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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처럼자유롭게/그리운전라도

청산도 초분을 보면서 피지도못하고 져버린 남동생을 생각합니다..

이번 청산도 여행때 새로운 장례문화를 접했다

사실 첨에는 초분이 먼지 몰랐다

춘분이나 추분을 잘못 말을 했거나 내가 잘못들은줄알았다

그만큼 죽음을 생각 안했을터라 생각해본다

 

남해안과 서해안 그리고 섬에서 주로 전해져오는 초분장례문화

일종의 풀무덤이라는 뜻이다

입관후 출상한 뒤 관을 땅이나 평상위에 놓고 이엉으로 덮어서 1~3년동안 그대로 둔뒤

해마다 명절이나 기일에는 그앞에서 간단한 제사를 지내고

초분의 이엉을 해마다 새것으로 바꿔준다고한다

매우 원시적이긴하나 초분을 해야만 하는 확실한 이유도 생각해볼만하다

 

초분에 모신 시신은 탈육되고 나면 뼈만 간추려 일반 장례법과 동일하게 묘에 이장한다

초분장을 하는 경우는 호상일 경우에 많이 행하며

임신중인 부인이 죽었을 때도 반드시 초분으로 해야 한다고한다

전염병으로 죽어서 시신의 균이 주위에 옮길 여지가 있을때도 격리 차원에서

일단 초분으로 가묘를 만들고 익사자도 시신의물을 빼기위해 초분으로 한다

 

짚으로 덮은놓은곳에 소나무를 꽂아둔다고한다

찾아올때마다 소나무를 꽂아두어 소나무색이 파랗고 싱싱하고

그 수가 많을수록 망자의 넋을 얼마나 많이 위로해줬는지 알수가있겠지만

좋은곳으로 보내고자 하는 마음은 다 똑같은거라 생각해본다

 

(사진제공 : 사강님... 황헌만님...)

 

아주 어렸을때 내 나이가 6살 7살때쯤에

지금은 어렴풋이 기억도 나지않지만 엄마한테서 들은 이야기가있다

내밑으로 남동생말고 또다른 남동생이 있었다고한다

지금에있는 남동생과 나이차가 3살정도 차이가 났다고했으니

대략 나하곤 6살 차이가 나는듯싶다

돌도 지나지않았던 그 남동생이 뇌수막염으로 피지도못하고 져버린 남동생..

이야기를 지금은 아니지만 불과 몇년전까지만해도 들었다

죽은 남동생 생일때만 되면 사진을 꺼내들어 우는 엄마가 밉고 싫어서

사진을 감추었는데 그나마 그것도 싫어서 불에 태워버렸던 기억이 있다

지금은 어린아이 묘를 어찌 쓰는지모르겠지만

그때는 상자에 넣어서 산속에 돌맹이를 쌓고 그 안에다가 묻었다고한다..ㅡㅡ

돌지난 아이는 묘를 쓰는게 아니였나.. 그렇다면 화장을 해도됬을텐데..

남동생이 죽은지 얼마 안되 너무 보고싶었던 모양이다

 울엄마는 나하고 또다른 남동생을데리고

묻혀있는 산으로 우리를 데리고갔다.. 

아마 얼굴이라도 한번더 보고싶었던지

아니면 그 돌무덤이  잘있는지 궁금했었을지도 모르겠다

솔직히 그때 울엄마는 제정신이 아니였다고한다

잠도 못자고 곡기도 입에 대지도못하고 몇일동안을 울면서 보냈다고했었다

어디서 그런기운이 났는지 우리를 데리고

산위까지 올라가 돌무덤을 찾아다녔고

결국은 그 돌무덤을 끌어안고 한참을우시더니

다시는 그곳을 찾지않으셨다고한다..

그리곤 마음속에 깊게 남동생을 묻어버렸는지도 모르겠다

 

청산도의 초분하고 남동생이 죽어  쌓은 돌무덤하곤 상관이없지만

청산도에서 직접 초분을 보고 그안에 시신이 그대로 놓여있다는 생각에

난 문득 35여년전에 고은 무명천으로 곱게 싸서 상자에 넣어

돌무덤안에 묻힌 남동생 생각에 울컥해짐을 느꼈다