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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처럼자유롭게/살고있는인천

노송과 성벽에 포탄자욱이 아직도 남아있는 초지진..

 

노송과 성벽에 포탄자욱이 아직도 남아있는 초지진..

 

추석때 내린 비로인하여 평일에도 8시넘도록 복구작업을 하고

여행이나 나를 위해서 꼭 써야한다는 주말에도 저녁늦도록 수해복구하느라

1주일이 눈깜짝할 사이에 지나쳐버리고 이제는 어느정도 복구도 되었지만

여전히 사람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기에 토요일도 늦게까지 사무실에 앉아있어야했다

일요일은 회사에 가서 밀린 일을 하기 싫었다.. 스스로가 지쳤다고 해야할까..

비가 보슬보슬 내리는날 물먹은 솜자루처럼 무거운 몸을 일으켜본다

일요일에 자리보존하고 누워있으면 이상하게 더 피곤한 바람이

여행의 멋을 조금씩 알아가고있는 아들과 함께 강화도 여행을 시작해본다

 강화는 인천하고 가까운곳이지만 좀 멀리(?) 떨어져있다는 이유만으로

잘안가게되었는데 강화도 지도를 보는순간 많은유적지와 함께

역사적으로도 유명한곳이란걸 알게되었는데 시간나면 틈틈이 강화도를

다녀올지도 모르겠다....

 

사적 제225호로 지정된 초지진은 외세에 침략에 대항한 격전지중에서도

가장많이 싸운격전지중에 한곳이라고 할수있는데 그래서 그런지 곳곳에는 아직까지도

그때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아있으며 초지진을 빼고는 포대를 이야기를 하지

않을정도로 이곳은 외세침략의 격전지로 유명한곳이다...

초지진을 좀더 자세하게 설명하자면 해상으로부터 침입하는 외적을 막기위해

조선 효종7년에 구축한 요새이며 초지돈대를 포함하여 함선 3척과

40여문의 대포가 있는 포대를 보유하고있으며 고종 3년 9월에는 천주교

탄압을 구실로 침입한 프랑스 극동함대및 고종 8년 4월에는 통상을 강요하며

내침한 미국아세아함대, 고종12년에 침공한 일본함대인 운양호와 치열하게 격전을

벌인곳으로 근세 외침을 줄기차게 싸운 격전지라고 할수있다

 

 

 

 

성벽과 노송에 당신의 포탄자욱이 고스란이 남아있으며 보는 이로 하여금

죄없이 당해야만했던 우리민족의 현실과 함께 포탄을 맞았는데도 아직도 꿋굿하게

그 맥을 유지하고있는 노송이 대단하게 느껴진다..

 

초지진으로 들어가는 입구는 생각보다 아주 작았지만 양옆에 서있는 은행나무가

그 위엄을 대신해주는듯했는데 유독 바람이 심해서그런지 은행나무에 스치는

바람소리가 예사롭지 않게 들린다.. 노란은행잎이 떨어지면 한번 찾아오고 싶은곳이다

 

 

 

포구에서 포탄과 화약을 장전한 다음 뒤쪽에서 점화하여 사격하는

포구장전식화포로 사정거리는 700미터나 되고 조선 영조때부터 주종하여

사용하였다고하는데 화약의 폭발하는 힘으로 날아가나 그 자체만으로는 위력이

없다고한다.. 아들이 묻는다 실제로 영조때 만들어진거냐구하길래...

그렇다고 했더니 녹이 쓴곳이 하나도 없다고 하는데 여행을 하면서 점점 흥미를

얻어가는 녀석이 기특하기만했다..^^

 

 

멀리보이는 대명포구쪽에는 고종 12년에 침공한 운양호가 전시되어있는데

이때 침공한 운양호와 치열하게 격전을 벌이곳으로도 유명하다고 한다

고종 13년에 강압적으로 강화도 조약을 맺게 되었고 이로 인하여 인천, 원산,

부산항을 개항함으로써 우리나라의 주권을 상실하는 계기가 되었다고한다..

다시 돌이켜보고 싶지않은 역사적인 현실앞에서 나라를 사랑하는 강한 마음이든다

역사적인 현실을 토대로 아들과 이야기를 하고 강화도 조약이니 을사조약을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어느새 커버린 아들이 마냥 놀랍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한다...

 

 

 

 

 

외세에 침략에 아픔을 간직한 초지진은 인근 강화와 김포 대명항을 잇는 초지대교

바로옆에 있기에 지금은 강화를 찾는 사람들의 만남의장소가 되었다고 하는데

사람을 만나기위한 장소뿐만 아니라 이곳에서 있었던 외세 침략도 함께 생각할수있는

그런 장소로 생각을 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