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바람처럼자유롭게/그리운충청도

수수함에 눈멀고 풍경소리에 귀멀어버린 무량사..

 

 

 

 

 

넉넉하고 따뜻했던 백제의 마음이 있는곳 무량사..

 

부여에서 가장 오래되었고 소나무와 물이 적당히 흘렸던 무량사의 첫인상은..

사찰에 들어서면 문틈사이로 솔솔 불어오는 바람에 취하고 풍경속에

귀가 멀어버렸을까... 난 이런곳에 오면 너무 좋다

그타고 바람이가 불교를 믿거나 절을 뻔질나게 다니거나 하지는 않는다

성당에 가면 성당이 좋고 절에가면 절이 좋은 그저 좋은곳이라면 다 좋다.^^

 

무량사는 부여에서 가장 큰절로 외산리 만수산기슭에 위치해 있으며 범일국사가 창건하였다하며

고려때 크게 융성 아깝게도 임진왜란때 크게 불이 탄후 조선인조때 재건되었다한다

암튼 일본은 알락하게 우리의 문화 유산을 불태우거나 강취하지 않았나 싶다..

나쁜....*** ㅡㅡ  아흠....  ^^

 

 

시도 유형문화재 제 57호인 당간지주..

무량사 천왕문 동쪽에 남아있으며 두개의 길다란 돌기둥이 서로 마주보고 있다

전테적으로 아무런 장식이 없는 소박하고 단아한 모습이며 통일신라시대에서 굳어진

제작방식을 비하면 고려 전기에 만든것으로 짐작할수있다 한다..

 

 

무량사 절내를 들어서면 울창한 소나무와 적당히 흐르는 계속의 물소리에 청량함을

주고있으며 저절로 그늘을 만들어줘 봄여름 그리고 가을이면 더없이 좋겠다

 

 

사찰내를 들어서면 눈에 들어오는 무량사 극락전 5층석탑이 있는데 보물 제185호로 지정되어있다

백제와 통일신라의 석탑양식을 조화시켜 만든 고려전기 탑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으며

해체공사를 할때 탑신의 1층 몸돌에서 금동제 아미타여래좌상, 지장보살상, 관음보살상의

삼존상이 나왔고 3층에서는 금동보살상 5층에서는 사리구가 발견되었다한다

 

석가탄신일이 얼마 남지않아서 연등을 걸기위해 얽혀있는 전기줄처럼 보기좋지않지만..

나중에 이곳에 무지개빛 연등이 걸리면 수수한 무량사가 화려함으로 변할듯싶다

무량사 극락전은 보물 제356호로 이건물은 우리나라에서는 그리 흔치않은 2층불전으로 되어있다

외관으로는 2층이지만 내부로 들어서면 구분되지않으며 하나로 트여져있다

 스님의 목소리가 은은하게 메아리로 전해진다..

 

오래된 세월만큼이나 빛바랜 단청무늬들속에 옛조상들의 손길이 느껴진다..

지금까지 흘러오면서 몇번 더 색을 입혀졌을 단청들...

학교다닐때 절에 있는 단청에 반해서 숱하게 절이나 사찰을 찾아가

사진을 찍고 자료를 모았던 적이있었는데 지금까지도 단청사랑이 이어졌으면...^^

아마도 그쪽 방면에 박사가 되어있지 않았을까..  ㅎㅎㅎ

화려한듯 수수한모습과 규칙적인 배열에 불자의 마음과 민족성이 고스란이 느껴진다

 

 

 

 

 

 

 

 

이곳 무량사는 조선 세조때 생육신의 한사람인 매월당 김시습 선생이

1455년 수양대군이 단종의 폐위하고 멀리 영월로 유배를 보내고 왕위에 올랐다는

소식을 듣고 세상을 비관하여 책을 불사르고 스님이 되어 유랑생활을 하다가 말년에

이곳으로 들어와 59세때 입적하였는데 그의 유언되로 절옆에 묻었는데 3년 후에 파보니

얼굴이 산사람과 같았다고하는데 화장때 발견된 사리를 모신 부도와

직접 그렸다는 자화상이 보전되어있었지만 사진에는 담지는 않았다

그저 정처없이 떠돌다가 이곳에서 입적을 하셨고 초상화에 그의 혼이 담겨져있는거같아

차마 셔터를 누를수가없었기 때문이다....

 

 

 

참 조용하고 깨끗했었던 성지순례를 위해 모인 불자들에게 들려주는

스님의 나즈막한 목소리와 그목소리를 따라 널리 울려퍼졌던 메아리..

천천히걸어보면서 절내를 돌아보기에는 시간이 너무 없어서 많이 아쉬웠지만

수수함에 눈멀고 풍경소리에 귀멀어버린 무량사는 오래오래

기억에 남을만하다.. 난 이런곳이 넘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