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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처럼자유롭게/그리운전라도

옛 군산세관에서 나를 화나게 했던 일본관광객..

군산 세관에서 나를 화나게 했던 일본 관광객들..

 

솔직히 군산 여행을 할때까지는 군산에대한 지식은 아주 짧았다고해야할까..

사진으로만 봐왔던 기찻길옆 경암마을과 일본인들의 손때가 묻어있는 월명동 그리고

일제말기 식민지시대를 배경으로 한 채만식의 소설 탁류의 배경이였다는거 말고는

그저 멀기만했던 하지만 한번 꼭 다녀오고 싶은 곳 중의 한곳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군산에 들러본 나는 군산의 옛역사에 대해 그리고 일제강점기때

가장 많은 아픈의 역사를 간직한 곳이란걸 알고난뒤 어렴풋이 줄거리만 알고있는

소설 탁류도 한번 읽어보고 싶었고 군산의 지명 이름중에 장(長)과 미(米)라는

말이 유독 많은 이유도 이곳을 방문하고 나서야 알게되었다..

여행은 가끔 몰랐던곳을 알수있게 해주는 묘한 매력이 있다는걸

군산을 방문하면서 많이 느껴보면서 여행에 대해 더 빠져든 느낌을 받았다

 

옛 군산세관청사는 1908년 대한제국의 자본으로 건축된 유럽 중세 건축양식의

건물로서 전국적으로 서울역사와 한국은행 본점 그리고 이곳 군산세관 3곳만이

남아있어서 건축사적 의미및 향토사적의 가치를 두고 1994년 8월에 이곳을

전라북도 기념물로 지정된 지방 문화재이며 이곳에는 군산역사 사진과 가짜상품 그리고

역사사진및 세관자료를 전시해놓고 방문자들에게 옛군산을 알리고 있었는데

이곳 또한 한일합방 이후 1945년 해방까지 주로 호남과 충청지역의 쌀과 곡식등을

일제가 수탈하였던 창구로 이용하였던 마음아픈 역사의 설움을 가지고있기도했다

 

 

 

 

 

 

 

 

 

 

 

 

이곳 옛군산세관청사에는 예전의 자료를 전시해놓기도했고 세관에서 걸렸던 가짜 상품도

전시해놨는데 실제 눈으로 보고있으니 다 진품 명품같아 보였고 눈으로구별이 안갔다..

 

이 건물은 약 85년간 사용했던 건물로 벨기에에서 수입한 붉은벽돌로 외관을

사용하였으며 정면 출입구는 화강암으로 마감하고 규모는 크지않지만 안정되고

무게감있는 외관을 보여주고있으며 실제본 구세관은 아직까지도 깨끗하고 정교하게

잘 만들어진 튼튼한 느낌을 가지고있었다...

내부공간은 거의 대칭으로 배열되어있었는데 복도가 한쪽에만 설치되어있고

화려한 조명등이 설치되어있는 흔적을 볼때 각종 행사장으로 사용된것으로

추측할수있다고하는데 아마도 일본인들의 무도회장으로 쓰여지지 않았을까..

 

 

 

 

일본인들이 수탈해놓은 쌀가마니로 탑을 만들고 창고에는 수만개의 쌀가마니가

일본으로 모두 가져가버리는 그래서 결국에는 우리 농민들만 더 마음아픈

현실에 대한 사진을 보고있으니 너무 화가났었고 저런걸 자랑삼아 기록에

남겨놓기위해 찍어대던 빛바랜 사진속에서 다시는 일제시대는 없어야겠다고

생각을 해보지만 아직까지도 묻어있는 일본인들이 잔재들과 그걸 고스란히 받아들이고

있는 현 세대가 사뭇 걱정스럽다고 생각해보면서 사진을 감상하고있었는데.....

 

 난 이곳에서 나보다 먼저온 일본 관광객의 말을 통역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사진과 함께 그들이 했던말에 화가 나고말았다

통역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잠시들어보면 이곳에 오는 일본인들은

사진을 보면서 아직까지도 자기네들이 우리나라를 통치하고 있으며

언젠간 또 저렇게 수많은 곡식들과 함께 한국을 지배하에 두고싶다고 말했다고한다

그리고 지금의 젊은시대의 일본인들은 한국쯤이야 지금도 마음먹으면

충분히 그렇게 하고도 남을정도로 약해져있다고하니 또다시 제2의

한국의 침략까지도 가끔씩은 꿈꾸고있다고하니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았다..

또다시 예전이 슬픈 역사의 현실앞에 무릎을 꿇을수는 없다고 생각해본다

빛바랜 사진속에 마음아프게 고스란히 당해야만했던 일제강점기때의

나를 빼앗긴 아픔.. 두번 다시는 그런일이 있어서도 안된다..

 

유독 사진에서 오래 머물러 자기네들끼리 이야기를 주고받지만..

슬픈역사를 가진 그것에대해 이렇다할 변명을 하지 못한 내가 미울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