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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처럼자유롭게/그리운경기도

천년을 살아온 정3품 은행나무의숨소리 양평 용문사..

천년을 넘게 그자리를 지켜온 정3품 은행나무가 있는곳 양평 용문사..

 

두물머리에서 비하고 눈이 같이오더니 용문사로 갈때는 굵은 눈발로 변해서 내린다

평평한 평지도있을텐데 미리서 찍어놓은 네비는 눈이오는데 고갯길을 자꾸 올라간다

걱정되고 불안하다.. 이렇게 눈이오게되면 고갯길이 미끄러울텐데..

핸들을 잡은손에 힘이 잔뜩 들어가고 손발이 오그라들고 심장이 콩닥콩닥 뛴다..

눈이오거나 눈이 쌓인곳은 제아무리 운전을 잘한다고해도 긴장하기 마련이다

다행히 제설차량이 앞서 가면서 눈을 치워주고 염화칼슘도 뿌려준다..

두물머리에서 용문사까지 1시간정도 되는거리를 두어시간만에 도착한듯하다..

 

양평용문사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건 천연기념물 30호로 지정된 1100년을 훌쩍 넘은 은행나무가 생각난다

학교다닐때 국사책에 자주 등장했던 용문사의 은행나무를 보러온게 고등학교다닐때 한번 오고

수십년이 지난 지금 여행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다닐때와서 보니 그때봤던 은행나무에 대한 느낌은

사뭇 달랐다고 해야할까..... 그땐 건성으로 봐왔고 귀찮아했던 것들이 이제서야 눈에 들어온다..^^

 

용문사는 신라 신덕왕2년 대경대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해지고하며 경순왕이 친히 행차하여 창사하였다고도한다

고려 우왕4년 지천대사가 개풍경천사의 대장경을 옮겨 봉안하였고 조선태조4년 조안화상이 중창하였다

세종 29년 수양대군이 모후 소현왕후 심씨를 위하여 보전을 다시 지었고 세조3년 왕명으로 중수하였다

 성종 11년 처안스님이 중수한뒤 고종 30년 봉성대사가 중창(낡아진 건물을 고쳐서 다시지음) 하였으나

순종원년 의병의 근거지로 사용되자 일본군이 불태웠졌고 1909년 취운스님이 큰방을 중건한뒤

1938년 태욱스님이 대웅전, 어실각, 노전, 칠성각, 기념각, 요사등을 중건하였으며 1982년 대웅전, 삼성각,

범종각, 지장전, 관음전, 요사채, 일주문, 다원 등을 새로 중건하고 불사리탑과 미륵불을 조성하였으며

2005년 요사채를 신 증축하여 현재에 이르게 되었으며 경내에는 권근이 지은 보물 제 531호 정지국사부도및

비와 지방 유형문화제인 제 172호 금동관음보살좌상과 천연기념물 제 30호 은행나무가 있다 (용문사 발췌)

 

용문사로 들어가는 일주문인데 어딜가든 닮은듯 다른 모습들의 일주문을 볼수있다

 

 

용문사까지는 그렇게 멀지는 않았고 걸어서 15분정도 되는 거리를 난 20분을 넘게 간거같다

이곳저곳 보면서 사진도 찍고 계곡에 흐르는 물소리도 감상하면서 올라가고있는데

앞서 가던 두사람의 남보라색 우비가 눈에 들어온다..

봄비와 춘설로 촉촉해진 길가에 남보라색 제비꽃이 움직이는것처럼 보인다..^^

 용문사 올라가는 길은 두갈레가 있는데 한곳은 숲속 오솔길로 가는길이고 또한곳은

맥문동이, 구절초등 야생화단지를 보면서 올라갈수있어서 올라가는길이 더 즐거울듯하다

 

 

 

은행나무와 춘설로 멋진 용문산을 담아보았다..

경기도내에서 화악산, 명지산에 이어 세번째로 높은 용문산은 산세가 웅장하고 계곡이 깊어

고산다운 풍모를 지니고있으며 평일에도 산행을하는 등산객들과 탐방객으로 끊이지 않는다고한다

용문산 등산코스가 정상일대가 출입금지인 관계로 제한한곳이 몇군데있지만 용문사 북서쪽에 있는 마당바위와

용각바위 그리고 석문까지는 1시간정도 걸리는데 등반이 가능하다고한다..

눈이 녹고 날씨가 좋은날에는 쉬엄쉬엄 석문까지 올라가서 발아래로 내려다보이는 양평을 한번보고싶다

 

 일본군이 은행나무를 자르려고한 도끼자국이 있다고하던데 어디에 있는지 한참을 찾아보았다..

 

 

 

 

 

 

 

 

 

 

 

그냥 아무생각없이 용문사를 천천히 둘러보았다

바람에따라 풍경소리가 은은하게 들리고 법당에선 목탁소리 들려온다..

목탁소리와 함께 불자들의 108번뇌와 108배 절하는 모습이 눈에 보이는듯하다

흩어진 마음을 한곳에 모아 한가지의 마음을 이루기까지 힘든 고뇌했을지 생각해본다

 

천연기념물 제 30호로 정3품 은행나무..

용문사의 은행나무에 얽힌 이야기는 많다고한다.. 신라의 마지막 왕인 경순왕의 세자 마의태자가

나라잃은 설움을 안고 금강산으로 가던 중 심었다는 이야기도있고 신라의 고승 의상대사가 짚고다니던 지팡이를

꽂아 놓은것이 뿌리를 내려 성장한것이라고하는데 내가 학교다닐때는 후자 내용인 의상대사가 지팡이를

꽂았는데 그것이 은행나무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국사시간에 들었다.. 그리고

정3품의 벼슬을 받은건  스스로 가지를 들어 임금의 가는길을 터줬다고해서

정3품의 벼슬을 내렸다고 전해지는데 이것도 학교다닐때 국사시간에 들은거같다..

근데 정3품이라는 벼슬을 받은건 은행나무뿐만 아니라 소나무도 있는걸로 알고있는데

그 소나무도 왕이 지나갈때 가지를 들어 길을 터줬다고 했던거 같은데 순간 헷갈린다..ㅡㅡ

오랜세월동안 전란 속에서도 불타지 않고 살아 남았던 나무라 하여 천왕목이라도 불렀으며

정미년 의병이 일어났을때는 일본군이 절을 불태웠으나 이나무는 화를 면했으며 옛날 어떤 사람이

이나무를 자르고자 톱을 대는 순간 피가 쏟아지고 하늘에서는 천둥이 쳤다고한다

나라에 변고있을때마다 미리 알려주는 영험함이 있는것으로 알려져있으며 조선고종이

세상을 떠났을때는 큰 가지 하나가 부러져 떨어졌다고한다..

수령이 약 1100여년으로 추정되며 높이 40미터.. 줄기의 가슴둘레가 11미터를 넘으며

동양에서 유실수로 가장 큰 은행나무이고 가을에는 많은 은행도 맺힌다고한다..

 

 

용문사를 내려올때는 계곡의 물흐르는 소리가 경쾌하다는걸 느껴본다

불과 얼마전까지만해도 계곡에 물이 꽁꽁얼어 물소리를 들을수 없었겠지만 지금은 다 녹아있다

봄을 시샘하는 춘설이 용문사에도 내렸지만 어느새 봄을 성큼 다가오고있는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