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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처럼자유롭게/그리운경상도

불어오는 바람도 쉬어가라 붙잡는 곳 세병관..

불어오는 바람마저도 쉬어가는곳 세병관..

 

충렬사를 빠져나오니 빗줄기는 점점 더 굵어진다

옷이 젖는것쯤은 이미 포기해버리고 카메라만 젖을까바 수건으로

감싸고 우산도 쓰지 않은채 후드티 모자를 깊숙이 쓰고 세병관으로 향했다

아침먹을때 얻은 지도를 보니 충렬사 바로옆에 있는것처럼 보였는데

찾아가니 지도에서 보는것보다 거리상 떨어져 있었기에 좀 애를 먹었다

 

통영 문화동에 위치한 세병관은 국보 305호로 지정되어있으며

통제영의 객사로 제6대 통제사 이경준이 이곳에 통제영을옮겨 온 이듬해 1605년에 처음세워졌으며

35대 통제사 김응해가 1646년 채동건이 1872년에 다시 고쳐 지은것이라고하는데

지금이 2010년 이니 그 나이만도 자그마치 400년이나 넘었으며 빛바랜 단청무늬에서

지난 세월을 충분히 느낄수가있었다...

 

정면 9칸과 측면 5칸의 9량 구조 단층 팔작집으로 경복궁의 경회루 여수 진남관과 더불어

지금 남아있는 조선시대 건축물 가운데 바닥면적이 가장 넓은 건물이라고한다

여수 진남관은 예전에 한번 가본적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느꼈던 위용도 대단하다고

생각했었는데 통영의 세병관도 웅장한 위용과 위풍이 느껴질정도였다..

세병관이란 만하세병에서 따온 말로 은하수를 끌어와 병기를 씻는다.... 라는 뜻이라한다

 

세병관으로 들어가기위한 망일루...

입장료는 200원이였고 주변은 통제영지복원을 위해 공사중이였다

주차장이 따로없어서 그런지 복잡스럽게 얽혀있는 차로 인해

다니기에 좀 번잡했지만 망일루를 통해 세병관안으로 들어가보면

복잡하게 얽힌 모든 마음이 금방 풀리는듯 시원했다...

 

 

 

사진을찍을때마다 느끼는건.. 역시 렌즈의 압박이다...ㅡㅡ

이럴땐 광각렌즈를 하나 구입해서 보란듯이 전체를 담고싶었는데..

뒤로 물러나면서 담아본 세병관은 내 카메라에 한꺼번에 들어오지 않는다..ㅡㅡ

세병관이라고 써놓은 현판은 제 136대 통제사인 서유대가 썻다고한다..

 

 

 

 

 

 

 

 

400년이 넘은 세병관은 넓은 잔디밭은 보는 느낌이랄까...

잔디대신 나무마루로 되어있지만 그곳에 오래도록 누워서 편히 쉬고

싶다는 생각만 들었고 솔솔 불어오는 바람까지도 반갑고 고마웠다..

50여개가 넘는 기둥들 사이로 보이는 천정은 얽혀있는 미로를 보는듯 까마득했고

빛바랜 단청무늬을 보고있자니 어지러움증이 느껴질정도로 황홀했다

사진을찍으면서 바닥도 만져보고 양팔로안아도 큰 기둥도 만져보고

예전부터 관심있었던 단청무늬도 놓칠세라 목이 아픈것도 모른채 위를올려보았다..

처마밑에 조각되어있는 무늬조차도 예사롭지 않았으며 못을 쓰지않고 끼어맞춰놓은

기둥과 천장도 우리 조상들의 꼼꼼한 솜씨를 가름할수가 있었다...

 어디한곳이라도 버릴때곳이 지나치지 않은 우리조상의 실력이 느껴진다

 

 

 

 

 

통제영지는 조선시대 삼도수군 통제영이 있었던 자리로 삼도수군 통제영은 1604년설치되어

1895년 폐지될때까지 경상도 전라도 충청동의 3도 통제사로 임명된 전라좌수사 이순신장군이

한산도에 설치했던 본부가 최총의 통제영이였고 충무공이순신 장군이 떠난 정유재란 이후

여러곳으로 옮겨지다 지금 통영시 두룡포에 자리를 정했다고한다...

지금 통제영지는 1998년 2워에 지정되어 사라진 건물들에 대한 복원계획을 수립하여

연차적으로 건물을 정비하고 복원하고 있는중이라고한다..

 

짧았지만 깊은 인상을 주었던 통영은 역사적으로 깊은곳이란걸 느꼈다고해야할까..

미항의 도시뿐만 아니라 역사적으로 전통이 있는 통영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