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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처럼자유롭게/그리운곳서울

비 내리는 옛 경운궁이였던 덕수궁을 걷다..

 

촉촉히 가을비 내리던날 옛 경운궁이였던 덕수궁을 걷다..

 

여행을 하다보니 그동안에 잊혀졌던 우리나라의 역사에대해 깊게 생각하게되었으며

내가 몰랐던 부분이나 알고있었지만 어렴풋이 알고있었던 때론 마음아픈

역사의 현실속에서 그래도 대한민국 국민이라고 텃텃하게 말할수있는

자부심을 갖게했던 우리나라의 반만년의 역사.. 더 깊게 알고싶어졌다

혼자만의 가을 테마 여행을 궁궐을 걸으면서 조선왕조의 뜻과 함께

다양한 전통문화도 배우며 도심속 높은 빌딩숲 속에서도 꿋꿋하게 보존되어있는

왕과 왕실의 화려하지 않으면서도 위엄이있으며 절제된 아름다움을 느껴보고싶었다

언제 어느때 찾아도 아름다운 우리나라의 왕실 궁궐..

이번 내마음대로 정해놓은 궁궐 여행으로 우리선조들의 오랜역사와

그 삶속에서 지혜와 슬기로움을 배우는 소중한 공부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그 첫번째로 비오는날 덕수궁(경운궁)을 찾아 그곳에서의 역사를 배워봤다

 

덕수궁은 조선시대를 통틀어서 두 차례나 궁궐로 사용되었다고하며 처음 궁궐로 사용된때는

임진왜란때 피난 갔다가 돌아온 선조가 머물 궁궐이 마땅치 않아 월산대군의 집이였던

이곳 덕수궁을 임시 궁궐로 삼았으며 조선말기 러시아 공사관에 있던 고종이

이곳으로 옮겨오면서 다시 궁궐로 사용되었다고한다... 광해군이 창덕궁으로 옮겨가면서

이곳을 경운궁으로 불리웠는데 일제시대의 경운궁을 덕수궁으로 불리우게 되었으며 고종도

왕위에서 물러나게 되었으며 고종에서 왕위를 물러받은 순종이 창덕궁으로 옮겨가면서

고종에게 장수를 비는 뜻으로 덕수라는 궁호를 올리는것이 그대로 궁궐이름이 되었다한다

 

원래 대한문은 이것보다 더 앞쪽에 있었다고 한다..

그동안에 해체가 되거나 축소가 되어서 전각이 있었던곳을 해체하여 잔디를 심어

궁궐의 위상을 떨어뜨리는 공원으로 만들어 버렸다고하니 일제시대의 참혹함이란

이곳을 둘러보면서 다시한번 느껴보니 바람앞에 촛불을 실감케 할정도였다

대한문이라고 되어있는 이문은 첨에는 대안문이라고 칭호가 되었는데 일본인들에 의해

대한문으로 바뀌었고 지금 덕수궁의 정문으로 이용되고있다..

 

 

중화전은 앞서 소개해듯이 많은 시련을 한몸에 간직한채 지금은 왕실의 위상만큼이나

굳건한 모습으로 나라의 역사를 이야기해주고있으며 돌계단에 박혀있는 총알의 흔적과

1904년 크게 불이나 다시 지으면서 단층으로 축소되었지만 중화전에서 나오는 풍채속에서

영원히 없어지지 않은 우리나라의 역사를 이야기해주는듯했다

 

 

 

 

 

 

 

 

 

 

 

꽃무늬로 멋을 내지 않았어도 담으로 흘러내리는 곡선의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덕홍진에서 정관헌으로 이어지는 꽃담과 꽃담으로 통하는 무지개모양의 유현문은 손님을

맞이하는 공간이였던 두 전각의 분위기를 더 화사하게 표현해줬으며

해설자의 의하면 유현문을 통과하게되면 지혜롭고 슬기로운 사람이 될수있다는말에

그곳을 수십번 통과했던거같다...^^   화려한 색으로 칠하지 않아도 화려해보이는 담사이로

오래 세월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느껴지며 담너머 보이는 덕홍전이 더 돋보였다

 

 

 

 

왕이 평소에 업무를 보았다던 석어당은 화려한 단청이 없지만 근엄함이 느껴지는 전각이다

덕수궁에서 유일한 목조건물이며 선조께서 임진왜란중위주로 옹진 하셨다가 환도한 후

이곳에서 거처하였으며 1608년 2월 선조가 이곳에서 승하한것으로 추정하고있다

인목왕후가 광해군을 석어당 뜰아래 무릎을 꿇어 앉히고 인목왕후가 죄를 책한곳이기도하다

이곳 석어당은 덕수궁에서 가장 유서가 깊은 곳으로 고종어필의 현판이 걸려있다

 

 

1931년에는 궁궐을 아예 상가 부지로 매각하려다가 반대 여론이 거세게 일어나자 한발 물러나

외전과 내전의 주요 전각을 남긴 상태로 공원화 하여 1933년 일반에 개방하였으며

오늘날 덕수궁에 남은 전각들은 그렇게 지켜졌다고한다....ㅡㅡ

함녕전은 고종의 편전이자 침전으로 사용되었으며 그곳에서 덕혜옹주가 태어났고

키워졌다고 한다... 역사속에 생각하고 싶지 않은 덕혜옹주의 이야기..

일본에서 정신병자로 내몰고 병원에서 감금된 삶을 살다간 그의 파란만장한 이야기도

역사속에서 잊어서는 안될 하지만 잊고싶은 사건이 아닌가 싶다..

다른 궁궐에 비해 덕수궁에 왕비의 침전이 따로 없는것은 명성황후가 승하한뒤

고종이 다시 왕비를 맞이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한다...귀빈을 접대했던 덕홍전과

고종이 사랑한 석조전은 서양식으로 만들어진 건물이며

석조전은 현재 미술관으로 사용되고있다

전각 하나하나에도 깊은 사연과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있는 덕수궁

중화전앞마당에 잔디로 심어져 궁궐이 아닌 공원으로 이용케했던 일제시대

모두 되돌이켜보면 화가 날만도 하지만 예전에 모습을 찾아가는듯해서

마음 한켠으로는 다행이다는 생각을 버릴수가없었다...

 

비오는날 덕수궁을 돌아보면서 나라를 위하고 사랑하는 마음은 별거 아니란 생각을했다

우리나라의 역사를 바로잡고 생각하고 싶지 않았던 역사도 지금 돌이켜보면

우리선조들이 나라를 지켜내기위한 지혜와 슬기로움이 담겨져있었다고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