.... 충주는 한반도의 중심도시로 알려져있는데 탑평리에

위치해 있는 중앙탑이 그걸 말해주듯 지리적으로나 위치적으로 우리나라의 중앙에 자리잡고있다

그중 충주8경중 제2경에 속해있는 탄금대는 남한강과 달천강이합류하는 곳에서 남한강 상류쪽에

대문산에 위치해 있으며 산세가 평탄하고 송림이 우거져 있으며 천천히 걸을수있는 산책길을 따라

유명작가들의 조각품도 감상을 할수있으며 충주문화원과 야외음악당.. 충혼탑과 탄금정 그리고

신립장군 전적비까지 걷는 재미를 주는 기념물을 볼수있어서 지루하지 않다..

 

무덥던 여름날 뜨거운 열기를 조금 식혀주기 위해 하늘에선 한바탕 소나기가 쏟아져 내렸고

송림이 우거진 산책길을 따라 징검다리도 건너보고 하얀돌맹이가 깔려있는 자갈길도 걸었다.

 

 

 

 

 

 

 

 

 

 

공원안에는 충혼탑과 신립장군순절비가 세워져있는데 1955년 11월 광복이후 전몰한 충주

중원지역의 장병과 경찰관과 군노무자의 넋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충혼탑으로 현재 우리나라에 있는

충혼탑중에서 가장 오래되었다고 하는데 탑에 쓰여진 글씨는 이승만의 친필이라고 한다..

신립장군순절비는 신립이 휘하장졸 팔천명이 이곳 탄금대에서 배수진을 치고 충주에 도착한지 3일째

되는날에 일본 대군을 맞아 죽음을 각오하고 싸우다가 전사하고 말았는데 탄금대 뒤쪽 강쪽으로 향한

벼랑이 열두대인데 신립은 최후의 싸움을 펼치며 군사를 독려하고 뜨거워진 활줄을 식히느라

그 벼랑을 열두번이나 오르내렸다고 하여 열두대라고 불리우는곳도 공원을 산책하다보면 볼수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곳 탄금대는 악성우륵선생이 가야금을 탄주했다고해서 더 유명한곳인데

신라 진흥왕때 악성 우륵이 항상 이곳에 앉아 가야금을 연주했다고해서 탄금대라고 불리고 있으며

진흥왕이 신라에 귀화한 악성 우륵을 맞아들인 것은 고대사회에서 음악이 갖는 비중이 컸음을 보여준다

탄금대 아래 나루터에는 우륵이 제자들에게 음악을 가르치다 쉬던곳이라 하여 금휴포라 불리운곳도 있다

또한 강건너는 청금대라고 불리우는데 우륵이 가야금을 연주하면 그소리가 강건너까지

들린다고해서 붙여진 지명이라고 한다... 악성우륵이 가야금을 탄주했다고해서 유명한것도 있지만

탄금대는 임진왜란때 무장 신립의 군대가 왜적에게 크게 패한 뼈아픈 전적지 이기도하다..

 

 

좀 지난 여행기라고 할지라도 글을 쓰다보면 그날의 기억들이 사진속에 묻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