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바람처럼자유롭게/살고있는인천

봄이면 벚꽃과 철쭉이 고운 도심속 작고 조용한 공원 화도진..

봄이면 사방에 벚꽃으로 장관을 이루는 도심속 작고 조용한 공원 화도진...

 

화도진은 인천광역시 기념물 2호로 지정되어있으며 동구 화수동 138번지에 속해있다

동인천역에서 도보로 10여분정도 걸어오면 되고 걸어오는 길목에는 봄이면

벚꽃이 가득한길이기에 지루하거나 멀게 느껴지지 않는다..

이곳에서 부터 자유공원까지 봄이면 걷고싶은 길중에 한곳이라도 해도 좋을듯하다

화도진공원길을 따라 자유공원까지 봄이되면 한번 걸어도 봐야지..^^

갑자기 찾게된 화도진공원은 예전에는 건성으로만 봐왔던 것들이 모두 새롭게 보였으며

사랑채, 동헌, 내사 그리고 전시관으로 구성되어있으며 전시관에는 예전이 물품들이 전시되어있었다

깔끔하게 정돈된 화도진은 먼지한톨 쓰레기 한장도 보이지 않을정도로 관리가 잘되어있었지만

공원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부족한 느낌이 있었지만 인천사람들의 휴식지로는 안성맞춤이였다

햇빛이 참 좋았던 그날도 근처에사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공원의자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하시는 모습속에서 금방이라도 봄이 찾아와 더욱더따뜻하게 해줄꺼라 빌어봤다

 

 화도진은 고종 15년 (1878) 8월 당시 어영대장 신정회로 하여금 축조 공사를 맡기고 그 이듬해인

고종 16년 7월에 완공되었으며 고종황제는 이곳을 화도진이라 명명하고 서해안 방어를 맡게하였다

고종 19년에 이곳 화도진에서 고종의 전권대신 신헌과 미국의 전권대사 슈펠트제독사이에

한미수호통상조약이 체결되었으며.. 그후 고종 21년에는 친위전영으로 되고 그 이듬해 고종 22년에는 좌영으로

이속되었다고 갑오경장으로 준제가 개편됨에따라 화도진은 불타 없어지고 그후 주택이 밀집되어있던

1982년 한미수교 100주년을 기념하여 비를 세우고 서울 올림픽과 태평양시대가 열리던 1988년 9월에

화도진진을 기본으로 인천광역시에서 복원하였다한다..

당시 화도진은 남북으로 향하는 구릉 중턱에 자리잡고 있어 동쪽은 바다를 바라볼 수 있고

삼면이 능선인 까닭에 육지를 깊숙이 파고 올라야만 발견할 수 있는 최적의 진지였다고 한다.

 

 

 

 

 

 

안주인의 거처로 안채라고도 부르며 기능상 비중이 크고 활용빈도가 높은 공간인 내사의 모습이다

안방에는 보료와 반짇고리 병풍과 머릿장등 각종 가구들이 그대로 전시되어있었고

대청마루에도 오래전에 볼수있었던 뒤주와 탁자들도 보였다..

 

 

 

 

 

통상 수령등이 정무를 집행했던곳으로 현감수사 병사, 감사 가 주재하는 관아의 건물인 동헌이다

이곳 화도진의 동헌은 병인양요후 연안각지에서 새로 들어선 31문의

포대를 관할키 위한 곳으로 행정업무의 장소였기도했다.

 

한미 수교 조인...

1882년 고종 19년에 화도진에서 우리나라 전권대신 신헌과 미국 슈펠트 제독사이에

한미수호통상조약을조인하는 장면으로 이는 우리나라가 서구와 맺은

최초의 조약이며구미 여러나라에 대한 문호개방의 효시가 되었다고한다...

 

 

 

 

 

사랑채의 모습이며 사랑채는 일반적으로 큰사랑은 바깥주인의 거처임

학덕이 높고 사회적 지위나 가세가 넉넉할수록 사랑채의 규모는 크고 당대 사회문화의 척도로서

주인의 정신적 성향과 경제적 능력을 말해주는 곳이기도한다

수군기지였던 화도진에서의 사랑채는 병사들이 기거하던 병영건물로 사용되었다 한다..

 

 

옛모습 뒤로 우뚝서있은 고층짜리 아파트가 요즘에 우리들이 살고있는 모습을 말해주지만

아직까지도 기와지붕이 좋고 대청마루가 좋은건 쉽게 변해버린 내 주변 환경이

좀더 느긋하게 바뀌었으면 하는 내작은 마음이 조금 내포되어있지 않나 생각해본다

이곳 화도진에서는 정월보름에는 우리나라의 풍습을 체험할수있는 정월대보름 행사가 있으며

철쭉꽃이 피는 5월초순에는 철쭉꽃 축제도 있을정도로 철쭉꽃이 이쁘다고한다

조용해서 더 좋았던 도심속 공원 화도진 여유로움과 느림을 배우고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