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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처럼자유롭게/살고있는인천

강화도 광성보 역사속 아픈 현장을 보고 느끼다..

 

신미양요의 최고의 격전지 광성보..

 

인천에서 가깝고 김포에서 가까운 강화도는 돌아볼곳만해도 무한대인듯했다

얼마전에 광성보전투재현 축제가 있으니 구경한번 오라는 메일을 받은적이있었는데

딱히 약속도없는날이라 한번 찾아가 전투재현 장면을 보는것도 나쁘지 않을꺼란

생각을 했었는데 이래저래 회사일로 바쁘다보니 날짜를 까맣게 잊은채

솔직히 광성보전투재현을 한다는것 마저도 모른채 하루를 보내버린듯했다

아들하고 모처럼 시작된 강화도 나들이때 다른곳은 나중에 보더라도

역사적으로 의미가 있는곳 몇군데만 둘러보자고 이야기를 했었고

초지진, 덕진진 그리고 그중 한곳이 광성보였는데 그곳에 도착하고 나서야

광성보전투재현이 하루 지나버린 뒤에 찾아갔으니 뒷북을 쳐도 한참을 치고말았다

요즘들어 여행에 흥미를 느끼고 역사공부를 하는 기분이 든다는 아들..

종종 내 여행길에 든든한 도반이 되어준다....^^

 

광성보는 사적 제227호로 지정된 덕진진, 용해진, 문수산성등과 더불어 강화해협을

지킨 12진보중이 한곳으로 고려가 몽고 침략에 대항하기 위하여

강화도를 도읍을 옮기면서 해협을 따라 길게 성을 쌓은것이 기원이며

그후 조선시대 1658년 효종9년에 처음으로 광성보가 설치되었다고한다

숙종때 일부를 돌고 쌓았고 용두돈대, 오두돈대, 화도돈대, 광성돈대등

여러 돈대가 만들어 졌으며 1866년 고종3년에 프랑스함대와의

공방전(병인양요)이 일어났떤 곳이며 그로부터 몇년이 지나지 않은

1871년 고종8년에 미군함대의 침략(신미양요)을 받았는데 그때가

지금까지의 전투중에서 가장 치열했다고하는데 역사적으로 돌아보면

 어느곳이든지 전쟁의 흔적이 없는곳이 없을정도로 곳곳이 흔적들로 가득하다

아직까지도 남북으로 나뉘어져 순간순간 전쟁의 위협을 받고 있는 현실이다

 

 

 

광성보는 신미양요의 가장 격렬했던 격전지로 1871년 4월24일 미국의 로저스가

통상을 표방하면서 아세아 함대를 이끌고 어재연 장군이하 전 용사들이 열세한

무기로 대항하며 포탄이 떨어지면 칼과 창으로.. 칼과 창이 부러지면 돌과 맨주먹으로

최후의 순간까지도 용감하게 싸우다 작렬이 순국한곳이기도하다

이곳 광성보를 오게되면 어재연장군과 함께 전사한 조선군의 넋이 곳곳에

묻어있는 곳이기 막연하게 광성보를 돌아보는것도보다 역사적으로 있었던 일들을

생각한다면 더 뜻이 깊은 방문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초지진이나 덕진진하고는 다소 달랐는데 공원처럼 아주 잘꾸며놨다고 해야할까..

걷다보면 머리위로 뚝~떨어지는 잣송이에 깜짝 놀래기도하고 잣을 정신없이 먹고있는

청솔모의 모습에 마냥 신기한듯 쳐다보기도했던거 같다...

꼿꼿하게 세운 꼬리가 강아지 풀을 보는듯 탐스러워 보여 한번 만져보고싶었다

 

광성보에는 감나무와 밤나무가 참 많았는데 바람이 몹시도 불어대더니

떨어지는 밤알과 밤송이에 모두들 웅크리고 앉아 밤을 줍거나 밤을 까고

은행을 줍거나 하면서 시간을 즐기고있는 사람들고 가득했다

 

 

 

1871년 신미양요때 미군가 48시간에 걸쳐 용감하게  싸우다 순국한 이름없는

용사 49명의 묘이며 신미양요 순국무명용사비도 세워져있다

 

 

 

 

 

 

용의 모습을 닮았다고해서 붙여진 용두돈으로 가는길..

용두돈은 강화 해협에 용머리 모양으로 돌출된 암반위에 설치된 천연적인

교두보로 1679년에 축성되어 병인,신미양요때 치열했던 포격전의 장소이다

멀리 바다건너는 유명한 덕포진이 보이는데 덕포진에는 손돌공의 묘까지 있으며

덕포진에서 보면 이곳이 보이는데 바다를 끼고있는 바라보는 덕포진도

바다를 지키는 포대가 있으며 그곳에서도 역사적인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있는 곳이라 하나하나 지나칠수없는 곳이기도하다

 

 

 

강화 전적지 보수정화 기념비가 서 있으며 전면이 글씨는 박정희대통령이 썼으며

후면의 비문은 이은상 선생이 짓고 김충현 선생이 썻다고하는데

눈으로만 보고왔으며 사진으로 담아오지는 않았다....

이제 광성보하면 신미양요를 떠올리게 되는데 신미양요는 1871년 미국이

조선에게 통상조약체결을 강요하기위해 강화도를 침략한 사건이다

미국은 1866년 8월에 있었떤 미국상선 제너럴셔먼호를 불태운 사건에 대한

응징과 조선과의 통상관계 수립을 목적으로 1871년에 침략을 했으며

강화도의 초지진, 덕진진, 광성보를 차례로 점령하였다고 하는데 전술적으로

미국이 전투에서 승리하였으나 목적한 통상조약체결은 이루지 못하고

돌아갔다고하니 우리나라가 이긴셈이 아닐까.. 이를 계기로 쇄국정책을

더욱더 고수하게 되었다고하니 힘이없는 민족의 한이라고 해야할까..

 

요즘 틈만 나면 카메라를 가지고 이것저것 찍어보는 아들녀석..

구름이 좋아서 구름사진만 찍고싶다한다...

 

조금 늦게 출발한 강화도 여행길..초지진과 덕진진 광성보만 둘러보고왔지만

강화해협을 지켰던 12진보는 차츰 시간이 나면 둘어볼 생각이다

바다를 끼고 도는거라 바다는 원없이 볼거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