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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처럼자유롭게/그리운경기도

청량한 사나사계곡 물소리에 겨울잠에서 깨어난 사나사..

사나사계곡에 흐르는 청량한 물소리에 기지개켜고 깨어난 사나사..

 

겨울끝자락에서 봄을 시샘하는 춘설로 사나사계곡 사나사를 찾았다

봄을알리는 사나사계곡의 청량산 물소리에 마음까지도 시원함을 느끼게해준다

용문산 남서쪽에 위치해있는 백운봉의 사나사계곡은 용문사 반대쪽에 위치해있으며

포장이 너무도 잘되어있는 조그마한 오솔길을 가게되면 오른쪽으로 사나사계곡이 이어지는데

가뭄에도 물이 마르지 않을정도로 계곡에 물도 풍부하며 그 계곡을 따라

올라가면 사나사라는 아주 작은 절을 하나 만나게 되고 때묻지 않고

 순수한 그 자태에 한참을 넋을 잃고 쳐다보게된다..

사나사는 아직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지라

주말에도 사람들이 많이없었고 바람소리에 풍경소리만 나를 반겨준다

눈이 내리고 비가내리는 궂은 날씨를 계속 거듭하면서 안개와 구름은

산아래 낮게 깔려 분위기를 한층 더 차분하게 만들어준다

 

전통사찰 제 48호로 지정된 사나사는...

신라 경명왕 7년에 고승인 대경대사가 제자 용문과 함께 창건한 사찰로

5층석탑과 사나사불상을 조성하여 봉안하고 절 이름을 사나사로 지었다고한다

그 후에 고려 공민왕 16년 (1367)에 태고왕사 보우가 140여칸 규모로 중건하였으며

고려 우왕 8년(1382)에 입적한 보우의 부도와 비를 문인 달심이 사나사에 세웠다

임진왜란때 사찰이 불타버렸으나 선조41년에 단월한방손에 의해 재건되었으며

1909년에는 계헌이 큰방 15칸을 복구하였고 1937년에 주지 맹현우 화상이 대웅전 15칸을

재건하였으며 조사전 5칸을 건축하였다

그후 한동안 유지되던 사찰은 6.25사변으로 인해 전소되었으나 다시 1956년에 주지 김두준과

함문성이 협력하여 대웅전, 산신각, 큰방등을 재건하고 함씨각을 지었다

1993년에는 현 주지 한영상이 대웅전과 지장전을 재건하였으며 경내에는 도유형문화배72호인

원증국사석종탑과 도유형문화재 73호인 원증국사석종비가 있다

 

사나사로 들어가는 일주문..

무슨일때문인지 일주문뒤에는 버팀목이 세워져있었고 기둥도 뽑혀있었다

빨리 복구가 되길 바라며 두번이나 불에타고 다시 재건된 사나사 라서 안쓰럽기까지하다

 

 

 

 

경내에 들어선 첫 느낌은 참 좋았다

잠시잠깐 머물러있었는데 온갖 번뇌를 다 씻고온 기분이랄까..

바람소리에 들려오는 풍경소리만 들려올뿐 아무소리도 없었고 사나사옆에

사나사계곡에서  흐르는 물소리만 들려올뿐 슬프도록 조용한 사나사였다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21호인 양평 용천리 삼층석탑..

고려시대 일반형 석탑인 3층석탑으로 지대석이 탑의 다른 부분과는 다르기 때문에

원래 자리가 어디있는지 알수가없으며 기단은 4장의 돌로 이루어져있고 위층기단과

탑신의 몸돌이 각 면에는 모서리 기둥이 표현되어있다

탑 몸툴과 지붕돌은 각각 다른 돌로 만들어져있으며 특히 1층 몸돌이 2층과 3층에 비해 높이 독특한모습이다

지붕돌의 아래에는 3단의 받침이 있고 추녀는 네 귀퉁이에서 경쾌하게 위로 들려있으며

탑의 지붕돌 위의 정상부에는 복발, 보주등의 상륜부재를 받치는 장식인 노반석이 놓여있다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72호인 사나사 원증국사탑..

고려말기의 승려인 원증국사 태고보우 의 사리를 모시고있는 부도이다

이 부도는 기단과 몸돌만으로 이루어진 종 모양으로 사각형의 기단 윗면에 연꽃모양을 새겨

몸돌의 받침을 이루고있으며 종 모양의 몸돌에는 아무런 조각이 없으며 정상에 연봉오리형

보주만이 있다.... 원증국사석종비의 기록에 의하면 보우가 입적한 다음 해인 고려우왕9년에

그의 제자인 달심이 부도를 세우고 그 후에 1386년에 원증국사석종비를 건립했다고한다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 73호 사나사 원증국사석종비..

이 석종비는 고려 말기의 승려인 원증국사 태고보우의 행적을 기록한 탑비이다

보우는 13세에 희암사 광지선사에게서 불경을 배우고 가지산 하총림에서 도를 닦았으며

충숙황 12년 승과에 급제했으나 출사하지않고 지평의 용문산 상원암과 성서의 감로사에서

고행한끝에 삼각산 중흥사의 동쪽에 절을 짓고 태고사라고 하였으며 46세가 되던 충목왕2년

원나라에 가서 청공의 법을 계승 임제종을 열어 그 시조가 되었다

충목왕 4년 귀국하여 용문산의 소설가에서 불도를 닦았으며 공민왕과 우왕때는 왕사와 국사를 지냈으나

우왕8년 소설사로 돌아와 그곳에서 입적하였다 하였고 정도전이 비문을 짓고

글씨는 재림사 주ㅣ인 선사 훤문이 글씨를 써 우왕12년에 보우의 제자인 달심이 세웠다고한다

 

 

 

 

 

 

스님 몇분이서 내 옆을 지나쳐간다.. 두손을 모아 합장을 해보면서 고맙습니다.. 라고 이야기를했다

내가 말한 고맙습니다.. 라는 말뜻을 알기라도 하듯  절이 작지만 맘에드실꺼라한다..

겉으로보여지는 화려함은 없지만 속으로 보여지는 화려함이 더커서 차마 쳐다볼수가없을거같다고

이야기를 하면서 재차 고맙습니다.. 하고 말을 하면서 절을 나섰다..

 

 

 

사나사는 옆으로 흐르는 사나사 계곡의 물소리에 잠이들고 또 잠에서 깰거같다

무더운 여름밤 개구리 우는 소리와 풀벌레 소리가 요란하지 않게 울때쯤 한번 더와서

그소리를 귀가 아닌 마음으로 듣고 느껴보고싶었다..

긴 겨울내내 잠을 자고있었던 사나사는 계곡에 얼음이 녹고 물살이 빨라질때

청량한 계곡의 물소리에 기지개를 켜고 일어나 봄을 맞이하고있었다

 

봄에 물가옆에 탐스럽고 부드러운 털을 가진 강아지풀..

그 위에 맺힌 물방울 만큼이나 깨끗하고 청아한 마음을 가진 사나사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북적되지 않아도 그 마음으로 느낄수있는 포근함이있어서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