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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처럼자유롭게/그리운전라도

서산 머리에 하늘은 구름을 벗어나고..

 바람이 서늘도 하여 뜰앞에 나섰더니 서산 머리에 하늘은 구름을 벗어나고...

 

열감기로 고생할때 찾아간곳 익산 가람이병기 선생의 생가..

언제였더라.. 정확하게 기억은 나지않지만 가람 이병기선생의 별이라는 시를

노래로 불렀던 때가 있었고 지금도 불러보면 모두 기억이 날정도로 생생하다

예전에 불렀던 예전에 암기를 했던 누가 옆에서 흥얼 거리면 그걸 따라 부를정도로

우리에게 친근해져있었고 익숙해져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익산은 벌써 두번째 방문이였고 때아닌 봄감기로 열이 오르락 내리락 하면서도

일행들을 먼저 보내고 혼자서 기차를 타고 내려갔으니 나도 참 어지간하다..

 난 여행중독증인가바........^^

 

가람 이병기선생 생가는 전라북도 기념물 제6호로 지정되어있다

이곳 생가는 이병기 선생이 티어나고 생활했던 곳이며 1891년 3월5일 태어났으며 호는 가람을 쓰고있다

1913년 한성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시조의 현대적 혁신과 부활을 위한 신운동을 전개하고 고전의

발굴연구에 힘을썼으며 청소년의 교육을 통하여 우리민족의 글과 말을 보존하는데 노력하였고

이로 인하여 1942년 조선어학회사건에 역루되어 투옥되었다 한다

1945년 광복이후 전북대학교 등에서 국문학을 교수하였고

1968년 11월28일 이곳에서 숨을 거두었다 한다... (문화재 발췌)

 

 

전라북도 기념물 제112호로 지정된 이병기선생 생가 탱자나무..

수령을 알수있는 기록은 없으니 이병기선생의 고조부가 이곳으로 이주하여 정착한

시기를 기준으로 보면 200년 정도는 되었을것으로 추정된다

내가 찾아갔을때는 잎도없었고 탱자나무에 탱자도 열리지 않았지만

그 위상만큼은 대단했으며 아직도 탱자나무에 탱자가 셀수없이 많이 열린다고하니

이병기 선생의 생가를 지켜주는 수호나무가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여린가지사이로 많이 열릴 탱자나무... 탱자가 열릴때쯤이면 탱자향이 은은할거같다

 

 

 

연못가옆에있었던 동백나무의 동백꽃과 목련..

꽃이 피고지고를 수백번은 하지 않았을까... 함께해온 시간만큼이나

넉넉한 마음으로 탱자나무 배롱나무와 함께 이곳을 지키고 있었다

 화려하지 않았지만 기풍이 느껴지는 생가였다...

 

 

 

 

 

이병기 선생이 생가는 조선말기 선비 집안의 배치를 따르고 있으며 안채, 사랑채, 고방채, 모정등이

남아있으며 행랑채는 최근에 철거되었으며 건물자체 특징은 없지만 안채나 사랑채의 고풍스런

멋스러움은 여전히 남아있으며 정갈하게 가꾸어놓은 작은 연못과 함께 뒤뜰에는

장독대와 대나무밭에 불어오는 바람소리가 인상깊게 남아있기도했다

호사스럽지않고 수수한 살림살이들을 엿보는것같았다

 

 

별채에 조그맣게 문이하나 있었다.. 모지........?? 하면서

호기심을 자극했고 호기심많은 바람이는 결국은 문을 열어봤는데 화장실이였다..ㅡㅡ  ㅎㅎㅎ

요즘에 보기 드문 재래식 화장실... 옆에 화장지가 있는데 요즘에도 사용하나..? 

 

 

 

 

 

 

 잘정돈이된듯 하지만 약간이 어수선한 모습을 보여준 연못가의 배롱나무..

초여름 분홍색 배롱꽃이 필때 이곳에 찾아오면 동백꽃과 개나리가 반겨준것처럼

배롱꽃이 나를 반겨줄거같다... 그때쯤이면 적당한 그늘도 만들어줘서

잠시잠깐 초록잔디에 앉아 바람을 느낄수있는 여유로움이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