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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처럼자유롭게/그리운전라도

쌍계루로 쏟아지는 붉게물든 아기단풍들 장성 백양사..

 

쌍계루로 쏟아지는 붉게물든 아기단풍들 장성 백양사..

 

올해 사월 초파일을 몇일 두지 않고 오색연등으로 가득했던 봄

무작정 떠나고 싶었던 그때 새벽에 차를 몰아 화순에 세량지와 운주사

보성에 율포와 녹차밭을 걸쳐서 이곳 장성 백암산 백양사까지..

1박2일의 짧은 여정동안 많은걸 느끼고 많은걸 깨달았던 그때 봄

그리고 가을이 되어 다시 찾아온 장성 백양사는 봄하곤 사뭇 다르다

단풍 시즌 일주일동안 정읍에 내장산과 장성의 백양사를 몇번씩

오고가면서도 장성의 백양사의 아기단풍을 제대로 보지 못했지만

다들 작년만 못하다고 한다...ㅡㅡ 그러고보니 단풍이 멋진 가을에는

정작 이곳을 찾지않았던거같은데 이토록 아름다운 남쪽의 가을경치를

제대로 보지 못한채 그동안에 어디서 헤매고 다녔는지 궁금하다..

백양사는 봄에만 온듯하다.. 그리고 사진으로만 접해온 가을 백양사의

환상적인 모습에 가을이면 꼭 한번 와야지 했던 곳중에 한곳이였다

 

단풍이 시작도 하기전에 타버렸다고했다.. 그래서 예전만 못하다고 했는데 그래도

길게 뻗어있는 백양사로 가는 길목에 아기단풍은 얼굴이 붉게 물들 정도로 환상적이였다

 

팔뚝만한 고기로 부터 시작해서 갓 부화한 새끼 고기까지 다양하게 자라고있는

쌍계루앞에 연못은 여전히 물이 흐르고 있었으며 그곳에 비춰지는 단풍들은 봄하곤 다른

느낌으로 또 새롭게 반겨주고 있었으며 시간이 멈춘듯 쌍계루로 쏟아지는 붉은단풍은

적막감과 함께 고요함에 감돈다.. 이렇게 사람들이 많은데도 그들의 목소리는

내 귓가에서 아득하게 들려온다... 마치 세상에 나혼자만 둥둥 떠 있는듯...

아무 소리도 들리지않아 다들 갔나.. 하고 주변을 살펴보면 사람들은 여전히 북적대는데

 

 

 

 

아기단풍으로 유명한 장성 백양사는 단풍으로도 유명하지만..

걷다보면 비자나무 숲길과 갈참나무 숲길도 나오는데 비자나무는 백양사로 들어가는

입구를 따라 8~10미터 정도 거리에 5.000여그루가 숲을 이루고 있으니 그 숲의 유래는

고려고종때 각진국사가 당시 유일한 구충제였던 비자나무 열매로 가까운 마을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절 주변에 심은것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자라고 있다고 한다..

1970년대 까지만해도 스님들이 그 열매를 거두어 마을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한다

 천연기념물 제486호로 지정된 매화나무 고목은 3월에는 진분홍색꽃을 피우는 홍매로써

아름답고 향기가 은은해서 그곳에 서있으면 저절로 매료된다고 했는데

고불매로 불리우는 매화나무는 내년봄에 다시 찾아와 고귀한 꽃을 꼭 볼꺼라 바래본다..

다 타버렸다고 하지만 단풍으로 유명한 백양사의 명성처럼 대단했다... 저정도면 훌륭해

 

 

 

 

 

뒤로 보이는 산이 백양사 백학봉인데 가을이면 불이 난듯 빨간 단풍이 일품이라고 했다..

쌍계루로 떨어지는 단풍과 백학봉에 피어있는 단풍꽃.. 명성처럼 눈을 뗄수가없다..

백암산에 위치한 백양사와 백학봉 일대 그리고 백양사 대웅전과 쌍계루에서 바라보는 백학봉은

독특하게 눈에 들어오는 암벽과 풍겨져오는 자연경관이 너무도 아름다워 예로부터 대한8경의

하나로 꼽혀왔을만큼 유명한곳이며 목은이색, 포은 정몽주, 하서 김인후등 고려말부터 조선시대까지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백학봉과 쌍계루의 풍광을 읊은 시와 기분을 남겼다고한다..

 

 

 

 

 

 

1400여년전 백제 무왕 33년에 여환조사가 창건한 고찰로 호남불교의 요람이라고 볼수있는

백양사는 창건당시는 백암산 백암사로 명명 됐으며 고려 덕종3년때는 정토사로 이름이

바뀌었고 조선시대에 이르러 선조 7년 환양선사가 백양사라 이름을 고쳐 불렀다 한다

백양사라는 이름은 하얀 양을 제도한 데서 유래한것으로 이름에 얽힌 전설도 전해지고있는데

조선선조때 환양선사가 영천암에서 금강경을 설법하는데 사람드링 구름처럼 몰려들었고

법회가 3일째 되는날에는 하얀양이 내려와 스님의 설법을 들었고 7일간 계속되는 법회가

끝난 날밤 스님의 꿈에 흰양이 나타나 천상에 죄를 짓고 축생의 몸을 받았는데 스님의 설법을

듣고 업장 소멸하여 다시 천국으로 환생하여 가게 되었다고 절을 하였는데

이튿날 영천암 아래에 흰양이 죽어 있었으며 그후 절 이름을 백양사로 고쳐 불렀다고한다..

 

 

 

 

지금쯤이면 단풍도 다 지고 왕상한 나뭇가지만 남아있겠지만 그때 그날 백양사는

산등성이를 보는곳마다 온통 단풍으로 뒤덮혀있었고 이날은 유난히 하늘도 이뻤던거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