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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처럼자유롭게/그리운전라도

명당중에 명당 우리나라 최고 명당자리에 위치한 운조루..

 

명당중에 명당 우리나라 최고 명당자리에 위치한 운조루..

 

예전 어렸을때는 어른들이하는말 중에서 조상이 돌본다는 이야기..

그때는 그게 무슨말인지 전혀 알수가없었지만 이제는 그런말도

이해가 가는거보면 나도 이제 나이를 먹어가고있다는 뜻인지.. ^^

조상의 묘를 잘쓰면 대대손손 그 집안은 잘된다는말 틀린말은

아닌거같다..그래서 명당자리를 찾아 묘를 쓰거나 해서 정성스럽게

조상을 돌보는것이 우리나라 오래된 전통이 되어버렸는지도 모르겠다

이제는 여행을 하다보면 햇살좋고 바람도 솔솔 불어오는곳을 볼때면

이곳도 명당자리인가.. 하고 생각을 할거같은데 구례 운조루를

찾아갈때까지는 전혀 그런생각을 하지 못했었고 우리나라 최고의

명당중에 명당인 운조루를 보면서 집터와 묘자리의 중요성을

생각하게 했던 여행이였다... ^^  집터가 좋아 대대손손 번창했다는

구례 운조루로 지금 떠나 보러고 한다..

 

 

지금쯤 배롱나무에 연분홍색 배롱꽃이 피어있을지도 모르겠다..

연못을 주변으로 배롱나무가 심어져 있어서 화려한 분위기를 줬던 운조루..

들어가자마자 대문앞으로 아주 작은 연못이 보였고 그 연못속에는 수련이 피어있었다

그리고 연못위에 떠있는 아주 작은 섬(?)에는 오래된듯한 소나무 한그루가 자라고 있었다

첫 느낌..?  글쎄 첫 느낌은 그냥 평범한 집터구나 생각을 했었고 지금도 사람이 살고있어서

아주 잘 가꿔놓은 부자집 양반의 집을 살짝 구경하는 기분이랄까..

집을 들어가지않고 그냥 밖에서 바라는 보는 풍경을 그랬다.. 그저 평범한...^^

아마도 풍수학적으로 공부를 했다면 운조루의 기에 눌려서 헤어나지 못했을지도

구례 토지면 오미리 위치한 운조루는 부귀영화가 약속되어있다는 최고의 명당터로

하늘에서 금가락지가떨어진곳이라는 금환락지의 한가운데에 자리잡고 있다고했다..

운조루는 조선 영조 52년에 당시 삼수부사를 지낸 류이주가 세운것으로 95칸의 대규모

주택으로 조선시대 선비의 품격을 상징하는 품자형의 배치형식을 보이고있었다

 

 

 

 

운조루라는 택호는 구름속의 새처럼 숨어사는집... 이라는 뜻도 있으며

구름위를 나는 새가 사는 빼어난집... 이라는 뜻도 지니고 있는데 난 첫번째가 맘에 든다..

중국의 도원명이 지은 귀거래혜사에서 따온 글귀중에서 첫머리인 운자와 조를 따온것인데

구름은 무심히 산골짜기에 피어오르고 새들은 날기에 지쳐 둥우리로 돌아오네...

라는 글속에 맨앞 운자와 조를 가져와 운조루라고 택호를 정했다고한다..

툇마루끝에 앉아 있으면 솔솔 불어오는 바람을 온몬으로 느낄수가 있었다..

아침부터 찌는듯한 남도의 날씨.. 그저 아무생각없이 앉아 있는것도 나쁘지않아..^^

 

 

 

 

 

운조루는 창건과정에서도 명당자리라는 증거는 사건이 발생했는데 집터를 자고

주춧돌을 세우기 위해 땅을 파는 도중에 부엌자리에서 어린아이의 머리크기만한 돌거북이

발견되었다고한다... 이는 운조루의 집터가 풍수지리에서 말하는 금귀몰니 즉...금거북이가

진흙속에 묻힌터라를 뜻하는 돌거북이 발견되었는데 명당을 입증하는것으로 운조루에서 가보로

 전해 내려오다가 1989년에 안타깝게도 도난당했다고 한다.... 이런걸 누가 또 가져갔을까..ㅡㅡ

잡히기만 하면 손목가지를 확~~~ ㅎㅎ

 

 

홍살문에 걸려있는 호랑이뼈와 66칸의집 그리고 우마차의 나무바퀴만 봐도 조선시대의 생활을

한눈에 알수있는 사진자료와 유물 그리고 추사 김정희병풍등이 있으며 운조루가 아직까지 세인들의

관심을 끌고있는것은 명당중에 명당자리에 집을 지었다는 것도 있지만 조선후기의 건축양식에 따라

집을 지었다는 점에서 역사적 유물로 훌륭한 연구가치가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최고의 명당자리에 위치한 운조루를 돌아보면서 명당의 기의 조금 받았을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