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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처럼자유롭게/그리운전라도

지리산속 숨어있는 보물창고 같은 사찰 구례 화엄사..

 

지리산속 숨어있는 보물창고 같은 사찰 구례 화엄사..

 

언제였는지 정확한 날짜는 기억할수는 없지만..^^ 가만 서있어도

온몸이 땀으로 범벅을 했던 꽤나 무더웠던 여름날로 기억이 된다..

옆에 사람이 있는것만으로도 하악~ 대야만 했던 올해의 여름

더위는 더위로 맞서자고 외치며 여행을 다녔지만 더운날의 여행은

아무리 멋진곳이라도 할지라도 건성으로 보는 경우가 많은데

유독 한곳 호기심과 설레임으로 찾아갔던 구례는 예전부터 가고싶었던

곳이였기에 더워도 더운줄도 모른채 하악대거나 빨빨대고 다녔던거같다..

몇달이 훌쩍 지나 두번째 계절을 맞이했지만 아직도 생각나는 구례

예로부터 세가지가 크고 세가지가 아름다 웠으며

자연의 향기와 찬란한 민족문화의 숨결이 느껴지는 구례로 조금 철지난

여행을 다시 한번 떠나보러구 한다... 자~~ 잘 따라와...^^

 

돌아보면 돌아볼수록 유서깊은곳도 많고 볼거리도 많았던 구례를 1박2일로 돌아보는건

아무래도 조금 무리인듯했지만 내 욕심 같아선 3박4일 아니 일주일 동안은 구례에 머물고 싶었다

따뜻한 인심만큼이나 섬진강을 끼고 있는 따사로운 고장이였고 봄이면 지천에 꽃들이 만발한대

지리산속의 보물창고와도 같다는 화엄사는 나라에서 정한 문화재들이 곳곳에 숨어있고

보물보다 더 아름다운 보물들이 많기에 화엄사는 한번에 담아갈수없는곳이라 했다..

1500여년을 이어 온 화엄사는 부처의 가르침 뿐만 아니라 역사와 문화 그리고 전통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곳이며 544년 연기조사에 의해 창건 되였다고 한다...

연기조사는 화엄경과 비구니 스님인 어머니를 모시고 지리산 황둔골에 전각 두채의 작은절을

지었고 절의 이름을 화엄경을 따서 화엄사라고 했으며 신라가 삼국통일을 이룬 후에는

의상대사가 화엄사를 화엄종의 원찰로 삼아 머물렀으며 신라 경덕왕때 이르러 8가람, 81암자의

대사찰이 되었다고 한다... 임진왜란 당시 화엄사의 혜안선사와 벽암선사가 승군을 일으켜

땅을 지키고 자운스님은 이순신장군을 도와 바다를 지켰지만 화엄사가 왜군에 의해 불탔다고한다

불타버린 화엄사는 1630년경에 나라의 지원을 받아 벽암선사에 의해 전각이 복원되었다 한다

 

 

 

여름철에 방문했던지라 화엄사에서 유명한 올벗나무의 꽃은 볼수 없었지만 300여년전 화엄사를

재건한 벽암선사가 심었다고 전해지고 있으며 벚꽃중에서 가장 먼저 꽃을 피운다고 해서

올벗나무라 부른다고 했다... 극락세계에 이른다는 뜻을 가진 올벗나무가 있는 지리산이 극락세계임을

간접적으로 암시하고 있으며 껍질과 더불어 무기를 만드는 중요한 자원이였는데 병자호란후 인조대왕이

전쟁을 대비해서 벗나무를 심도록 장려를 했다고 한다... 모두 죽고 화엄사에 살아있는 올벗나무는

식물학자 박만규박사의 노력으로 천연기념물로 지정받아 보호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봄이면 또한가지 빼놓을수없는 원통전에 피어나는 홍매화는 너무 붉어 검게 보인다고한다

내년에는 꽃피는 봄에 이곳에 다시올수있다면 붉은 홍매화와 벗꽃을 꼭 보고 말겠어..^^

 

화엄사는 매력적인 전각이 몇군데 있는데 그중 보제루의 매력에 반하는 사람이 많다고한다

보제루의 기둥을 보면 곧은대로 휜대로 제멋대로 자란 나무를 기둥으로 삼고 있는데 자유로워보인다..

보제루에는 특별함이 숨어있다고 했는데 절에서는 누하진입이라 하여 누각아래로 들어가지만

화엄사 보제루는 기둥을 낮게하여 오른쪽으로 돌아 서게 만들었다고 한다..

각황전, 대웅전, 대석단이 펼쳐지는 중심영역의 장엄한 경관을 보다 감동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건축적 배려라고하는데 자신을 낮추어 보다 아름다운 경관을 만들어 냈다고 한다..

 

 

 

 

 

마치 연꽃속에 들어와 있는것처럼 아늑하게 느껴진다고 했다... 보제루 오른쪽 모퉁이를 돌아서면

보물 제299호로 지정된 대웅전과 국보 제67호 각황전이 감싸고 있는듯 보였다..

그리고 동오층 석탑과 서오층석탑이 나란이 서있은 모습이 화엄사의 장엄을 나타내는듯 했다..

각황전은 화엄사에서 가장 유명한 전각이라고 했는데 원래 이름은 장육전이라 했으며

각황전에 비해 규모가 조금 작은 대웅전은 임진왜란때 소실된것을 1636년 벽암선사가 복원했으며

아마도 전란 후에 지어져 당시 물자도 없었던 환경탓에 작게 지었을지도 모른다고 추정하고 있었다

 

 

 

 

 

 

대웅전 뒤로 올라가면 대나무 숲을 지나 조금 올라가면 편안하게 차한잔 얻어마실수있는 구층암을

만나볼수 있는데 올라가는 도중에는 물흐르는 소리도 들을수있으며 그물은 손이 깨질듯 차가웠다

구층암은 자연을 닮은 암자라고 했다.. 산것도 죽은것도 자연을 거스르는 일이 없는곳이라 한다

뜰에서 자라 죽은 모과나무는 기둥이 되고 구층암 앞에는 심하게 훼손되었지만 그 형태를 유지하고

한채로 힘들게 올려져있는 석탑과 잘 다듬어 있지 않았지만 자연스런 멋스러움이 느껴졌던 마당까지도

수수한 구층암의 모습을 이야기하는듯 정겹고 녹녹하다...

 

 

 

 

 

파헤쳐도 그 정체를 알수 없었던 보물창고와도 같았던 들킬까바 지리산속으로 숨어버린 화엄사

 바람이 되면 지리산에 걸린 구름과 함께 또 놀러가고싶은 곳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